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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공화국'의 목표 "너의 모든 것을 알아야겠다"

[영화로 읽는 세상 이야기 40] 타인의 삶을 훔쳐 유지되는 권력 <타인의 삶>

10.07.27 20:16최종업데이트11.05.24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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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브라더는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포스터로 도배된 길. 숲속까지 마이크로폰이 숨겨져 있어 허튼소리라도 했단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 TV처럼 생긴 텔레스크린이 집집마다 설치돼 방송을 송출하고, 집안의 미세한 소리까지 '기관'으로 전송해 국민을 총체적으로 감시하는 국가 오세아니아.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일부분입니다.

군사독재시절 전화나 우편물에 대한 도청, 감청과 사찰은 빅브라더 시대의 상징이었습니다. 지금은? 컴퓨터에 저장된 데이터는 물론 웹서핑 시 들른 사이트와 내려 받은 자료, 이메일, 인터넷뱅킹의 거래 명세와 비밀번호는 물론 메신저 대화까지 모든 정보를 '패킷감청(인터넷을 통해 전송되는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가로채는 것)'으로 통째로 사찰합니다.

사찰공화국 대한민국이 빅브라더 시대에서 '빅브라우저 시대'로 업그레이드를 하고 있는 지금, 한국사회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되묻게 하는 영화가 있습니다. 옛 동독의 비밀경찰인 슈타지 요원을 주인공으로 각종 영화상을 휩쓴 독일 영화 <타인의 삶>입니다. '모든 것을 알아야 하는 것', 그것이 슈타지의 목표라는 살벌한 자막으로 영화는 시작합니다.

독재권력은 타인의 삶을 훔치면서 유지된다

슈타지 요원이자 경찰학교 교수인 사찰 전문가 비즐러(울리히 뮈헤)가 문화부장관 햄프로부터 명령을 받습니다. 동독의 저명한 시인이자 극작가인 드라이만(세바스티안 코흐)을 사찰하라는 것. 하지만 장관의 속셈은 따로 있습니다. 드라이만을 꼬투리 잡아 처넣고 그의 연인인 연극계의 히어로 크리스타(마르티나 게덱)를 자신의 노리개로 삼는 것입니다.

문화부장관 햄프의 명령으로 드라이만과 크리스타를 24시간 2교대로 사찰하는 슈타지 요원 비즐러. ⓒ 유레카 픽쳐스


비즐러는 직속상관이자 친구인 그루비치의 지시에 따라 두 사람이 동거하는 집에 도청장치를 설치하고 부하와 함께 2교대 24시간 사찰에 들어갑니다. 그 와중에 크리스타는 '블랙리스트에 올라 다시는 무대에 설 수 없을 수 있다'고 협박하는 장관에게 차 안에서 능욕당합니다. 

한편 두 사람을 사찰하던 비즐러는 점차 이들의 예술혼과 일상에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두 사람이 집을 비운 사이 브레히트의 시집을 몰래 가져 나와 음미하듯이 탐독하는 한편 둘의 사랑스런 교합을 엿듣고선 매춘부의 젖가슴에 얼굴을 부벼보지만 자신의 모습은 실루엣마냥 허공을 맴돌 뿐입니다. 그러던 중 크리스타가 슈타지에 연행되면서 영화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거칠게 치닫습니다.

'난 그들의 삶을 훔쳤고 그들은 나의 인생을 바꿨다'는 헤드카피처럼 영화는 '타인의 삶'을 훔치는 비즐러를 통해 낡고 부패한 권력이 어떻게 유지되는지를 들춰냅니다. 그와 함께 압제적 권력이 사찰 등 갖가지 수단을 동원해 '지랄발광'을 할수록 삶과 예술이 어떻게 아름다운 힘을 발휘하고 사람을 변화시키는지 보여줍니다. '타인의 삶'을 훔쳐보고 엿듣지만 정작 마음을 빼앗긴 비즐러처럼.

사찰하는 사람도 권력의 부패로 변한다 

영화는 시종일관 사찰하는 자와 사찰당하는 자의 일상을 조망합니다. 그리곤 사찰하는 자의 소리 없는 변화에 방점을 찍습니다. 물론 영화 속 비즐러의 모습을 현실에서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영화는 사찰이라는 권력의 억압 속에도 '관계'가 있고, 사람은 그러한 관계의 일상에 의해서도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드라이만이 살고 있는 건물 꼭대기 층에 마련된 감시 방 마룻바닥에 그의 집 내부구조를 평면도로 그려 놓은 모습은 사찰의 공포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 유레카 픽쳐스


결혼도 하지 않고 오직 국가의 보안과 안녕에 매진해 온 비밀사찰 심문 전문가 비즐러. 그의 억센 심경에 균열이 생기는 단초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권력의 부패에서 비롯됩니다. 권력을 이용해 예술가를 파괴하는 장관과 오직 승진을 위해 그의 수족을 자처하는 그루비치는 믿었던 신념에 파열음을 냅니다. 여기에 자유로운 영혼과 예술을 향유하는 두 연인의 일상은 비즐러의 마음의 문을 비집고 들어옵니다. 
   
이런 비즐러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 브레히트의 시집을 훔쳐 읽는 장면입니다. 소파에 누운 비즐러의 얼굴위로 부드러운 햇살이 일렁이고, 여자를 사랑하고픈 들뜬 소년처럼 브레히트를 읽습니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한 번도 얼굴 표정이 변하지 않으면서 한 사람의 서사를 표현하는 비즐러의 눈빛 연기도 압권이지만, 그의 눈빛을 롱테이크로 찍으면서 심리변화를 설명해 내는 카메라 역시 압권입니다.

비즐러는 감시에서 관음을 거치고 연민을 지나 공감대를 형성하기 시작합니다. 두 연인의 시간과 공간을 사찰하면서 그 안에서 '인간'을 읽고 그리고 자기 안의 '인간'과 대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침내 비즐러는 드레이만의 슈피겔 기고 작전을 동독 40주년 기념 연극 대본으로 기록하고, 그 밖의 일상 역시 허위 보고하기에 이릅니다.      

사찰은 예술가의 영혼을 어떻게 파괴시키는가

특히 영화는 사찰이라는 이름의 폭력과 공포가 예술가를 어떻게 붕괴시키는지를 고발합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사찰'이 횡행하는 사회에서 예술가의 현실과 고뇌, 그리고 자유를 향한 이들의 몸부림은 두 가지 모습으로 대별됩니다.

슈타지에 연행된 뒤 타자기가 숨겨진 곳을 실토하고 비밀정보원 선서까지 한 크리스타가 죄책감을 견디지 못하고 차에 뛰어 들어 자살하자 드라이만이 뛰어 오고 비즐러는 황망한 모습으로 물러 난다. ⓒ 유레카 픽쳐스


드라이만은 작가로서 진실을 추구하기 위해 목숨을 겁니다. 슈타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모든 활동이 금지됐던 연출가 예르스카의 자살을 계기로 동독의 자살률 뒤에 숨겨진 국가 사찰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글을 서독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에 기고하는 '작전'을 감행한 것입니다. 긴박한 작전은 성공하고 드레이만은 유력한 용의자로 슈타지의 타깃이 되고 비즐러 역시 의심을 받습니다. 

그에 비해 크리스타는 사찰의 폭력이 한 예술가의 영혼을 어떻게 파괴시키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슈타지로 연행된 뒤 혹독한 심문 끝에 크리스타는 문제의 타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실토하게 됩니다. 비밀정보원 선서까지 하고 나고서야 풀려난 크리스타는 그러나 절망에 사로잡힌 드레이만의 눈길에 맞닥뜨리자 집 앞을 지나가던 차에 뛰어들어 자살하고야 맙니다.

드레이만의 타자기는 오리무중이고 사건은 종결되며, 비즐러는 우편검열국으로 좌천됩니다. 그리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우체부로 일하던 비즐러는 우연히 서점 쇼윈도에서 드라이만이 쓴 책 광고를 보고 책장을 들춰봅니다. 그 책의 첫 장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습니다.

"HGW XX/7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HGW XX/7, 그것은 드레이만을 사찰할 당시 비즐러의 작전명. 포장할거냐는 서점 직원의 물음에 비즐러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미소 지으며 말합니다. "아니오. 이 책은 날 위한 겁니다." 그리고 영화는 다시금 그의 눈빛을 클로즈업하면서 관객들에게 쉬이 잊히지 않는 감동을 선사합니다.

이명박 정부, '자신의 삶'을 직시하라  

지난 해 박원순 변호사 등을 필두로 민간인 사찰이 고개를 치켜들더니 올해 들어 김종익씨에 이어 남경필 등 한나라당 의원과 이해찬 전 총리 등 참여정부 인사들에 대한 표적 사찰까지 '사찰의 유령'이 고구마 줄기처럼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민간인 사찰만으로도 부족해 백색테러를 의심케 하는 사건이 터졌습니다.

지난 23일 <경향신문>은 사회면 머리기사로 40대 시민이 괴한 3명에게서 "겁도 없이 왜 그딴 글을 올리고 그러냐. 조용히 살아라"라며 얼굴을 38바늘이나 꿰매고 코뼈에 금이 가는 등 전치 6주의 진단을 받은 집단 폭행 사건을 보도했습니다. 피해자는 4대강 살리기 사이트에 보수우익단체를 향해 비판 댓글을 올리고, 촛불시위에 자주 참석했던 말 그대로 평범한 시민이었습니다.

그는 인터넷 커뮤니티나 카페 등에 가입하면서 집 주소를 기재해 놓았으며, 경찰은 그의 어머니에게 '아들이 리스트에 올라 있다는 걸 알았냐'고 되물었다고 합니다. 이미 사찰을 다 마쳤다는 얘기입니다. 이 사건은 마치 영화에서 슈타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뒤 폭력과 사찰을 견디지 못한 예르스카가 '죽음만이 우리에게 유일한 희망'이라는 말을 남기고 자살한 그 '공포의 시대'를 떠올리게 하기에 족합니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기 전 동독은 9만 명의 슈타지와 17만 명의 비밀정보원이 활동하는 등 국가에 의한 총체적 국민 감시체제로 권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권력도 결국 붕괴되고 당시 호네커 당 서기장은 구소련 등지에서 망명생활을 하다 칠레에서 비참하게 죽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사찰은 권력의 만용이나 윗선의 실체 규명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권력의 붕괴는 물론이고, 이 대통령의 명예로운 퇴임조차 보장할 수 없는 비극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가 지금껏 타인의 삶을 열심히 훔쳤다면 이제는 '자신의 삶'을 직시해야 예고된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타인의 삶 사찰공화국 민간인 사찰 김종익 빅브라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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