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내려야 하고 어머니도 시집가야 한다

김태호 사퇴 소회에 비친 인간의 근원적 욕심

등록 2010.08.31 19:59수정 2010.08.31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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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要下雨 娘要嫁人(천요하우 낭요가인-하늘에서는 비가 내리려 하고 어머니는 시집가고 싶어 하네)'라는 중국 고사가 있다.

 

옛날 중국에 주요종(朱耀宗)이라는 서생이 장원급제를 한 뒤 홀어머니 진수영(陳秀英)에게 열녀문을 지어드리기 위해 황제의 허락까지 받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스승 장문거(張文擧)에게 개가(改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주요종이 "어머니가 개가하면 황제를 속인 죄로 목숨을 잃을 것"이라고 탄식하자 어머니는 비단치마를 풀며 "이 치마를 빨아 널어 내일까지 마르면 개가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주요종은 마른하늘에 비가 오겠느냐고 생각하며 동의했지만 갑자기 짙은 구름이 끼더니 폭우가 하루 종일 쏟아져 결국 어머니가 개가했다는 내용이다.

(http://cafe.daum.net/kunilclub)

 

이를 다시 마오쩌뚱(毛澤東)이 린바오(林彪)와의 권력관계 속에서 인용한 바 있다.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가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자 자진사퇴 의사를 밝힌 후 자신의 트위터에 '비는 내리고 어머니는 시집간다'는 글을 남겼다. 이 글을 두고 진의가 무엇인지 온 나라가 해석하느라고 열중이다. 김 후보자가 아무런 설명 없이 이를 인용함으로써 주요종의 마음을 빗대어 한 것인지, 마오쩌뚱의 마음을 표현하려 한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이 얘기의 본질을 살펴보면서 김 후보자의 소회가 가당키나 한 것인지, 개인의 욕심이 글 속에 묻어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는 있다고 본다.

 

주요종을 통해 김태호를 들여다 보다

 

주요종은 비록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지만 장원으로 급제해서 개인과 가문의 영광이 됐다. 주요종의 장원급제는 반드시 칭찬할 일이다. 또 어머니를 위해 열녀문을 세우려고 황제의 허락을 받은 것도 칭찬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핵심이 무시되거나 소홀히 여겨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주요종 자신의 생각만 있고 어머니의 생각이 없다는 점이다.

 

주요종의 말이 "어머니가 개가하면 황제를 속인 죄로 목숨을 잃을 것"이라고 탄식했다는 대목이 있다.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려면 어머니의 희생과 양보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다. 주요종의 욕심이 한껏 드러나는 부분이다.

 

주요종은 어머니를 배려하는 마음이 없이 욕심은 계속 치닫고 있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맑은 날임에도 "이 치마를 빨아 널어 내일까지 마르면 개가하지 않겠다"고 제안하자 아들은 이를 수용했고 기어이 그 치마가 마르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즉, 아들을 위해서 어머니는 여자로서의 인생을 포기하라는 요구이며, 일방적인 희생이 계속 강요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끝내 비가 내려 치마가 마르지 않게 되자 아들은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려 하고 어머니는 시집가고 싶어 하네"라고 말했다. 끝까지 어머니에 대한 배려는 없고 자신만을 걱정하고 있는 꼴이다.

 

김 후보자도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서울대에 진학했고, 후에는 거창군수와 두 번의 경남도지사를 지냈다. 주요종과 마찬가지로 시골 출신임에도 열심히 공부해서 나름대로 성공했다. 그는 40대에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돼 이 나라를 이끌어갈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의원들이 김 후보의 의혹을 계속 제기할 때마다 말을 바꿔 대답하는 등 국민들에게 기대보다 실망을 더 안겨줬다. 급기야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사퇴 불가피론이 나왔다.

 

마침내  김 후보는 "각종 의혹에 대해서는 억울한 면도 있지만 모든 것이 제 부덕의 소치라고 생각한다. 저의 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데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더는 누가 돼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저는 오늘 총리 후보직을 사퇴하고 백의종군하겠다"고 밝혔다. 후에 '비는 내리고 어머니는 시집간다'라는 고사에 얽힌 얘기를 인용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김 후보자의 뜻은 지금 내리는 이 비가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니까 내려서는 안 된다는 말이 된다. 주요종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명예와 영달을 위해서라면 어머니의 인생쯤이야 존중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를 위해 희생될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바꿔 말해서 이타적인 배려심이 아닌 이기적인 욕심은 혹 아닌가라고 여겨지는 부분이다. 김 후보자는 사퇴하면서 밝힌 변에서처럼 자신을 돌아봐야지 뒤에서 누구를 탓할 일은 아니다. 만일 아쉬움이 있다면 오히려 후일을 도모할 일이다.

 

지금 내리는 이 비를 간절하게 기다리는 어느 농부나 또 어느 어머니가 있음을 김 후보자를 비롯해 우리 모두는 헤아려야 할 것이다. 비는 내려야 하고 어머니도 시집가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북연합신문 9월2일자 게재 예정

2010.08.31 19:59ⓒ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전북연합신문 9월2일자 게재 예정
#김태호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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