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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루저들, '왕의 남자'가 되다

[인디포럼 영화제 2010] 인디포럼 섹션 '모두가 왕의 남자'

10.05.30 15:01최종업데이트10.05.30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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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남자들이 있다. 이 남자들은 안정된 직업이 없고 꿈이 있었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사회에 어울리지 못하고 구석으로만 맴도는 남자들. 이런 남자들을 '찌질이'라고 욕하는 자들도 있겠지만 대한민국의 고민들을 모두 안은 듯한 이 남자들도 결국은 최고의 남자, '왕의 남자'로 인정받을 날이 올까?

인디포럼의 '모두가 왕의 남자' 섹션은 이 남자들의 네 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루저', '찌질이' 이런 비아냥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주인공들, 그리고 그들을 비롯한 우리 모두를 이 섹션에서는 '왕의 남자'라고 칭한다.

<즐거운 영화>, 정말로 즐거운 영화였을까?

영화감독 지망생의 묘한 하루를 그린 <즐거운 영화> ⓒ 인디포럼


영화감독 지망생 검후. 그러나 그는 시나리오도 제대로 완성하지 못하고 집에 매일 쳐박혀 동전 세우기에만 열중하는 백수다. 이런 그에게 엄마는 "나가서 돈이라도 벌어오라"며 구박한다. 집을 나서는 검후에게 전혀 의도하지 않은 일들이 벌어진다. 후배가 연출하는 영화에 대신 출연해 '동전 세우는' 연기로 찬사를 받고 지나가다 얼떨결에 '1m 달리기'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그렇게 이상한 하루가 지나갈 때 검후는 컴퓨터에 시놉시스를 쓰기 시작하지만 이내 '저장 안 함'을 누른다.

김경학 감독의 <즐거운 영화>. 사실 이 영화의 원제목은 <즐거운 영화(가제)>다. 즉, 즐거운 내용같지만 사실은 전혀 즐겁지 않았다는 것을 한마디로 표현한 제목이다. 늘 무표정한 얼굴에 가끔 목 근육을 움직이는 주인공의 모습은 처음엔 재미있어보여도 나중에는 처연하게 보인다. 전혀 즐겁지 않은 코미디이기에 <즐거운 영화>는 '가제'일 수 밖에 없다.

국가가 그들한테 뭘 해줬냐?

민방위 훈련의 에피소드 <민방위 FM> ⓒ 인디포럼


변리사를 준비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방바닥만 긁고 있는 백수 기동. 그는 처음으로 민방위 훈련에 참가한다. 민방위 훈련에 군복을 입고 나타난 기동. 그는 그 곳에서 만나기 싫은 친구를 만난다. 산만하던 민방위 훈련장은 갑자기 등장한 군인들에 의해 무시무시한 훈련장으로 변하고 그 곳에서 FM을 보여준 기동만이 '원산폭격'을 면한다.

김성환 감독은 야구 선수 임수혁의 죽음을 예로 들며 심폐소생술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을 접했고 민방위 훈련에서 심폐소생술을 한 것에 착안해 <민방위 FM>을 만들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도 꿈을 이루지 못한, 그리고 민방위 훈련에서 군복을 입고 올 정도로 어리숙한 백수다. 그 백수가 강제된 국가의 권력 속에서 FM으로 인정받는 이야기는 묘한 아이러니를 선사한다. 정말 누구 말마따나 '국가가 그들에게 해준 게 뭐가 있다고' 의무만을 강요하는 것일까?

고등어는 왜 테니스장에 있을까?

30대 찌질남의 이야기 <고등어, 테니스장에 가다> ⓒ 인디포럼


고등어와 테니스장. 정말 어울리지 않는, 아니, 연관성을 전혀 찾을 수 없는 단어들이다. 임철빈 감독의 <고등어 테니스장에 가다>의 주인공 또한 테니스장 안의 고등어처럼 세상과 뭔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컴퓨터 출장수리로 생계를 잇지만 손님의 만원 짜리 지폐를 몰래 훔치고, 우유 주머니 속 우유를 훔쳐먹으며 다방 아가씨의 가슴을 몰래 만지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찌질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그에게도 꿈이 있었고 사랑하는 여인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좋아하는 일은 '돈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그는 테니스장에서 혼자 엉성하게 테니스를 친다. 그리고 하수구에 버려진 고등어를 보며 자신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세상에 어울리지 못한 채 꿈도 없이 주변인으로 살아야하는 30대 중반 남자의 한숨이 묻어나기에 쉽게 웃고 넘어가기 어려운 코미디가 <고등어 테니스장에 가다>다.

직업이 있다. 하지만 꿈을 이루지 못하고 돈의 노예가 되어버린 주인공 속에서 꿈을 잃고 어느덧 쳇바퀴 속 다람쥐가 된 우리를 발견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아따~ 쿨', 아들과 아버지의 하루

더운 날 컴퓨터를 팔러 가는 부자의 이야기, <아따쿨> ⓒ 인디포럼


<아따쿨>. 이 묘한(?) 제목의 영화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나온다. 아들은 대학까지 나왔지만 지금은 '아버지 설거지나 하는' 신세다. 연인과도 얼마 전 헤어진 아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낡은 컴퓨터를 팔기로 한다. 해병대 출신인 아버지는 아들의 만류에도 같이 가겠다고 한다. 그렇게 힘겹게 컴퓨터를 팔러 가지만 멀고 먼 고물상에서 손에 쥐어 준 것은 천 원짜리 한 장 뿐이다.

이희찬 감독은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루저'가 된 아들과 그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시선을 담은 <아따쿨>을 만들었다. 점점 소원해지는 부자의 관계. 매일 면박을 주고 컴퓨터를 파는 과정에서 말다툼을 일으키는 아버지가 아들은 원망스럽겠지만 그럼에도 아들을 이해하는 사람은 결국은 아버지였다. 천 원으로 산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아버지가 외치는 '아따~ 쿨(cool)'은 '쿨하게 이 현실을 살아보라'는 아버지의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영화의 재미를 한껏 돋운다.

바로 그들이 '왕의 남자'

영화 속 남자들은 바로 나, 나의 친구, 내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다. 정말 뒤만 돌아보면, 옆만 쳐다보면 나올 수 있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그들은 너무나 순수했기에 말도 안되는 세상의 힘을 극복하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들은 말한다. 그런 순수한 사람, 힘들면서도 그래도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이 바로 고귀한 '왕의 남자'라는 것을.

정말로 '즐거운 영화'가 나오길, 좋은 세상의 FM으로 거듭나길, 자신의 꿈을 뒤늦게나마 이루고 명예도 얻길, 아버지에게 자랑스런 아들이 되길 우리는 바라고 또 바랄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누구를 억압하지 않는, 누구를 깔보지 않는 세상을 꿈꾸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성공은 바로 그런 세상에서 나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인디포럼 영화제 2010' 5월 27일 (목) ~ 6월 2일 (수) 서울아트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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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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