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0.09.30 17:42수정 2010.09.30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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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생일 파티'라는 제목을 달았지만 그 속에 이 글의 의미를 다 담아낼 수는 없습니다. 많은 생일 축하모임에 참석해 보았지만 이건 저에게 하나의 충격이었습니다. 상처가 아니라 '선한 충격'입니다. 이런 충격은 저에게도 때가 되면 실행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만듭니다.
좀 늦은 시간에 우리는 만났습니다. 경북 김천 시내에 있는 한 횟집이 모임의 장소입니다. 우린 조용한 곳을 찾아 맨 안쪽 방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모인 사람은 모두 여섯 명입니다. 생일을 맞는 당사자 부부, 그리고 그들과 가깝게 지내는 최 사장 부부와 우리 내외가 그 날 모임의 구성원들입니다. 어떻게 보면 같은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인데, 우리는 최근에 자주 만나 힘들 때 서로 위로도 하고 식사도 하며 야외에 나아가 시간을 함께 보내곤 했습니다.
며칠 전(9월 28일), 생일을 맞은 분은 올해 68세입니다. 그럼에도 18청춘의 소녀 마음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여인입니다. 산전수전 다양한 경험 속에 삶을 불태워 온 분이 외양도 마음도 이렇게 맑은 것은 어디에 기인하는 것일까요? 그분의 부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올해 고희에 셋을 더 보탠 연치(年齒)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국 신사라는 별명을 붙여도 손색이 없을 만큼 깔끔한 분입니다. 부부가 함께 오랜 기간 생활하면 닮아간다는 말이 있는데, 이들 두 분을 두고 하는 말 같습니다.
부군되시는 노신사가 얼굴에 홍조를 띠며 세 송이를 하나로 묶은 장미를 선물했습니다. 마치 십대 후반의 청년이 여자 친구에게 아름다운 꽃을 전달하는 모습을 연상하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서툴기 그지 없으면서도 순수하고 진지한 사랑의 마음이 얹혀 있었으니까요. 그가 아내에게 꽃을 선물한 것은 아마 처음일 거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반복되는 행위가 아닌 처음 하는 일은 서투르고 부끄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는 꽃을 전달하며 그는 부언했습니다.
"아내의 생일날 제가 전하는 이 세 송이 장미는 각각 의미가 있어요. 첫째 장미는 우리의 사랑을 상징하는 것이요, 두 번째 장미는 건강하라는 소원이 담겨 있는 꽃이에요. 그리고 세 번째 꽃은 그래서 내내 행복한 삶을 살자는 다짐의 의미가 있어요."
우리는 동감의 박수를 우렁차게 보냈습니다. 옆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던 손님들도 분위기를 읽고 축하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우리는 맛있게 음식을 들었습니다. 내륙지방에서도 이런 싱싱한 회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신기해하면서 말입니다. 전국에 일일 생활권이 도래한 혜택을 우리가 톡톡히 누리고 있는 것을 실감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분위기가 한참 무르익을 즈음, 노신사가 진중하게 말을 꺼냈습니다. 장미 선물 외에 또 특별히 준비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수줍어 아주 매끄럽지 않은 행동으로 양복 안주머니에서 흰 편지 봉투 하나를 꺼냈습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생일을 맞은 아내에게 주는 남편의 특별 보너스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결혼 직전 주고받은 몇 장의 연애편지 이후 결혼 생활 45 년 만에 처음 주는 연서라고 했습니다.
그가 장미 세 송이를 전달할 때는 결혼 후 처음이라는 말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마'라는 부사어를 앞에 붙여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이 연서는 처음임이 확실합니다. 그만큼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천천히 그리고 감정을 넣어 그 연서를 읽어 내려갔습니다. A4 용지 두 장에 걸쳐 빽빽하게 쓴 편지는 오랜 풍상을 헤쳐 나온 아내에 대한 감사함이 그득했습니다. 그리고 변함없는 사랑의 마음을 노회함이 아닌 진실하게 글로 표현했습니다. 글의 초반부를 읽어 내려갈 때부터 부인의 눈가엔 물기가 잡혔습니다. 그가 몹시 감읍해했습니다. 중간 쯤 읽을 때엔 붉게 충혈된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우리도 덩달아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것이 진정 삶을 굳세게 살아온 두 사람의 진정한 사랑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나오는 동감의 눈물이었습니다. 제 아내는 휴대폰으로 연신 사진을 찍어댔습니다. 73세 노신사의 마음이 한결 돋보이는 순간입니다. 그는 글 속에 이런 내용을 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만나 헤어지고 심지어 황혼 이혼이라는 말까지 유행하는 지금 가정을 지키며 못난 남편과 자식들을 사랑으로 거둔 그 마음 잊지 않겠다고...
아름다움 사람은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고 아름다운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저는 이 노부부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들은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워 출가시켰고, 또 그들의 다복한 삶은 주위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런 부부가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 가득한 관계 속에도 아픔이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려움도 따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나날을 인내로 이겨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이 인내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사랑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자기의 주의주장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관계가 단절되기 쉽습니다. 이것은 비단 부부관계에 국한되는 얘기가 아닙니다. 사회의 관계 형성에도 명심해야 할 것이 자기주장, 자기 고집을 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부부의 아름다운 생일 파티를 보면서 이런 순수하고 맑은 마음이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밝고 청정해질까를 생각했습니다. 이분들의 앞날에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특별한 생일 파티라고 이름했습니다만 이런 모습이 우리에게 일상적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생일 파티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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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