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도초교 담벼락.
성낙선
폐교를 지나 황도 북쪽의 언덕을 오른다. 순전히 그곳에는 뭐가 있을까 하는 호기심 때문이다. 그 언덕에서 마늘을 심다가 잠시 쉬면서 새참을 들고 있는 섬 주민들을 만났다. 그냥 조용히 지나칠 생각이었는데, 길 위에 상을 차린 격이라 그 길을 지나가면서 인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긴 뭐 하러 가게? 계란이나 먹고 가누구여? 다들 어리둥절해 하는 표정이다. 갑자기 낯선 복장에 짐가방을 매단 자전거를 가지고 나타난 이방인이 이상했을 법하다. 그러다 내가 손가락까지 들어 보이며 저 건너 편 언덕 위로 올라가려 한다고 했더니, 이구동성으로 거긴 뭐 하러 가냐고 야단이다. 더 이상 가봐야 길이 없다고 그냥 돌아가라고 손을 휘휘 내젓는다. '그래도 뭐가 있는지 궁금하다, 그냥 한 번 올라갔다 내려오겠다'고 하자 비로소 길을 열어준다.
그렇게 길을 열어주고 그냥 보내주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그냥 가면 안 된다고 계란 좀 먹고 가라고 야단이다. 뭐 좀 먹고 가라는데 그냥 가는 자전거여행자는 없다. 그렇게 해서 그 자리에 철퍼덕 주저앉아 순식간에 계란 4개를 먹어치웠다. 마침 시장기가 돌던 때라, 계란 같은 건 백 개도 더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계란만 먹으면 목이 막히니까 열무김치를 곁들여 먹으라고 하면서 젓가락까지 건네줘서 열무김치를 또 무진장 먹었다. 나중에는 밭주인이 와서 술 한 잔 안 줄 수 없다며 소주를 종이컵으로 가득 따라주는 바람에 그것까지 받아 마셨다. 참 알딸딸한 분위기다.
정말 잘 먹었다. 오늘 길에서 이런 대접을 받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배불리 잘 먹었다고 하면서 배를 두드리니까, 이번에는 또 잘했다고 웃으면서 박수까지 쳐준다. 참 신통방통하다. 별로 한 일도 없는데 이렇게들 까지 좋아하시다니. 나도 나이가 적지 않은데, 어르신들 앞에서 마치 내가 재롱을 피우는 어린아이라도 된 기분이다. 칭찬을 해주니까 괜히 어깨가 으쓱해진다.

▲ 마늘 농사를 짓는 섬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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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먹은 힘으로 순식간에 달려간 언덕 위 밭주인이 집에서 직접 기른 닭이 낳은 달걀이라고 했으니 건강식이 틀림없다. 갑자기 없던 힘이 솟아나는 것 같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언덕 끝까지 올라갔다. 그 힘이 달걀 때문인지, 아니면 그 달걀을 건네준 인심 때문인지는 분간하기 어렵다. 시골 인심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해안 풍경이 시원하다. 천수만과 방조제, 그리고 간월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안면도 근처에 아직 이런 곳이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여느 섬 같았으면 벌써 펜션 2,3개는 들어섰을 자리다. 하지만 주변으로 온통 잡풀과 잡목이 우거졌다.
새 다리가 놓여서 앞으로 황도가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폐교와 잡풀로 우거진 언덕이 그대로 남아 있을지는 의문이다. 언덕을 내려오는데 아까 달걀을 함께 먹던 주민들이 모두 마늘을 심느라 여념이 없다. 큰 소리로 인사를 드렸다. 다음에 또 들르겠다고.
안면도를 나와서는 B지구방조제를 바람처럼 달린다. 간월도까지 거침이 없다. 간월도에서 잠시 머문 뒤, 다시 A방조제를 건넌다. 이 방조제들은 순전히 산업용으로 만들어졌는지 자전거로 달릴 만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차량이 적지 않은 편이어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 간월도 간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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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밥? 대하? 석화구이? 키조개? 먹을거리 넘치는 서산 해안가A지구방조제를 넘으면서부터 대천제방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언덕이 파도를 치듯이 나타난다. 언덕이 높은 건 아니지만, 인내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미리 각오를 하는 게 좋다. 그래도 대천항까지 가는 길이 꽤 아름답다. 그걸 위안으로 삼을 만하다. 그곳의 일부 해안도로에는 자전거도로까지 만들어져 있다. 쾌적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 해안가 자전거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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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닷가의 한 어촌체험마을 풍경. 멀리 바다로 걸어들어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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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당항 대하축제 현장. 노래자랑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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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당항에서는 지금 한창 대하축제가 진행 중이다. 앞서 안면도의 백사장항에서도 대하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같은 축제가 동시에 남당항과 백사장항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 두 곳에서 잡아들이는 대하가 전국에서 잡아들이는 대하의 상당량을 차지한다고 한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백사장항의 축제 장소도 그렇고 남당항 역시 다소 썰렁한 분위기다. 그래도 주말엔 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하니까 그때쯤이면 축제 분위기가 살아나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이 붐비는 걸 싫어하면 평일에 찾아가는 게 좋다.
B지구방조제를 지나면서 거쳐 가게 되는 서산의 해안가 도로에는 먹을거리가 넘쳐난다. 가히 '음식거리'라고 붙일 만하다. 간월도에서는 굴밥을, 남당항에서는 대하를, 천북굴마을에서는 석화구이를, 그리고 오천항에서는 키조개를 맛볼 수 있다. 계절에 따라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따로 있다. 가을엔 대하를, 겨울엔 굴과 석화를 맛볼 수 있다.
대천제방에서 심한 악취가 코를 비튼다. 화학공장 옆을 지나갈 때 맡았던 냄새보다 더 독하다. 생선 썩는 냄새도 이 정도로 고약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도무지 무슨 냄샌지 판단하기 어렵다. 농사를 짓는 지역에서 풍기곤 하는 분뇨 냄새와도 또 다르다. 그 구간을 벗어나는 동안, 냄새로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다. 이 정도면 무언가 대책이 필요하다.
이제 남대천만 넘으면 대천항까지 가는 길은 별 어려움이 없다. 남대천교 가기 전에 서해안고속도로 밑으로 잠수교가 있다. 썰물 때 건너다닐 수 있는 다리다.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이제 막 바닷물이 들어차고 있었다. 다리 가운데에 이미 바닷물이 올라와 있다. 찰랑거리는 수준이라 무사히 건넌다.
잠수교를 건너서는 해안을 따라 널찍한 자전거도로 위를 달린다. 이 도로는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는다. 아직도 공사가 다 끝나지 않아, 지금도 인부들이 도로에 칠을 하거나 바닷가 쪽으로 난간을 세우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 도로가 완성이 되면 대천역과 버스터미널에서 대천항이나 대천해수욕장까지 곧장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다.

▲ 해안가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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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대천 잠수교 위에서 바라본 낙조.
성낙선
숙소 근처 식당에서 접한 '배춧값 폭등'숙소 근처에서 저녁을 먹다가 뉴스에서 최근 배추 값이 9천원에 달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식당 주인에게 앞으로 식당에서 배추김치 먹기 힘들겠다고 했더니 한숨을 폭 내쉰다. 배추 값만 그런 게 아니란다. 호박도 그렇고, 요즘 음식 가격 맞추기가 너무 어렵단다. 그러더니 요 사이 며칠 동안 손님이 들지 않는다며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라고, IMF때보다도 더 심하다고 걱정이 한참 길게 이어진다.
정부는 또 중국에서 값싼 배추를 수입하는 단기 처방을 내린다. 돈 있는 사람은 국산 먹고, 돈 없는 사람은 중국산 먹으라는 얘긴데, 생각할수록 한심한 노릇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중국산 배추 가격도 결코 낮은 편이 아니다. 결국 배추니 뭐니 하는 것들의 물가폭등으로 몸살을 앓는 건 서민들뿐이다. 오늘 달린 거리는 95km, 총 누적거리는 1153k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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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여행자 잡는 시골인심 "이것 좀 먹고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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