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세미 덩굴로 만든 '플라워 퍼포먼스'

어느 선생님의 '푸른학교가꾸기' 구경하기

등록 2010.10.05 11:22수정 2010.10.06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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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전주중학교 전경 수세미 덩굴이 3층 높이의 건물을 덮고 있다. 적색의 벽돌 위를 오르는 수세미 덩굴이 생기있게 학교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 박인선


여름을 전주시내의 한 학교에서 방송설비와 영상설비를 하면서 보냈다. 폭염이 연일 기승을 부렸지만 여름방학으로 아이들이 쉬는 학교는 작업하기엔 그만이다.


아이들이 없는 학교는 고요를 넘어 적막감마저 감돈다. 가끔은 동네 아이들이 따가운 운동장에서 공놀이를 하지만 주인 떠난 학교는 무채색의 그림과 다를 바가 아니다.

학교에 드나들면서 학교 공간이 각종 꽃과 식물들로 가득한 화단과 붉은 벽돌을 감싸고 도는 수세미 덩굴이 인상적이라는 생각이었지만, 계획된 작업 때문에 눈 돌릴 겨를이 없다가 교실작업을 하면서 새로운 풍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밖에서 볼 때는 그저 평범한 광경으로만 보아왔었는데 교실 안은 푸른빛의 수세미 이파리와 줄기들이 창밖을 커튼처럼 가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수채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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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세미들의 웅비 벽과 창문을 덮으면서 창밖에서는 자연의 커튼이 되고 노란 꽃과 어울려 '플라워포퍼먼스'를 연출한다. ⓒ 박인선


그렇지 않았다면, 밖은 온통 회색빛 고층아파트로 둘러싸여 폐쇄감을 느끼는 공간에서 아이들은 포로 아닌 포로가 되었을 것 같은데 창밖의 수세미 덩굴과 노란 꽃, 길쭉한 수세미열매가 어울려진 풍경은 어느 학교의 교실들과 다른 모습이었다.

수세미 이파리와 줄기들이 창밖에서 커튼을 만들다


나는 이렇게 이름 하였다. 수세미 덩굴로 만든 '플라워 퍼포먼스'.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자연의 커튼이고 하나의 작품이었다. 아침 시간은 생생한 생명감과 푸름이 한층 돋보이면서 당당함이 배어 있고 한낮에는 진한 햇빛에 조금은 지친 듯 이파리는 힘이 없다가 저녁이 다가오면 다시 기운을 차리는 수세미 덩굴이 살아가는 우리네들의 모습을 닮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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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벽돌과 수세미 수세미 열매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붉은 벽돌과 수세미가 조화롭다. ⓒ 박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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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세미와 빛의 조화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처럼 수세미 잎은 명암에 따라 묘한 조화를 이룬다. ⓒ 박인선


땅바닥에서 10m도 넘는 듯한 높이를 새끼줄에 여린 덩굴손을 감아서 자신의 존재감을 속속들이 보여주는데, 수세미는 달아맨 새끼줄을 용케도 줄줄이 열을 맞추어 올라서고 있었다. 올라서면서도 중간 중간에 노란 꽃잎을 만들더니 어느새 탐스러운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았다.

노란 꽃은 녹색의 이파리 위에서 더욱 선명하게 자태를 뽐내고 사이사이에 매달린 길 다란 수세미열매는 아스라이, 힘겨운 듯하면서도 잘 버티어 주는 어느 서커스단의 곡예사 같다.

수세미 덩굴로 만든 녹색의 커튼을 '플라워 퍼포먼스'로 이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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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박 삼형제 조롱박 삼형제도 사이좋게 아이들의 친구가 된다. ⓒ 박인선


학교공간을 이렇게 멋진 플라워퍼포먼스로 표현한 사람은 누구일까? 궁금증이 가던 차, 방학인데도 작업복을 입고 화분을 정리하는 아저씨 한 분이 눈에 띄었다. 궁금증은 그때 그때 풀고야 마는 성미 때문에 가까이 다가갔다.

바로 궁금해하던 주인공이었고, 이 학교에서 과학을 담당하는 류하용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가 시키면 하겠어요? 이런 재미는 혼자만이 느끼는 일이라 무어라고 표현할 수가 없지요."
"정말로 감동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진으로 찍고 <오마이뉴스>에 한번 내 보려고 하는데."
"안 됩니다. 안 돼요."

선생님께 정중히 말씀드렸지만 무색하게 거절만 당하고 말았다.

손사래를 치는 선생님을 무작정 달랠 길 없어 꼼꼼하게 정리된 화분들과 학교 주변들을 둘러보았다. 식물을 가꾸는 것은 아이를 돌보는 것처럼 정성이 들지 않으면 금방 표시가 나는데 선생님의 정성은 어느 어머니의 모성애를 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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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세미와 아이들 수세미 덩굴 사이로 운동장에서 아이들의 공놀이 하는 모습이 보인다. ⓒ 박인선


여름방학이 끝나고 학교는 다시 아이들의 몫이 되었다. 아이들이 돌아온 학교는 한층 더 생기가 나는 것 같았다. 교실에서는 재잘거리는 소리가 수세미 덩굴 사이로 배어 나온다. 긴 여름을 수세미들은 아이들을 기다리며 이만치 커버린 몸뚱아리를 자랑하고 싶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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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세미삼형제 수세미 삼형제가 아이들이 없는 학교를 지키면서 얼마나 기다렸을까? ⓒ 류하룡


쑤~욱 커버린 수세미 열매를 맞은 아이들은 방학 동안 많이도 자란 수세미들을 보면서 한참은 신기하게 바라만 보았을 것이다. 자연이 보내준 소중한 친구를 맞는 아이들은 오래도록 기억 속에 간직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세미 덩굴 사이로 배어 나오는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를 듣다

방학이 끝나고 선생님을 만난 것은 설비작업이 끝날 즈음에 교장실에서 교장 선생님과 작업에 대한 결과를 말씀드리고 학교환경을 이야기하던 끝에 유화룡 선생님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뜻을 전하면서 이루어졌다.

"저 혼자만 보기가 아까워, 결정은 오래 전에 했습니다. 나의 주머니 속의 디지털카메라에는 선생님이 만든 '수세미플라워퍼포먼스'를 기록했습니다. 어쩌면 저작권침해가 되겠지요? 먼저 용서를 구합니다."
"정말, 안 되는데."

쑥스러워하는 선생님을 억지로 잡아끌다시피해서 사진 몇 컷을 찍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푸른학교꾸미기'라는 목표를 가지고 기록해 두었던 자료들을 보면서 선생님의 열정을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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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박키우기 류하용 선생님의 '푸른학교가꾸기' 기록장. ⓒ 류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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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화분가꾸기 아이들과 실습하는 모습. ⓒ 류하용


나는 아이들이 끝날 즈음에 교실로 올라갔다. 창밖에는 수세미 이파리가 빛의 화가라고 불리는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처럼 창밖의 풍경은 빛과 그림자가 묘한 조화를 이루면서도 다른 모습의 그림을 만들고 있었다.

이곳 교실을 지키는 아이들이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아이들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해맑은 대답에서 선생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점점 하루가 다르게 잎사귀는 짙어가고 수세미 열매는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있었다. 조롱박도 잘 익어갔다. 가을 내음이 학교를 풍성함으로 가득 채워 나갔다.

'플라워퍼포먼스' 저작권 침해, 용서를 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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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단가꾸기 정성으로 가꾼 화단은 작품이었습니다. ⓒ 박인선


어린 시절, 선생님의 도움으로 미술공부를 해 왔던 생각이 났다. 시골에서 자라서 가지고 싶었던 그림물감도 가정 형편 때문에 구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선생님이 사주신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고 꿈을 펼치게 했던, 나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고마운 선생님 모습이 생각났다. 감사한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셨던 선생님.

"우리 학교에는 정말 좋은 선생님이 많으신 것 같아요. 나는 그런 선생님들의 열정을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쏟아 붓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싶은데."

얼마 전에 새로 부임하셨다는 교장 선생님은 "교직 생활 중에서 마지막이 될 것 같은 학교가 될 것 같다"면서 이렇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준 선생님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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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덩굴 푸른 환경을 가꾸는데 박덩굴도 한몫을 한다. ⓒ 박인선


뿌린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듯이 아이들의 밝은 표정들이 아름다운 학교 환경과 너무나 잘 어우러진 모습들을 보아왔다. 인사 잘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조롱박의 표정을 보는 듯했고 자연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들이 구석구석에 배어 있었다. 

새로운 만남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좋은 환경을 만들려는 선생님이 남긴 땀의 대가가 이처럼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자아내게 와닿는 것을 보면서 새삼 선생님의 은혜로움에 감사하고 멋진 공간을 우리 모두 함께 즐겼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전주에 있는 서전주중학교에서 여름방학 동안 학교설비 작업을 하면서 보아온 류하용 선생님의 푸른학교가꾸기의 실천하는 모습을 담아보았습니다. 한 사람의 노력이 우리 모두에게 큰 즐거움으로 온다는 것을 보면서 큰 꽃다발 하나를 받은 기쁨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전주에 있는 서전주중학교에서 여름방학 동안 학교설비 작업을 하면서 보아온 류하용 선생님의 푸른학교가꾸기의 실천하는 모습을 담아보았습니다. 한 사람의 노력이 우리 모두에게 큰 즐거움으로 온다는 것을 보면서 큰 꽃다발 하나를 받은 기쁨이었습니다
#수세미 #류하용선생님 #서전주중학교 #포퍼먼스 #여름방학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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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상에서 8년, 예술작업공간을 만들고, 버려진폐기물로 작업을하는 철조각가.별것아닌것에서 별것을 찾아보려는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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