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 마르크스! 나랑 얘기 좀 해요

[서평] 'Hi, 마르크스 Bye 자본주의'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등록 2010.06.28 13:43수정 2010.06.28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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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라고는 'Ich liebe dich(나 그대를 사랑해)'라는 노래 제목 밖에 모르는 내가 자막도 없이 무려 9시간이나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자본론>을 봤다. 다양한 사람들을 심층 인터뷰한 장면이 많고 독일어로 말하는 것이라 영화를 봤다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사실은 그저 강렬한 인상을 남긴 충격적인 몇 장면과 수많은 사람을 봤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자본론>에서 단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거대한 기계와 사람이 자동차를 만드는 공정만으로 주제를 막연하게나마 추측할 수 있었다면 오버한 것일까?

 

<자본론>은 흔히 오해하듯 과격한 사회주의 혁명을 실현하기 위한 불온사상을 담은 책이 아니다. <자본론>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자본주의가 지닌 근본적인 문제점, 노동자와 자본가 간의 갈등의 필연성을 핵심적으로 짚어내 마르크스 나름대로 대안을 제시한 경제서다. 자본주의 시대 제왕인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눈이 밝아져 자본주의 허구성과 맹점을 지적하며 파업을 하거나 시시콜콜 따져 묻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

 

일반인들이 감히 <자본론>에 손대지 못한 또 다른 이유라면 아마도 난해함과 방대함 때문이 아닐까. 독일에서조차 <자본론>을 완독한 사람들은 많지 않다니 말이다. 열렬한 마르크스 지지자나 연구자들조차 그를 일반 대중들이 친밀하게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지 못했다. 그저 지하 골방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즐기며 자기들끼리 목소리를 높였던 것이다.

 

인류사를 뒤흔든 <자본론>이 전혀 다른 형태로 왜곡된 채 어두운 지하에 잠자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Hi, 마르크스, Bye, 자본주의>(강상구 지음, 레디앙 펴냄)와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임승수 지음, 시대의창 펴냄)은 인류사를 뒤흔든 <자본론>의 핵심을 쉽고 명쾌하게 보여준다.

 

자본주의의 본질인 이윤추구를 위한 잉여 생산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왜 노동자의 임노동은 끊임없이 대물림될 수밖에 없는지, 자본가들의 끝없는 노동 수탈은 왜 계속되는지, 욕망의 질주를 멈추지 않는다면 실업과 공황이라는 비극적 종말을 맞이하리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 수 있게 설명한다. 그렇게 <자본론>은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현실을 아주 핵심적으로 짚어낸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 시대를 사는 노동자들이 마르크스를 광장으로 이끌어 열띤 논쟁을 벌여야 할 이유다.

 

마르크스의 죄는 천기누설?

 

a Hi 마르크스  Bye 자본주의 자본의 속성을 알기 쉽게 풀어썼다.

Hi 마르크스 Bye 자본주의 자본의 속성을 알기 쉽게 풀어썼다. ⓒ 레디앙

▲ Hi 마르크스 Bye 자본주의 자본의 속성을 알기 쉽게 풀어썼다. ⓒ 레디앙

임금 협상을 위한 노동쟁의에 들어가면 사장들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경기가 나빠 임금을 인상할 수 없으니 마음대로 해라, 혹은 작업장을 폐쇄하겠다는 으름장이다. 그러나 그것은 임금을 인상해 주지 않으려는 자본가들의 꼼수다. 자본가가 천재지변의 악재를 만나지 않았다면 대부분 전년도보다 더 많은 이윤을 움켜쥐었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사장이 노동자들을 상대로 양치기 소년의 롤 모델이 되는 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유·무형의 노동력을 팔아 임금을 받는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노동력을 제공한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마르크스는 그것이야말로 노동자들이 가장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콕 짚어 이야기해 준다.

 

자본가인 찔찔이는 생각합니다. "노동자들한테 노동을 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의 재생산 비용만 주면 되는 거구나. 그러면 노동자들이 회사 나와서 노동을 할 거고. 내가 노동 재생산 비용 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하겠지."

- <Hi. 마르크스 Bye 자본주의> 중

 

상품을 사고 팔 때는 그 자리에서 물건을 받고 돈을 주는 맞교환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노동자는 노동이라는 상품을 먼저 내준 뒤, 한 달 후에 후불제로 임금을 받는다. 사실 노동자는 노동력을 제공한 대가를 받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 자신이 만들어 낸 수많은 잉여생산물 중 극히 적은 일부를 되돌려 받는 것이다. 아무 일도 안 한 자본가는 자본을 투자했다는 이유만으로 노동자들이 만들어낸 잉여 생산물의 대부분을 챙긴다.

 

아무리 착한 자본가도 노동자들이 만든 잉여가치를 가져간다는, 특별잉여가치를 새롭게 만들어 내기 위해 기술혁신에 몰두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본가의 인간성이 아니라 자본의 본성입니다.

- <Hi. 마르크스 Bye 자본주의 중>

 

위와 같은 거대한 비밀을 발견한 마르크스는 그 사실을 혼자 간직할 수 없어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고백한 이발사처럼 <자본론>에 진실을 털어놓았다. 그것이 <자본론>이 오랫동안 어두운 지하에서 비밀스럽게 읽힌 이유와 불온이라는 딱지가 붙은 이유다. 마르크스는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현대판 제왕 자본가들에게 위협받는 처지가 되었다. 죄명은 '천기누설'쯤 되려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인간도 '상품'

 

a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자본론의 본질을 알기 쉽게 셜명하고 있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자본론의 본질을 알기 쉽게 셜명하고 있다. ⓒ 시대의 창

▲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자본론의 본질을 알기 쉽게 셜명하고 있다. ⓒ 시대의 창

"당신은 얼마짜리요?"

 

만일 저런 질문을 받는다면 기분이 몹시 상할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가 아닌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팔아 임금을 받아 생활한다. 정규직, 비정규직 혹은 시간제라는 이름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대가로 임금을 받는 것이다.

 

자본주의 생산관계에서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노동력을 제공하고 자본가는 그 대가로 임금을 지불하는 양자 간의 계약관계가 성립합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고 자유의지로 성립되는 계약이죠. PC방에서 아르바이트로 받는 일당도 양자 간에 합의된 계약관계고, 비정규직으로 한 달 일하고 받는 88만 원도 그렇습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고통 받는 청년실업자들의 고통도 제도권 경제학에서 보면 자신들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지요. 놀기를 선택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자유롭고 동등한(?) 계약 관계 속에서 엄청난 빈부격차가 생기게 됩니다. 인생이 원래 그런 것이라고요? 우리 한번 <자본론>의 칼 마르크스가 되어봅시다.

-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중

 

자본의 본성은 자본과 노동이 결합해 새로운 잉여 가치, 즉 이윤을 생산해내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자본만으로는 절대 새로운 상품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본에 노동력이 투입될 때 상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자본가의 입장에서 보면 잉여 가치를 만들어 내는 노동자의 노동 능력이 곧 사용가치와 교환 가치를 지닌 상품이 되는 것이다. 자본가는 최대한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 노동자의 노동력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 비정규직 시간제 등으로 노동자의 노동력을 착취해 부익부 빈익빈의 구조를  만든다. 노동자들이 제공한 잉여 노동의 가치로  노동자는 노동자로 대물림되고 자본가는 자본가로 남을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찬란한 부활은 왜?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 <자본론>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본론>을 읽거나 간직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유를 저당 잡혀야 했던 대한민국에서조차 청소년을 위한 <자본론>까지 다양한 <자본론>이 출간되고 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왜 찬란하게 부활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자본주의와 신자본주의가 비극적인 종말을 향해  질주를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가가 탐심을 버리지 않으면 인류 전체는 블랙홀 같은 공황의 늪으로 빠져 들어갈 것이다. 인간을 대신한 기계로 인한 실업률 증가, 창고에 쌓여가는 잉여 생산물들이 그 징후다. 마르크스는  오래 전 이미 자본주의가 지닌 맹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나름대로 대안을 제시했던 것이다.

 

신자유주의 붕괴 조짐은 이미 곳곳에서 시작됐다. 자본주의는 더 이상 인류의 꿈과 이상을 실현시켜 줄 수 없다. 위기의식을 느낀 인류가 일찍이 자본주의의 맹점을 간파한 마르크스와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대안을 찾아보려는 절박함에서 마르크스를 부활시킨 것은 아닐까?

2010.06.28 13:43ⓒ 2010 OhmyNews

Hi, 마르크스 Bye, 자본주의

강상구 지음, 손문상 그림,
레디앙, 2009


#자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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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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