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기나 하고 그런 소리 하세요?

은평씨앗학교 아이들이 다녀온 낙동강 여행 이야기

등록 2010.09.15 15:34수정 2010.09.15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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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 응암동에 있는 씨앗학교(http://www.seedschool.net) 아이들은 여름마다 다함께 여행을 간다.  평범한 여행이 아니다.  여름방학에 아이들이 줄지어 관광버스에 나눠 타고 떠나는 캠프하고는 다르다.  씨앗학교 아이들은 여행을 가기 몇 달 전부터 팀을 나누고 회의를 시작한다.  이 여행이 어떤 여행이 되면 좋을지, 여행은 왜 가는지, 여행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심각한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일정 정하기, 밥하기, 대중교통 알아보기 따위도 함께 살펴보고 결정한다.

나는 오래 전부터 씨앗학교에서 여름마다 여행 가는 것을 보면서 중학생 나이에 이런 것들을 스스로 해내기란 쉬운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말로 그렇다.  이 여행은 여행사를 끼고 편하게 가는 게 아니다.  미리 준비한 큰 차를 타고 목적지까지 한 번에 간 다음 역시 미리 준비한 유스호스텔 같은 곳에 묵고, 당연하게도 미리 준비 돼있는 체험이나 관광코스를 돌다가 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선생님은 오로지 대중교통만 이용해서 목적지까지 간다.  당연히 한 번에 갈 수 있는 대중교통 수단은 없다.  어딘가에서 버스나 기차를 갈아타야하고, 목적지가 대도시가 아니라면 차가 오가는 시간을 맞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에 고작 한두 번 있는 버스 시간을 놓쳐 다음 목적지까지 몇 시간이고 걸어야 하는 일이 생긴다.

이런 식으로 씨앗학교 아이들은 몇 해 전 중국에 다녀왔고 작년엔 완도를 시작으로 그 근처에 있는 섬들을 돌아다녔다.  올해는 8월 23일부터 29일까지 일주일동안 구례, 상주로 내려가서 섬진강을 거쳐 낙동강 주변을 여행했다.  강을 따라 걷다가 지리산 노고단에 오르는 것도 일정에 포함됐다. 

지리산에 갔을 땐 몇 해 전부터 구례에 내려가서 환경운동가로 변신해 살고계신 정태연(구례에 내려가기 전에는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은평구위원회 위원장이었기 때문에 씨앗학교와 인연이 있었다.) 선생님이 많이 도와주셨다.  상주에 갔을 때는 거기서 활동하는 '강과 습지를 사랑하는 상주사람들 모임(줄여서 [강습사])'분들이 친절하게 안내해주셔서 잘 지낼 수 있었다.

이번 여행 목적지로 아이들이 강을 선택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그래, 바로 우리가 TV에 나올 때마다 생각을 떠올리고 때론 무심히 걱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그 강 말이다.  아이들과 선생님은 거기에 직접 가서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았다.  우리가 지금 강에게 하고 있는 일이 대체 무슨 일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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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보 공사현장 씨앗학교에서 지난 달에 상주보 공사 현장을 다녀와서 찍은 사진이 빨간색 큰 네모다. 왼쪽 작은 네모는 약 1년 전 사진이다(이때도 공사를 하고 있었다). ⓒ 윤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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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모습 지금 사진과 비교를 위해 약 1년 전 공사 사진을 확대 해봤다(사진은 강과 습지를 사랑하는 상주 사람들 모임 에서 만든 전단지에서 얻었다). ⓒ 윤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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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전 모습 이 사진은 2008년 어느 잡지 기사에 '낙동강 절경 여행'이라고 하면서 소개한 곳에서 캡쳐한 것이다. 위와 같은 곳이고, 공사를 하기 전 사진이다. ⓒ 윤성근


상주에 도착해서 비봉산을 오르다 고즈넉한 분위기를 간직한 사찰 황룡사를 만난다.  거기서 산 정상 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다보면 갑자기 절벽 쪽으로 삐죽하게 뻗어나간 나무 난간이 있다.  낙동강을 내려다볼 수 있도록 만든 전망대다.  경관이 좋은 곳이라 사람들은 여기서 사진도 찍고 산바람도 맞으면서 잠시 쉬다가 올라간다.  그런데 그 좋은 경관이 지금 건설하고 있는 '상주보' 공사 때문에 다 망가졌다. 


'보'라는 것에 대해서는 새삼스레 말 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하지만 솔직히 나도 4대강 공사 전에는 '보'라는 말을 들어만 봤지 그게 뭔지 잘 몰랐다).  말 그대로 흐르는 강에 설치해서 물을 조금 막아두는 구조물이다.  하지만 비봉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상주보는 물을 '조금 막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것은 누가 봐도 거대한 댐을 만드는 공사다. 이미 강 둔치는 모두 망가졌고 그 옆으로는 중장비와 덤프트럭만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오간다. 이 공사가 얼마나 급한 것인지 해가 떨어진 밤에도 시끄러운 기계소리는 쉬지 않는다.

얼마 전 내가 운영하는 책방에 온 손님과 4대강 공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일이 있다.(그는 대학교 2학년이다.)  이 분도 4대강 공사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환경파괴라는 것에도 동의했다.  하지만 일단 시작한 것이니까 반대를 한다는 건 더 옳지 않다고 그런다.

"자꾸만 지금 공사 중인 사진을 찍어서 네티즌 들이 마구 인터넷에 올리는데 잘못된 겁니다.  전혀 객관적이지 못해요.  사람도 성형 전, 성형 후 사진 두 개가 중요하지요.  어떤 사람이 수술하고 있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서 인터넷에 막 올리면 누가 그 병원 가겠어요?  그 사진은 누가 봐도 흉물이죠.  4대강도 똑같아요.  나중에 다 완성하고 나서 사진 찍어 올려 봐요.  얼마나 멋있을지……."
그러면서 마지막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얼마나 멋있을지, 청계천처럼……."

계속 얘기하다가는 괜히 말싸움이 될 것 같아 거기서 마무리 했는데 참 속이 찜찜했다.  그래, 강은 지금 성형을 하고 있는가보다.  쌍꺼풀 긋고, 코 세우고, 턱도 좀 깎고…….  하지만 강은 애초에 누군가에게 예뻐 보이고 싶은 생각이 없었을 거다.  강은 물론이고 거기 피어 있던 꽃이랑 나무들도 사람들에게 예쁘게 보이려고 거기 그렇게 있는 건 아니다. 그런데 참 인심좋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강을 예쁘게 고쳐준다고 달려들었다. 강이 죽었으니까 살려준다고 그런다.

강은 어쩌면 몇 년 후, 성형수술 받고 예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낙동강에서 자전거를 타고 뚝섬 서울 숲까지 올 것이다.  강에는 커다란 유람선이 떠다니고 그 안에선 멋지게 만들어진 자연에 감탄하는 연인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 다음 어쩌면 사람들은 언젠가 거기 있었던 수수하고 평범했던 강을 기억하기 힘들겠지.  예쁘면 모든 게 다 용납되는 세상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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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끄러미... 씨앗학교에 다니는 한 아이가 전망대에서 상주보 공사현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 윤성근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다.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가서 보는 게 낫다.  사람들이 4대강 공사 현장에 얼마나 많이 다녀왔는지 모르겠다.  상주에서 활동하는 '강습사' 회원들 말을 들어보니 꽤 많은 분들이 왔다고 한다.  하지만 고작 몇 천 명 정도다.  그것 가지고는 모라자다.  그 열 배, 스무 배 되는 사람들이 와서 지금 강이 어떻게 돼있고 앞으로 어떤 모습이 될지 눈으로 직접 보길 권한다.

워낙 매스컴에서 '4대강, 4대강' 노래를 부르다시피 하니까 무턱대고 자연파괴 때문에 공사를 반대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지금 4대강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자연파괴 그 이상이다.  생명줄을 부러뜨리고 문화를 헤집어 땅속에 생매장한다.  이것은 죽은 강을 살리는 게 아니라 몇몇 사람들이 돈을 벌려는 이기심 때문에 벌어진 대규모 토목사업에 다름 아니다.

이런 주장이 너무 극단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직접 가서 보길 바란다.  그러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지금 거기서 오늘도 쉼 없이 벌어지고 있다.  성경에 이런 장면이 있다.  예수라는 사람이 워낙 유명하다보니 어떤 사람이 예수 선생을 만났던 사람에게 물어본다.  그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그러느냐고.  예수를 만났던 사람은 긴 설명 대신 그에게 이렇게 간단히 대답한다.  "와 보라.(come and see.)"  나는 4대강에 대해서 사람들이 물으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가 보라.(go and see.)"  어렵지 않다.  잠깐 휴가를 내든, 주말을 이용하든 가보면 안다.  우리가 TV에서 보던, 신문에서, 혹은 잡지에서 보던 그 장면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이 얼마나 엄청난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직접 가서 봐주길 바란다.

* 씨앗학교에서 갔던 상주지역 활동가 모임인 '강과 습지를 사랑하는 상주사람들(강습사)' 다음카페에 가면 이곳을 직접 방문할 수 있는 정보가 있으니 참조하기 바란다.
다음카페 링크 : http://cafe.daum.net/sangjurnw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은평씨앗학교 #4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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