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정말 철인을 원하지 않는 것일까

민주시민을 키우는 프랑스 교육엿보기 <아이와 함께 철학하기>

등록 2010.09.29 14:23수정 2010.09.29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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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 무엇인가요?"

 

이 한마디로 유쾌한 오리엔테이션 분위기는 잠시 적막해졌다. 잠깐 당황스러운 눈빛을 지닌 교수는 이내 입가에 미소를 띠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바보이거나 질문의 방법이 잘못되어 있는 것이라고. 그러면서 친절하게도 건축학도가 가져야 할 사명감에 대해 설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대학 신입생으로서 자신의 전공에 대해 그 정의를, 신입생 모두와 생각하고 교수의 생각을 들어볼 기회라고 생각해서 던진 질문이었다.

 

잘못이었다. 일단 나는 적절한 대상을 택해서 질문을 던졌어야 했다. 교수는 건축전공자이지 철학전공이 아니기 때문에 단어의 정의에 접근한다거나 하는 기회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차라리 고건축과 현대건축의 연관성을 묻거나 모더니즘이 가진 상징성 등을 물었더라면 훌륭한 질문이라는 칭찬과 함께 분위기는 좀 더 진지해지거나 지루해졌을지 모른다(물론 당시 고졸 수준에서 그런 질문이 나오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대학교수란 자가 신입생의 호기심에 불을 붙여주지는 못할망정 찬물을 끼얹은 것은 교육자로서 소양 부족이다. 그의 탓만은 아니다. 자신이 교육받은 대로 제자들에게 베푸는 것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대부분 4지선다형의 문제풀이를 위한 암기교육에 익숙한 우리에게도 그 상황은 별로 이상한 풍경이 아니었다.

 

우린 창의력이 높거나 아이디어가 독특한 인재를 좋아하지 않는다. 비판능력이 뛰어나거나 뛰어난 사고력으로 남들이 짚어내지 못하는 사회적 문제를 잡아내는 이들을 반기는 곳도 드물다. 초등학교 중학교 뿐 아니라 고등학교에서 조차 철학, 인문학을 배우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니, 거꾸로 되었다. 철학교육의 혜택(?)이 없는 현실 때문이다.

 

 손을 번쩍 들고 즐거워하는 학교의 아이들. 이런 풍경은 너무 부럽기만 하다.
손을 번쩍 들고 즐거워하는 학교의 아이들. 이런 풍경은 너무 부럽기만 하다. 문학동네
손을 번쩍 들고 즐거워하는 학교의 아이들. 이런 풍경은 너무 부럽기만 하다. ⓒ 문학동네

입시와 철학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가장 쉽게 예를 드는 것이 프랑스의 사례다. 바칼로레아의 출제방식과 채점 등을 예로 들면서 결코 암기하려해서는 답을 낼 수 없는 문제해결능력에 대한 평가방법을 논하기도 한다. 왜 그들은 그런 복잡한 경쟁평가를 시행할까. 그들이 기르고자 하는 시민은 그런 비판능력을 갖춘 '생각하는 인간'이어야 한다는 것 아닐까.

 

이 책은 프랑스의 철학교수가 현재 운용되는 철학교육의 확장을 주장하기 위해 쓴 책이다. 고등학교 뿐 아니라 그 훨씬 이전인 유치원 때부터 가능한 것이 철학교육이라는 것을 주장한다. 날 때부터 부모와 대화를 통해서 시작하는 것이 철학교육이었다.

 

다양한 주제에 대한 실례는 유아기의 아이들부터 초등학생에 이르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이'들이 어떻게 철학을 접하는지를 보여준다. 학습을 통해 길들여진 어른들에게서는 나오기 힘든 다양한 생각의 표현이 왜 철학교육이 필요한지를 증명한다. 모두가 철학자이며 가정에서 시작해서 공공교육기관으로 이어지는 철학교육에 관한 주장을 다루고 있다.

 

책의 2부에서 학교의 의미와 도덕의 문제, 민주시민의 의미, 종교에 관한 고차원적인 주제를 놓고 말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절로 즐거워진다. 책에는 있지만 한국의 현실에는 없다. 입시라는 대의를 위해 '같이 사는 사회'에 꼭 필요한 시민의 소양을 희생하는 것을 자연스레 여기는 현실은 안타깝다. 우린 정말 철인(哲人)을 원하지 않는 것일까.

덧붙이는 글 | 아이와 함께 철학하기/ 프랑수아 갈리세 지음·강주헌 옮김/ 문학동네/ 13,000\

2010.09.29 14:23ⓒ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아이와 함께 철학하기/ 프랑수아 갈리세 지음·강주헌 옮김/ 문학동네/ 13,000\

아이와 함께 철학하기

프랑수아 갈리셰 지음, 강주헌 옮김,
문학동네, 2010


#철학 #아이들의철학 #프랑스교육 #철학의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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