'-화(化)' 씻어내며 우리 말 살리기 (69) 사회화

[우리 말에 마음쓰기 915] '다른 사람을 사회화', '사회화되어' 다듬기

등록 2010.05.15 12:49수정 2010.05.15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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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사회화 1

 

.. 사람은 말에 의하여 식별되는 세계를 말을 통하여 사람의 살 수 있는 환경으로 구성하며, 말을 통하여 스스로와 다른 사람을 사회화한다 ..  <김우창-궁핍한 시대의 詩人>(민음사,1977) 382쪽

 

"말에 의(依)하여 식별(識別)하는"은 "말로 가려내는"이나 "말로 알아보는"으로 손보고, "말을 통(通)하여"는 "말로"로 손봅니다. "사람의 살 수 있는 환경(環境)"은 "사람이 살 수 있는 터전"이나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다듬고, '구성(構成)하며'는 '이루며'나 '엮으며'로 다듬어 줍니다.

 

 ┌ 사회화(社會化)

 │  (1) 인간의 상호 작용 과정

 │   - 한 개인이 사회화하는 과정에는 / 개인을 사회화하는 중요한 기능

 │  (2) 인간이 사회의 한 성원으로 생활하도록 기성세대에 동화함

 │  (3) 사적(私的)인 존재나 소유를 공적(公的)인 존재나 소유로 바꾸어 감

 │

 ├ 스스로와 다른 사람을 사회화한다

 │→ 스스로와 다른 사람을 한 사회로 묶는다

 │→ 스스로와 다른 사람을 한 사회로 엮는다

 │→ 스스로와 다른 사람을 이어놓는다

 │→ 스스로와 다른 사람을 묶는다

 └ …

 

우리는 저마다 한 사회에 '깃들' 수 있고 '머물' 수 있습니다. 한 사회에 '몸담'거나 한 사회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자리하면서 살아갑니다. 다들 제 깜냥껏 재주껏 마음껏 '어울리'거나 '어깨동무'를 합니다.

 

한 사회에 나와 네가 있다는 이야기는, 어느 울타리 안쪽에서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소리입니다. 한 동아리로 '묶여' 있다는 뜻입니다.

 

보기글은 통째로 손질해서, "사람은 말로 알아보는 이 세계를, 말을 주고받으면서 저마다 살 수 있는 터전으로 이루어 내며, 말을 주고받는 가운데 스스로와 다른 사람을 잇는다."쯤으로 다시 써 봅니다. "한 사회로 묶는다"나 "한 사회로 잇는다"로 풀어내어도 괜찮은 한편, '잇는다-묶는다-엮는다-만난다-어울린다-함께한다' 같은 낱말을 넣어도 잘 어울립니다.

 

 ┌ 한 개인이 사회화하는 과정에는

 │

 │→ 한 사람이 사회로 녹아드는 길에는

 │→ 한 사람이 사회를 받아들이는 길에는

 │→ 한 사람이 사회를 이루는 흐름에는

 └ …

 

그런데 이 보기글은 이렇게 풀어낸다고 하더라도, 국어사전에 실리는 '사회화'는 어렵습니다. 사회학에서 흔히 쓴다는 '사회화'는 좀처럼 쉽게 풀어내기 힘듭니다. 사회학을 하는 분들 스스로 '사회화'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맞게 적바림해야 합니다. "인간의 상호 작용 과정"이란 무엇일는지요. "사람이 서로서로 작용한다는 과정"이란 무슨 소리일는지요. "사람이 서로서로 어우러지거나 녹아든다는 흐름"을 꼭 '사회 + 化'라는 말마디에만 담을 수밖에 없는지요.

 

"문학의 사회화"란 무슨 이야기일는지 궁금합니다. "돌봄 노동의 사회화"란 무슨 이야기이며, "인터넷을 통한 사회화 및 공론화 과정"이란 무슨 이야기일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새로운 사회화 모델"이란 무엇일까요. "사회화 적응 훈련"은 "사회화 훈련"이나 "사회 적응 훈련"하고 어떻게 다를까요.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가진 사회화되지 않은 인간"이란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지 아리송합니다.

 

손쉽게 쓰면 넉넉할 말을 손쉽게 안 쓰는 우리들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두루 어깨동무를 하며 널리 손을 맞잡을 말마디하고는 등돌리는 우리들이 아니랴 싶습니다. 사회로 녹아드는 말하고는 손사래치는 우리들이로구나 싶고, 사회를 아름다이 이루는 글하고는 동떨어지려는 우리들일 수밖에 없나 싶어 슬픕니다.

 

 

ㄴ. 사회화 2

 

.. 더구나 우리는 어릴 적부터 싸움이란 해서는 안 될 일, 나쁜 일로 여기도록 '사회화' 되어 왔습니다 ..  <손석춘-민주주의 색깔을 묻는다>(우리교육,2010) 51쪽

 

이 보기글에 나오는 '사회화 되다'는 붙여서 적지 않고 띄어서 적습니다. '사회화되다'이든 '사회화 되다'이든 '-化'와 '-되다'를 잇달아 붙인 만큼 겹말입니다.

 

국어사전 뜻풀이 (2)인 "인간이 사회의 한 성원으로 생활하도록 기성세대에 동화함"으로 쓰인 '사회화'로구나 싶은데, 국어사전을 살피면 '사회화 = 동화'인 셈입니다.

 

'동화(同化)'란 "같게 됨"을 뜻합니다. 같게 된다는 소리란 "틀에 박힌 사람이 됨"을 가리킵니다. 내 줏대를 가꾸지 못하고 "다른 사람 말이나 생각에 휘둘리고 맘"을 빗댑니다. 나 스스로 내 길을 찾지 않으며 "옳은 일에든 옳지 않은 일에든 내 마음이 무디어지면서 길들거나 물들거나 젖어든다"는 이야기입니다.

 

 ┌ '사회화' 되어 왔습니다

 │

 │→ '길들어' 왔습니다

 │→ '익숙해져' 있습니다

 │→ '배워' 왔습니다

 │→ '가르쳐' 왔습니다

 │→ '이야기를 들어' 왔습니다

 └ …

 

사람들은 누구나 어릴 때부터 둘레에서 듣는 말투에 익숙한 채 자랍니다. 어른들한테서 듣는 말이 내 말이 되고, 다른 누군가 적바림해 놓은 책을 읽으며 글을 익힙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을 가듯 세 살에 배운 말이 예순 살에 쓰는 말이 됩니다. 아빠와 엄마 되는 사람부터 말을 옳고 바르게 쓰지 않는다면 딸아들이 말을 옳고 바르게 쓸 수 없습니다. 아빠와 엄마가 틀에 박힌 생각에 젖어 있으니 아이들 또한 틀에 박힌 생각에서 홀가분하기 어렵습니다. 아빠와 엄마가 곱고 좋은 삶을 사랑하고 있지 않은데, 아이들만 외따로 곱고 좋은 삶을 사랑하기를 바라기란 어렵습니다.

 

길드는 생각이란 무섭습니다. 익숙해지는 버릇이란 단단합니다. 굳어진 마음이란 깨지지 않습니다. 못이 박힌 넋은 풀려나지 못합니다.

 

우리들은 우리 스스로 더 아름다운 삶터를 일구는 쪽보다는 내 밥그릇 챙기는 쪽으로 몸이 움직입니다. 몹쓸 법이든 제도이든 바로잡거나 뜯어고치는 데에 힘을 모두지 못합니다. 하루하루 밥벌이에 바쁘고, 아침마다 출근길 다툼에 고단하며, 저녁마다 퇴근길 복닥거림에 곯아떨어집니다. 차분하거나 느긋할 겨를이 없으니 내 삶과 둘레 터전을 차분하거나 느긋하게 되새기지 못합니다. 바삐 둘러보느라 제대로 살피지 못합니다. 서둘러 훑느라 곰곰이 삭이지 못합니다. 어수선하게 보느라 속알맹이를 꿰뚫지 못합니다.

 

 ┌ 나쁜 일로 여기도록 굳어져 왔습니다

 ├ 나쁜 일로 여기도록 귀에 못이 박히게 배웠습니다

 ├ 나쁜 일로 여기도록 길들여졌습니다

 └ …

 

차분한 삶에서 차분한 넋이면서 차분한 말입니다. 바쁜 삶에서 바쁜 넋이면서 바쁜 말입니다. 차분할 수 있는 삶이어야 내 말마디를 차분하게 돌아보며 가다듬습니다. 바쁜 삶이기에 내 말마디를 바삐바삐 얼렁뚱땅 이냥저냥 아무렇게나 쓰더라도 추스르거나 다독이지 않습니다. 내뱉기에 바쁘고 내쏟기에 벅찬 오늘날 우리 말삶입니다. 나누기에 즐겁거나 어깨동무하기에 반가운 말삶은 거의 자취를 감추어 버립니다.

 

어찌 보면 사회가 우리를 이렇게 내팽개친다 할 만합니다. 그런데 속을 살피면 사회 아닌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이처럼 내팽개치는구나 싶습니다. 사회가 아무리 엉터리라 할지라도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엉터리로 내쳐도 되지 않습니다. 사회가 아무리 뒤죽박죽이라 하더라도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엉망진창으로 내몰 까닭이 없습니다.

 

좋은 누리일 때에만 좋은 말을 아끼고 사랑할 수 없습니다. 나쁜 누리일 때에도 좋은 말을 아끼고 사랑해야 합니다. 온누리가 돈바라기 대학바라기 권력바라기로 흐른다 할지라도 나는 내 삶을 사랑하며 내 넋을 곱게 여미고 내 말을 올바로 다스리면 됩니다. 내 둘레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악착같은 돈벌레로 살아간다 할지라도 나는 내 삶을 믿으며 내 얼을 따스히 돌보고 내 말을 넉넉히 일구면 됩니다.

 

내 한 목숨 고맙게 여긴다면 내 한 목숨에 깃들 말이 아름답도록 가꿀 노릇입니다. 내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를 좋아한다면 내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 누구나 아름다이 말하고 살아가도록 도울 노릇입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5.15 12:49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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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화 #외마디 한자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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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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