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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월드컵, 더 이상 망가지지 말길...

우리의 노래를 간섭하지마라!

10.06.23 19:56최종업데이트10.06.23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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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7일 아르헨티나전 때 부산 해운대에서 응원을 했다. 2002년 서울시청 앞에서 붉은 악마와 함께했던 추억을 이어가기 위해 부산의 성지 해운대로 향한 것이다. 하지만 그때와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따라서 6월 23일 나이지리아전은 거리에 나가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해운대 응원 주최측인 현대자동차는 넓은 백사장에 단을 쌓고, 대형 스크린과 스피커를 이용해 시민들이 월드컵 중계를 볼 수 있게 했다. 누군지 모르지만 어떤 젊은 청년이 마이크를 잡고 시종일관 응원을 유도하지만, 너무 노래를 못 불렀고, 강압적인 멘트를 해댔기에 시종일관 거슬렸다.

6월 18일 오후 8시 30분, KBS <책 읽는 밤> 녹화장. 정윤수 문화평론가, 임은주 국제심판, 정준영 방통대 교수, 그리고 필자 이렇게 <축구를 말한다>란 책을 읽은 소감과 축구 이야기를 했다. 정윤수 문화평론가 왈 "응원가를 마음대로 부르지도 못하게 하는 나라가 어디있습니까?", 그는 FIFA의 상업화에 대해 질타를 한다. 6월 17일 부산 해운대의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2002 한일월드컵은 해방이후 온국민이 하나로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던 유일한 시간과 공간이었다. 시청광장엔 그저 대형 멀티비전만 설치되어 있었고, 모두가 함께 보기 위해서 삼삼오오 수만명의 시민들이 붉은 악마가 되었을 뿐이었다. 그때 광고판도, 어떤 현수막도 없었다. 급조된 응원도구와 풍선만 존재했을뿐...

2006년 독일월드컵부터였다. 사람이 모이고, 하나의 주제에 집중하는 자리는 돈이 흐르는 자리가 됐다. 자본은 스스로 이익을 복제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눈치를 보지 않고 눌러앉는다. 정윤수 평론가의 발언은 이런 자본의 속성을 교정하고자 함이지만 우리의 힘으로 불가능하다. 대한민국은 시장의 법칙을 최고로 치는 곳이지 않은가? 서울 시청광장을 대기업의 마케팅 시장으로 만든 것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 이후 오세훈 시장 역시 공모를 통해 SK에게 광장 사용권한을 위임했다. 자유경제체제에서 법적으론 아무 문제가 없는 사안이다. 그런데 기분이 나쁘다.

우리가 국가대표를 응원하는 것은 취향의 문제다. 우리 대표팀을 응원하든 상대팀을 응원하든, 아님 월드컵 자체를 무시하든 그건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또한 응원을 위해 노래를 부른다면 그것 역시 개인의 선택에 따라 달라져야한다. 하지만 공간을 점유한 자본은 그들만의 마이크로 그들이 선정한 노래를 부른다. 물론 다른 노래를 부른다고 광장에서 쫓겨나진 않는다. 단지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뿐이다. 이것이 왜 기분이 나쁠까?

개인의 취향을 억압하는 것은 기분의 좋고 나쁨을 떠나 자존심이 상하는 문제이다. 왜 누가 나의 노래를 선택하는가? 그것이 자본의 선택이라면 이건 인간의 존엄으로 저항해야 하는 문제로까지 확대된다. 우리는 2002년 어떠한 자본의 도움없이도 광장에서 질서를 유지하고 우리의 노래를 부르지 않았던가? 왜 우리는 그 응원구호와 그때의 노래를 부르지 못하고, SK, KT, 현대자동차의 노래를 그것도 그들 자본이 나눈 구역에서 강요당해야 하는가?

만약 개인의 취향이 시장의 논리로 강요되는 것에 월드컵이라는 특별함을 부여한다면, 시장에서 자본이 이익을 수집하는 것이 절대 선이고, 그것에 대한 반기는 불량한 이성이라면, 그 시장의 논리로 우리의 애국가도 공모해도 되지 않나? 전세계 수백만의 축구팬들이 시청하는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부르는 애국가 역시 SK, KT, 현대자동차 버전으로 공모를 한 후, 채택된 애국가를 불러도 이상할 것이 없다. 현 대한민국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이지 않은가?

애국가 공모가 국가에 대한 모독이라면, 시청광장의 권한을 공모한 것은 시민에 대한 모독으로 봐야할 것이다. 이것이 설득력이 없게 들린다면... 좋다! 시장의 논리로 들어가보자.

이번 월드컵 기간중 시청광장의 사용료는 수십억원을 호가할 것이다. 2002년 시청광장의 사용료보단 수십, 수백, 수천의 프리미엄이 붙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럼 이 프리미엄을 경제용어로 무엇이라 불러야 하나? 그것은 흔히 권리금이라고 한다.

권리금 :  택지(宅地)나 건물의 임대차(賃貸借)에서 임대료나 보증금 외에 별도로 주고받는 금전을 말한다.

평시 시청광장 사용료보다 많은 금액은 무조건 권리금에 해당된다. 그럼 이 권리금은 누구의 것인가? 서울시? 2002 월드컵 때 서울시는 시민에게 자리를 내어준 것일 뿐, 그들이 시민을 모집한 적이 없다. 즉 2002 월드컵 응원전을 서울시는 기획한 적이 없다. 붉은 악마가 요청했고, 서울시는 승인을 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간단한 경제상식으로도 2006, 2010 월드컵 서울광장 사용료의 프리미엄, 즉 권리금은 2002 당시 그곳에서 응원한 붉은 악마 개개인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들이 현재의 가치를 만들어낸 최초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나는 분명 2002년 시청광장에서 응원을 했다. 하지만 나에게 서울시는 어떠한 코멘트도 하지 않았다. 얼마의 권리금을 받았고, 그 용도를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또 2006년의 금액은 어떻게 처리했는지 등등...

이 말이 맞지 않은가? 그럼 최소한 서울시는 이번 SK로 받은 사용료를 회계항목에서 어떻게 처리했는가? 이것을 사람의 셈법으로 바꿔보면 불로소득으로 처리해야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서울시가 권리금, 또는 프리미엄을 받을 이유는 경제학적으론 전혀 없다. 단지 시민을 대표한 행정기관으로 프리미엄을 대리 취득할 권한은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역을 공개하고 사용처를 시민에게 물어야함이 마땅하다.

2002, 2006, 2010으로 넘어오면서 월드컵에 대한 자본의 욕심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제 서슴치않고 독점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자본은 그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가장 쉽고 이상적인 방법으로 최고를 '독점'이라 말한다. 그래서 국가나 사회 시스템은 독점을 금지한다. 이번 월드컵은 어떤가? 국가 대표는 KT가 독점을하고, 시청광장은 SK가, 월드컵 방송은 SBS가 독점하고 있다. 자본의 욕심을 제어하지 않는 세상인 것이다. 더 이상 월드컵은 카니발이 아니다. 자본의 페스티벌일 뿐이다.

우리는 이제 자본의 광폭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다음 월드컵에는 서울광장, 해운대와 같은 시민의 공공재에 자본의 마케팅을 철수시켜야 한다. 자본으로부터 해방시켜 시민에게로 돌려주어야 한다.

또한 지금 진행하는 월드컵 응원에서 앞에 마이크를 든 주동자들은 모여든 시민에게 최소한의 양해방송을 해야만 한다. 당연한 듯 그 못난 목소리로 노래부르지 말지어다. 현대자동차든 SK든 KT든 우리는 그들의 품질을 논하거나 이미지 개선을 위해서 거기에 가지 않았다. 그들의 룰로 노래를 불러야만 한다는 양해를 구하라! 만약 그들이 붉은 악마 소속이라면 그 마이크를 놓고 내려오길 바란다. 당신들은 우리의 노래를 강요할 자격이 없다. 차리라 자본에게 고용된 도우미의 노래를 듣는게 낫다.

덧붙이는 글 임유철 축구다큐멘터리<비상> 연출 guerillacam@naver.com
붉은악마 월드컵 시청광장 거리응원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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