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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래 감독의 축구대표팀, 패스와 공간 찾기를 즐기다!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한국 2-1 나이지리아

10.08.12 07:59최종업데이트10.08.12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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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경기에서 감독의 전술적 기반이 팀을 어떻게 변모시킬 수 있는가를 잘 가르쳐준 한판이었다. 물론, K-리그에서 경남 FC의 축구를 자주 접해 본 팬들은 어느 정도 익숙한 흐름이었기 때문에 별 다른 것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그 주역들이 붉은 옷을 입은 대표 선수들이었기 때문에 신선함을 주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조광래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은 11일 밤 수원 빅 버드에서 벌어진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에서 2-1로 승리를 거두며 그 첫 발걸음을 가볍게 내딛었다.

중원 조직력의 중심, '윤빛가람'

▲ 윤빛가람 첫골 하나은행 초청 월드컵 대표팀 16강 진출 기념경기 대한민국과 나이지리아의 경기가 11일 오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다. 전반전 윤빛가람(대한민국)이 첫골을 터트린 후 환호하고 있다. ⓒ 뉴시스


축구를 보는 사람들이나 직접 뛰는 사람들이나 가장 힘들고 꼴 사납게 될 때는 수비와 공격 사이가 너무 벌어져 그 두 쪽이 다 힘들어지는 것이다. 미드필더를 두지만 균형을 유지하는 역량이 모자라 공이 가는 곳에만 지나치게 몰려 있다 보니 이런 현상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이런 부분에서 새로 출범한 조광래호는 중원이 비교적 허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기를 지켜보는 내내 상대적인 안정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미드필드의 공간을 우리 선수들이 알차게 채우고 있다는 것은 승리 그 자체보다 의미가 큰 것이었다.

포메이션으로만 보면 '4-4-2' 등 다른 모양새들과 별반 다를 것 없어 보였지만 '3-4-3'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한 조광래호는 미드필더 양쪽에 자리를 잡은 이영표와 최효진이 특유의 왕성한 활동력과 재치있는 몸놀림으로 가운데 미드필더들의 부담을 줄여주었기 때문에 원하는 경기 흐름을 이끌어갈 수 있었다.

조광래 감독이 취임하면서 천명했던 '정밀한 패스를 바탕으로 한 빠른 템포의 토털사커'가 이틀간의 짧은 소집 훈련으로 완성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정밀한 패스를 시도하기는 했지만 팀 플레이 자체가 빠르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수비수-미드필더-공격수가 따로 놀지 않는 토털 사커를 경기 내내 추구했다는 점은 높게 평가할 만했다.

토털 사커의 핵심은 필드 플레이어들의 패스 수준에서 드러난다. 또한 그것이 진정한 빛을 내기 위해서는 선수들의 패스에서 축구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을 준 다음 공간 찾기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적어도 이 부분은 첫 발걸음이었지만 합격점에 가까운 면이었다.

그 중심에 새내기 윤빛가람이 우뚝 서 있었다. 토털 사커를 추구하는 팀에서 패스와 공간 찾기의 적임자임을 단번에 보여준 셈이었다. 경기 시작 5분만에 박지성의 찔러주기를 따라 빠르게 움직이며 효율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한 그는 결국 17분에 국가대표 데뷔전 데뷔골이라는 영광을 누렸다.

오른쪽 옆줄 밖에서 최효진이 공을 머리 위에 들고 던질 곳을 찾자 윤빛가람은 빈 곳을 어김없이 파고들며 공을 다뤘다. 그리고 바로 코앞에는 나이지리아 선수들 중 체격 조건이 가장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간판 수비수 쉬투가 가로막았지만 기본기가 잘 갖춰진 그에게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오른발로 공을 살짝 띄워 쉬투를 따돌린 윤빛가람은 각도가 거의 없었지만 강력한 오른발 슛으로 그물을 흔들었다. 문지기 아이예누그바가 각도를 잘못 잡지는 않았지만 워낙 빠르게 뻗어간 공이 그의 왼 손에 맞고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었다.

이처럼 겁없는 중원의 지휘자 윤빛가람은 전반전 끝나기 직전에 터진 결승골 상황에서도 공을 잡지 않고 박지성에게 밀어주는 활약을 보여주었다. 이 덕분에 박지성은 좋은 각도에서 역시 빈 곳을 파고드는 최효진에게 기막힌 찔러주기를 보내줄 수 있었던 것이다.

'삼각 패스' + '3자 패스'

축구에 관한 요즘 선수들의 머리가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여기저기서 끌어 모은 대표팀의 특성상 이틀만에 감독이 추구하는 정밀한 패스를 바탕으로 한 빠른 템포의 토털사커를 완성시키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완성'이라는 말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경기 내용은 아니었지만 문지기까지 이렇게 감독이 추구하는 스타일을 이해하고 나왔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는 일이다.

이 경기로 국가대표로서의 무거운 꼬리표를 떼어낸 이운재 대신 바꿔 들어온 문지기 정성룡은 후반전 중반에 나이지리아의 역습이 무위로 끝나자 여유 있게 공을 손으로 집어들기보다 발로 빠르게 이영표를 겨냥하여 패스로 연결했다. 새내기 수비수 김영권이 접근하며 공을 받으려했던 장면이 무색할 정도로 빠른 판단과 정확한 패스 실력이었다.

비록 스쳐가는 한 장면이었지만 전에 보이지 않던 이런 순간들이 새로운 팀의 축구 색깔을 대변해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그만큼 이 경기에서 우리 선수들은 짧고 빠른 원 터치 패스를 자주 시도했고 이는 공격적으로 매우 유효했다.

67분, 우리 수비수와 미드필더들의 연결 장면이 바로 그 부분을 말해주었다. 수비수 김영권이 상대의 공을 빼앗은 뒤 바꿔 들어온 미드필더 백지훈에게 공을 빠르게 연결했고 이 공은 윤빛가람과 백지훈, 그리고 오른쪽 측면의 최효진에 이르기까지 정확하게 이어졌다. 보는 이들의 눈이 공의 진행 방향을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민첩했다.

단순히 2:1 패스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삼각 패스'와 '3자 패스'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패스의 향연이었다. 이번 남아공월드컵의 주인공인 스페인 선수들의 그것과는 아직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점유율도 높이면서 보는 이들이나 직접 뛰는 이들이 즐거워할만한 패스 게임을 실천했다는 점이 좋았다.

그들은 감독의 주문대로 패스만 즐긴 것이 아니라 공을 주고받으면서 끊임없이 공간을 찾아다녔기 때문에 유연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아프리카의 강팀을 상대로 머릿속으로 그렸던 축구가 가능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도 욕심을 부리자면...

하나은행 초청 월드컵 대표팀 16강 진출 기념경기 대한민국과 나이지리아의 경기가 11일 오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다. 경기시작전 조광래감독이 벤치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 뉴시스

조광래 신임 감독은 이번 첫 대표팀 선수 선발을 통해 패스 실력이 뛰어난 미드필더를 중시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와 관련하여 수비형 미드필더를 아예 배제하는 방침도 밝힌 바 있다.

여기에 따르자면 가운데 수비 역할을 맡게 되는 이정수나 조용형의 어깨가 더 무거워진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그들의 양쪽에서 '곽태휘, 홍정호, 김영권'이 성실하게 커버 플레이를 해 주기 때문에 큰 걱정이 들지는 않지만 축구의 수비가 그렇게 마음처럼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고개가 조금 갸우뚱해진다.

이번 남아공월드컵에서 매우 인상적인 성과를 낸 두 팀(스페인, 독일)을 예로 들자면 '세르히오 부스케츠(스페인)'와 '케디라-슈바인슈타이거(독일)' 등이 떠오른다. 이들처럼 성실한 수비형 미드필더들이 없었다면 '샤비, 이니에스타(이상 스페인)'나 '외질'이 그들의 실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든다.

윤빛가람과 기성용, 그리고 후반전에 바꿔 들어온 백지훈과 김보경도 공격적 역할을 잘 소화했지만 상대의 힘 있는 역습 상황에서는 만족스러운 포지션 균형을 이루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아무리 전문 수비수 세 명이 버티고 있다고 하지만 58분에 '오뎀윙기 - 마르틴스 - 이데예'로 이어진 3자 패스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우리의 수비 라인을 생각하면 신형민(포항 스틸러스)처럼 뚝심 좋은 수비형 미드필더들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조광래 감독이 이처럼 미드필드에서 무게감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미드필더들의 힘이 좋기로는 나이지리아 못지 않은 이란이 다음 평가전(9월 7일) 상대로 기다리고 있으며, 미드필더들의 아기자기한 패스 실력을 갖춘 일본이 그 다음 상대(10월 12일)이기 때문이다.

내년 1월 아시안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들 평가전 일정이 매우 흥미롭게 준비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조광래호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가을로 미뤄둬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남자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결과, 11일 수원 빅 버드

★ 한국 2-1 나이지리아 [득점 : 윤빛가람(17분,도움-최효진), 최효진(45분,도움-박지성) / 오뎀윙기에(27분,도움-칼루 우체)]

◎ 한국 선수들
FW : 박지성(46분↔이승렬), 박주영(73분↔김보경), 조영철
MF : 이영표, 기성용(62분↔백지훈), 윤빛가람, 최효진
DF : 김영권, 이정수(78분↔조용형), 곽태휘(46분↔홍정호)
GK : 이운재(28분↔정성룡)
조광래 이운재 축구 박지성 윤빛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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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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