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마디 한자말 털기 (96) 중하다重

[우리 말에 마음쓰기 922] '내가 중하냐, 그애가 중하나', '중한 병' 다듬기

등록 2010.05.30 14:28수정 2010.05.30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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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내가 중하냐, 그애가 중하나

 

.. "넌 친구인 내가 중하냐? 그 애가 중하냐?" "넌 내가 중하냐? 그 애가 중하냐?" ..  <김수정-소금자 블루스 (1)>(서울문화사,1990) 13쪽

 

'친구(親舊)'는 그대로 두어도 되나, '동무'로 손보면 한결 낫습니다.

 

 ┌ 중하다(重-)

 │  (1) 매우 소중하다

 │   - 겉치레보다 실속을 중하게 여기다 / 의리를 중하게 여겨야 한다 /

 │     돈이 사람 목숨보다 중하다는 말인가

 │  (2) 병이나 죄 따위가 대단하거나 크다

 │   - 병이 중하다 / 상처가 중하다 / 죄가 중하여 옥살이를 오랫동안 하였다

 │  (3) 책임이나 임무 따위가 무겁다

 │   - 임무가 중하다 / 어린 나이에 가장으로서의 중한 책임을 지게 되었다

 │

 ├ 내가 중하냐? 그 애가 중하냐?

 │→ 내가 소중하냐? 그 애가 소중하냐?

 │→ 내가 좋으냐? 그 애가 좋으냐?

 │→ 나를 생각하냐? 그 애를 생각하냐?

 └ …

 

곰곰이 살펴보면, 오늘날 어린이책에는 웬만하면 '동무'라는 낱말이 쓰이고 있습니다. 이 좋은 말을 왜 안 써야 하느냐고, 왜 동무 같은 낱말을 '빨갱이가 쓰는 말'로 못박아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마음을 가로막느냐고 이야기합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이원수 권정생 임길택 같은 분들 어린이문학뿐 아니라 윤석중 어효선 유경환 같은 사람들 어린이문학에도 '친구'가 아닌 '동무'라는 낱말이 쓰입니다. 예부터 오늘날까지 어린이문학에서만큼은 '동무'가 자주 쓰였고, 어린이노래에도 '동무'라는 말을 털어낼 수 없습니다. 제아무리 어른 사회에서는 독재정권이 힘을 내어 '친구(親舊)'만 쓰게 했다고 해도, 어린이문학을 뺀 모든 어른들이 쓰는 글이며 기사며 논문이며 책이며에는 죄 '친구'만 나온다고 하더라도, 아이들 앞에서는 못난 말을 함부로 들이밀지 못했습니다.

 

 ┌ 실속을 중하게 여기다 → 실속을 알뜰히 여기다

 ├ 의리를 중하게 여겨야 → 의리를 대수로 여겨야

 └ 사람 목숨보다 중하다는 → 사람 목숨보다 좋다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한테 어떤 말이 소담스러우며 사랑스러울는지 차근차근 짚어 나갈 일이라고 느낍니다. 앞날을 내다보는 우리한테 어떤 말이 커다랗고 아름다울는지 곰곰이 헤아릴 일이라고 느낍니다. 어제를 돌아보는 우리한테 어떤 말이 반가웠고 고마웠는지 가만히 되새길 일이라고 느낍니다.

 

알뜰히 쓸 말을 알뜰히 못 쓰지 않았는가 살필 노릇입니다. 대수롭지 않은 바깥말에 지나치게 휘둘리지 않았는가 돌아볼 노릇입니다. 더없이 좋은 말을 내친 우리들은 아닌지 생각하고, 더없이 궂은 말을 함부로 받아들인 우리들은 아닌가 톺아볼 노릇입니다.

 

 ┌ 병이 중하다 → 병이 크다 / 병이 깊다

 ├ 상처가 중하다 → 생채기가 크다 / 생채기가 깊다

 └ 죄가 중하여 → 죄가 커서

 

'어깨동무'를 '어깨친구'라 할 수 없습니다. 어린이잡지 이름은 끝까지 〈어깨동무〉로 나왔습니다. '길동무'를 '길친구'라 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깨끗함과 고움을 내동댕이친 어른들은 '동행(同行)'이니 '동반자(同伴者)'이니를 읊었으나, 아이들은 그예 '어깨동무'와 '길동무'만을 사귀면서 서로서로 돕고 북돋우며 함께 울고 웃습니다.

 

 ┌ 임무가 중하다 → 맡은 일이 무겁다

 └ 중한 책임을 지게 → 무거운 짐을 지게

 

그래, 우리 나라 옛책을 읽어내겠다는 큰뜻을 품었으면 한자가 아닌 한문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 나라밖 사람들한테 우리 문화와 발자취를 들려주고 싶으면 미국말 알뜰히 배워서 옮겨낼 노릇입니다. 온누리를 앞마당 삼아서 뜻을 펼치고 싶으면 미국말뿐 아니라 에스파냐말도 배워 중남미를 뚫고, 스웨덴말을 익혀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누비며, 아랍말과 이란말도 익히면서 중동사람을 만나야지 싶습니다. 헝가리사람은 마쟈르말을 쓰고, 체코사람은 체코말을 씁니다. 버마사람한테는 버마말이 있고 라오스사람한테는 라오스말이 있습니다.

 

한국사람한테는 한국말이요, 한국에서도 북녘은 북녘대로 북녘말, 중국조선족은 조선족말, 재일조선인은 조선인말입니다. 전라도에서는 전라도말, 충청도에서는 충청도말이며, 제주에서는 제주말입니다.

 

프랑스에 가서 프랑스말로 프랑스사람을 만나면 프랑스에서 한결 반가이 맞이합니다. 부산에 가서 부산말로 부산사람을 만나면 부산에서 한결 대접을 받습니다. 강릉에 가서 강릉말을 쓸 수 있다면, 전주에 가서 전주말을 쓸 수 있다면, 진주에 가서 진주말을 쓸 수 있고, 군산에 가서 군산말을 쓸 수 있다면, 연평섬에 가서 연평말을 쓸 수 있으면, 우리는 우리가 가는 곳 어디에서든 활짝 웃고 두 팔 벌린 가슴을 꼭 안거나 안길 수 있습니다.

 

말다운 말을 찾으며 삶다운 삶을 찾고, 삶다운 삶을 찾는 가운데 이 땅 이 사람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을 하며 발딛고 있는가를 또렷이 깨달으며 헤아릴 수 있습니다. 말다운 말을 찾지 않으니 삶다운 삶을 찾지 못하면서, 이 땅 이 겨레 이웃과 동무가 어디에서 어떤 눈물과 웃음으로 어우러져 있는가를 느끼지 못합니다.

 

 

ㄴ. 중한 병

 

.. 어머니는 중한 병으로 자리에 누워 살림을 전혀 못한다 ..  <강승숙-선생님, 우리 그림책 읽어요>(보리,2010) 312쪽

 

 '전(全)혀'는 '하나도'나 '조금도'로 다듬습니다. '그예'로 다듬어도 잘 어울리고, "살림에 손을 대지 못한다"나 "살림에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한다"로 다듬어도 괜찮습니다.

 

 ┌ 중한 병으로 자리에 누워

 │

 │→ 큰 병으로 자리에 누워

 │→ 깊은 병으로 자리에 누워

 └ …

 

어릴 때 둘레 어른들은 흔히 "중한 병"이라고들 이야기하셨습니다. 당신보다 손위 어른들이 몸이 아프다 할 때에 '몸져누웠다'고 말씀하면서 하나같이 "중한 병"이라 했습니다.

 

그렇지만 때때로 "깊은 병"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린이책에도 "중한 병"보다 "깊은 병"이라는 글월이 좀더 자주 나오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그리고 "중한 병"과 "깊은 병"보다 '큰병'이라는 글월을 훨씬 자주 보았다고 느낍니다.

 

 ┌ 몹시 아파 자리에 누워

 ├ 크게 아파 자리에 누워

 ├ 아주 많이 아파 자리에 누워

 ├ 손쓸 수 없도록 아파 자리에 누워

 └ …

 

국어사전에 '큰병'이라는 낱말은 안 실립니다. 그러나 '큰병'과 '작은병'이라는 낱말은 얼마든지 새로 지을 만하다고 느끼며, 이렇게 우리 나름대로 우리 말을 빚을 때에 우리 겨레말을 북돋울 수 있다고 봅니다. 병이 얼마나 크거나 깊으냐에 따라 글투를 살짝살짝 바꾸어 "어머니는 죽음이 가까운 탓에 자리에 누워 살림을 하나도 못한다"처럼 적어 볼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몹시 아프셔서 자리에 누워 살림을 조금도 못한다"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골골거리며 자리에 누워 살림에 손을 못 댄다"처럼 적어도 되고요.

 

좀더 헤아린다면 '큰병'을 '큰앓이'로 손볼 수 있습니다. 물을 담는 그릇인 병하고 헷갈릴 만하다면 '큰앓이-작은앓이'처럼 적으면 됩니다. '깊은앓이'나 '죽을앓이'나 '몹쓸앓이' 같은 낱말을 지어도 잘 어울립니다. 우리는 우리 슬기를 빛내어 우리 말을 살찌우면 넉넉하고, 우리는 우리 깜냥을 추슬러 우리 글을 일으키면 흐뭇합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5.30 14:28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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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외마디 한자말 #한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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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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