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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준우승', 제주에 박수를 보낸다

14위에서 2위까지... 위풍당당 제주 유나이티드의 동화 같았던 2010년

10.12.05 21:14최종업데이트10.12.07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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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쏘나타 K-리그 2010 챔피언십 챔피언결정 2차전에서 1-2로 졌다. 비록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제주의 돌풍은 대단했다. 삼다도 축구로 K-리그를 완전 정복한 제주다. ⓒ 제주 유나이티드 누리집

패자의 뒷모습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 K-리그 제주 유나이티드가 마지막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FC서울에게 '2010 K리그 챔피언' 왕좌를 내주고 말았다. 분명 스포츠의 세계에서는 승자와 패자가 극명하게 갈리기 마련이지만 제주에게 '패자'의 호칭을 붙일 수는 없을 듯 하다.

 

제주는 비록 챔피언 샴페인을 터뜨리지 못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투지와 저력으로 투혼을 발휘했기에 '승자'의 칭호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상암벌에서 우승 트로피를 하늘 높이 치켜들고 싶어했던 제주의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우승 트로피를 서울에게 내줬지만 기분은 좋았다. 아름답고 당당한 2위다.

 

박경훈 감독이 이끄는 제주는 5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서울과의 2010 K-리그 챔피언결정 2차전에서 전반 25분 산토스의 골로 승기를 잡았으나 전반 28분 정조국에게 페널티킥으로 동점을 허용한 후, 후반 25분 아디에게 통한의 결승골을 허용해 우승 꿈이 좌절됐다. 결과는 썼지만 온힘을 다한 흔적이 그대로 녹아든 경기였다.

 

그러나 제주는 이미 훌륭했다. 2006년 13위→2007년 11위→2008년 10위→2009년 14위. 제주는 최근 4년간 10위권을 맴돌았다. 두자릿수 순위를 걱정하던 처지였던 셈. 6강 플레이오프는 동경의 대상일 뿐이었다.

 

돌, 바람, 여자가 많아 붙여진 삼다도(三多島) 제주. 이는 박경훈 감독의 축구 철학과 맞물려있다. 그는 "돌같이 단단한 조직력을 갖춘 축구, 바람 같이 빠른 스피드 축구, 여자 같이 아름 다운 축구를 하고 싶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주는 박경훈 감독 부임 전까지 '선제골을 내주면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그저 그런팀'이었다. 박경훈 감독은 선수들에게 패배 의식을 떨쳐 버리라고 주문했다.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소통의 리더십'으로 선수들을 따뜻하게 품었다.

 

박경훈 감독 아래 다시 태어난 제주... '삼다도 돌풍'은 아름다웠다


박경훈 감독은 뛰어난 선수 관리능력, 동기 부여 등을 통해 제주를 무시 못할 강팀으로 변모시켰다. 또한 그라운드에서는 노련한 수읽기와 용병술,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한 '카멜레온 전술'로 '삼다도 돌풍'을 이끌었다.

그는 중국 프로축구 창사 진더에서 뛰던 '샤프' 김은중에게 주장 임무를 맡겼다. 주장 완장을 찬 김은중은 코칭 스태프와 선수단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해냈다. 개인적으로는 34경기에 출전해 17골 11도움으로 데뷔 14년 만에 최다 공격포인트를 올리는 기록까지 세웠다.

 

이와 함께 2010 K-리그 신인 드래프트 1순위인 '제2의 홍명보' 홍정호, 2007년부터 4년째 제주에 몸담고 있는 '제주맨' 구자철이 팀 플레이에 본격적으로 녹아 들었다. 박현범, 배기종, 이상협, 김호준 역시 전 소속팀인 수원과 서울에서의 방출 설움과 엔트리 제외의 아픔을 '섬팀' 제주에서 깨끗이 씻어내며 재활에 화끈하게 성공했다.


제주 선수들은 패배 의식을 벗어 던지고 '이기는 팀'으로 쑥쑥 성장해나갔다. 마치 신으로부터 승리 비법이라도 전수 받은 듯 지난해와 완전히 다른팀이 돼 환상의 승수 쌓기를 펼쳤다. 특히 서귀포 월드컵경기장에서는 5승 5무로 무패행진을 달렸다. 서귀포 월드컵경기장이 K-리그 원정팀 무덤이라고 불린 가장 큰 이유다.

 

제주는 정규리그 28경기에서 25골 만을 내줘 15개 구단 중 최소 실점을 했다. 지난해 7승 7무 14패(22득점, 44실점)로 14위에 머물렀던 제주는 올해 17승 8무 3패(54득점, 25실점)을 기록했다. 6강 플레이오프 진출과 한 시즌 득점과 실점 기록을 바꿔 놓겠다는 박경훈 감독은 그 약속을 지켰다.

 

정규리그 2위로 플레이오프에 올라 '디펜딩 챔피언' 전북 현대를 격파, 장기전에 이어 단기전에서도 강한 면모를 보인 제주는 서울과의 두 번의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후회없는 승부를 펼쳐 1등보다 값진 2등을 차지했다.

 

제주의 K-리그 준우승이 더욱 더 도드라지게 빛나는 이유는 밑바닥까지 떨어진 뒤에도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났기 때문이다. 제주는 '즐기면서 공을 차라'고 강조한 백발의 신사 박경훈 감독 지도 아래 한 시즌 만에 젊은 패기와 강한 승부 근성으로 똘똘 뭉친 '무서운 팀'으로 진화했다. 명장 밑에 약졸 없다는 말을 그라운드에서 고스란히 증명한 제주다.

2010.12.05 21:14 ⓒ 2010 OhmyNews
제주 유나이티드 박경훈 김은중 K-리그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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