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단계 회사를 나타내는 그림 뉴시스
▲ 다단계 회사를 나타내는 그림
| ⓒ 뉴시스 |
|
그런데 이 곳, 뭔가 이상했다. 들어가자마자 사람들이 짝을 이루어서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무슨 상담원 교육하는 곳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나가고 싶었지만, 그걸 말할 새도 없이 나는 선배와 함께 회사 안에 있는 빈 탁자 앞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게 됐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선배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한 여자분을 보고 인사를 했다. 그분은 내 맞은 편에 앉았고, 선배는 내 오른쪽에 앉았다. 상황 파악을 전혀 못하고 그냥 눈치만 보고 있는데, 그 여자분이 말을 시작했고 선배는 함께 맞장구를 쳐주었다.
거의 20분 정도를 들었던 것 같은데, 내용은 이랬다.
"네트워크 마케팅이라는 게 있는데, 이는 우리가 좋은 게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소개해 주는 걸 마케팅 기법에 적용한 것이다. 흔히들 '다단계'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다단계는 불법이지만 네트워크 마케팅은 합법이다. 나를 포함해서 단 세 명만 있으면 자회사의 물건 몇 개만 사도 돈을 쉽게 벌 수 있다."
이게 전부였다. 그리고 그 여자분은 다른 탁자로 갔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이후 나는 똑같은 얘기를 다른 사람에게서 몇 번 더 들어야 했다. 네트워크 마케팅으로 돈을 벌어서 유명 대학교를 사겠다는 젊은 여자분도 있었고, 다른 사업을 하다가 이 일을 했는데 정말 수익이 좋더라는 중년 남자분도 있었다. 한두 사람이 아니었기에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들이 하는 말은 마치 똑같은 대본을 보고 외운 것 같았다. 자기도 처음에는 네트워크 마케팅을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하다보니 정말 돈을 잘 벌 수 있었다고. 내가 해보니 너무 좋으니까 사람들에게 소개시켜 주는 거라고.
그렇게 계속 이야기를 듣다보니, 나도 이렇게 하면 정말 돈을 잘 벌 수 있겠다 싶었다. 두 사람만 구하면 되는데 뭐가 어려운가. 거기다 내가 아는 또 다른 선배가 그 회사에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더 이상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곳에서는 내게 생각할 기회를 준다고 하면서 다음날 다시 보자고 했고, 나는 함께 간 선배와 함께 좋은 기분으로 돌아왔다.
사람이 돈으로 보이는 순간, 뭔가 잘못됐음을 느끼다
그리고 다음 날, 점심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내 주위의 사람들이 전부 돈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전날 설명을 들은 게 떠오르면서 기분이 좋았는데, 조금 있으니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 같은 게 하나도 안 보이고 오로지 내 돈벌이 수단이라는 생각만 드는 것이었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고 그 순간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미 약속은 잡혀 있었고, 선배가 정말 바쁜 사람인데 나한테 소개시켜주는 거라고 했기 때문에, 그 선배의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나는 그 곳에 가야했다.
그렇게 그 곳에 두 번째로 갔다. 여전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다 네트워크 마케팅이 좋다고, 자기가 좋으니까 나한테 소개해주는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더 이상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경험을 하고 나니 그 사람들 말이 전부 다 거짓말로 들렸다. 심지어 그날은 제일 최고 등급에 있는 한 사람이 와서 같은 이야기를 해 주는데, 전혀 집중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선배에게 도저히 오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선배는 이미 약속이 잡혀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무조건 와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내가 오지 않으면 자기 이미지는 물론, 내 이미지도 정말 안 좋아질 거라고 하면서, 내일 하고 싶은지 여부를 이야기하면 된다고 했다. 내일 오지 않을 거라 말하면 된다니, 정말 복음이 따로 없었다. 이틀 동안 들었던 그 지긋지긋한 이야기들로부터 해방이라니.
3일간의 지옥, 그것은 '다단계'였다
드디어 마지막 날, 난 또 같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하지만 이젠 대놓고 듣기 싫은 척을 해버렸다. 나를 데리고 왔던 그 선배가 뭔가 이상한 걸 눈치챘는지 내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얘기하지 않았다. 처음의 그 여자분을 만나면 대놓고 이야기하려고 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첫날 만났던 그 여자분이 와서 물었다.
"어떠셨어요? 이거 해 보실 생각 있으세요?"
"아니오."
내 대답에 그 여자분은 물론 함께 있었던 선배도 놀랐다. 시종일관 나를 웃으면서 대하던 그 여자분은 갑자기 싸늘한 표정을 지으면서 왜 안 하고 싶냐고 물었다.
"이런 식으로, 꼭 지금 돈을 벌어야 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럼 돈을 안 벌고 싶다는 말씀인가요?"
"그게 꼭 지금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돈 버는 것에도 크게 관심은 없고요."
"그럼 평생 돈을 안 벌고 사실 생각이세요? 이렇게 괜찮은 방법이 있는데?"
그 여자분은 계속 나를 설득하려 했다. 사실 내 얘기는 크게 논리적이지 않았기에, 정신이 조금만 흐트러지면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끝까지 '난 정말 이거 하기 싫다'라는 이야기만 했고, 그 여자분도 포기했는지 여전히 싸늘한 표정으로 내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3일 동안의 '지옥'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그 후 내게 연락을 했던 선배와, 그 곳에서 만난 다른 선배와 더 이상 연락이 되지 않았다. 나중에 나를 데리고 갔던 그 선배는 집에 일이 생겨서 휴학을 했고, 다른 선배는 군대를 갔다는 소식을 한 번 들었을 뿐이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한 TV 프로그램에서 대학생을 다단계 판매에 이용한다는 이야기를 크게 다루었다. 아무래도 그 때 경험도 있고 해서 그 프로그램을 유심히 보는데, 맙소사, 내가 3일동안 경험했던 게 바로 그 다단계였다. 혹시나 싶어 인터넷에서 해당 회사 이름을 검색해 보니 피해 사례가 한두 건이 아니었다.
만약 내가 성급하게 첫 날 결정을 했더라면, 사람이 돈으로 보이는 그 경험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하는데, 잠깐이지만 내 정신까지도 흩뜨려 놓았던 다단계의 경험. 덕분에 돈을 쉽게 벌 수 있다는 이야기에 더 이상 혹하게 되진 않았으니 그 선배와의, 그리고 다단계와의 잘못된 만남이 어쩌면 내게 더 잘 된건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그 선배들은 여전히 다단계의 늪 속에 살고 있으려나…연락이 된다면 다시 만나서 물어보고 싶은데. 만약 아직 그 곳에 있다면, 그 선배들도 어떤 계기로든 그 곳에서 빠져나왔으면 좋겠다. 더불어 그 곳에 빠진 사람 모두가 제발 빠져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잘못된 만남> 응모글입니다.
| 2010.09.08 11:59 | ⓒ 2010 OhmyNews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