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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전대병원 응급실에 갔다. 몇 년 전부터 앓으시던 장모님이 갑자기 상태가 나빠져서다. 응급실은 몇 번 와 본 그대로 여전히 소란스럽다. 흡사 영화 속에 나오는 전쟁터 야전병원 같다.
강당처럼 너르기도 한데, 온통 환자들, 가족들로 '도떼기시장'처럼 붐빈다. "왜 빨리 보아주지 않느냐?" 고함소리도 들린다. 대기의자에도 환자들 명단이 붙어 있다. 장모님도 베드배정을 못 받아 심폐소생실 입구 옆 임시자리다.
심폐소생은 숨 쉬기 어려운 위급환자에 시술하는 것 같다. 연락을 받고 달려왔는지 댓명이 우루루 몰려 들어간다.
"아이고오, 어찌 이리 되었소." "말도 못하다니--"
통곡소리가 크게 밖에까지 울린다. 그 환자가 누구인지, 보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한다. 하지만, 덩달아 눈물이 나온다.
예전에 난 웬만한 일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 편이었다. 그래서 젊을 때는 '정이 없다'고 퉁도 많이 맞았다.
최근에는 많이 달라졌다. 연속극이나 영화를 보면서 눈물이 나와 남이 볼까, 몰래 훔치는 일도 가끔 생긴다. '남자들도 나이 들면서 여성호르몬이 늘어나 점차 감성적이 된다'고 하니 비정상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정이 늘어난' 모양이다.
80대 중반인 장모님은 4년 전 뇌졸중으로 휠체어와 병원침대를 벗어나지 못하신다. 평소 운동도 잘 하시고 굉장히 활동적인 성격이셨다. 그런데 요즘엔 가벼운 이야기 도중에도 자주 눈물을 보이신다. '몸이 아프시니 마음도 약해져 그러시겠지' 하다가도 민망할 때도 있다.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스러워서다.
나이 들면 확실히 감정 조절이 힘들어진다. 때나 곳을 가리지 않고 갑작스럽게 슬퍼지거나 화가 나는 경우가 있다. 예측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한번 일어난 감정을 진정시키는 일도 쉽지 않다. 시간이 걸린다. 쉽게 화를 못 풀고, 쉽게 미움을 못 누르고, 쉽게 슬픔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나이 들수록 감성적이 된다'는 설명보다 신체능력이 떨어져 희노애락을 포용하는 '마음그릇'이 작아진 때문아닐까.
눈물은 '정이 많아서' 흐르는 것만은 아니다. 꼭 아프거나 슬퍼서 나오는 것만도 아니다. 눈물은 감정의 극치에서 나온다. 노여움, 미움, 욕심도 사무치면 눈물로 나타난다. 기쁨도 사무치면 울음이 되고 눈물이 나온다. 즐거움, 사랑마저도 사무치면 눈물을 솟아나게 한다. 칠정(喜怒哀樂愛惡欲)이 다다르는 정점이다.
물은 더 이상 뜨거워질 수 없으면 수증기로 변해야 폭발을 면한다. 눈물은 끓어오르는 모든 감정의 폭발을 풀어주는 증기와 같다. 칠정은 요동치며 끓어오르다 감당할 수 없는 극한점에 이르면 눈물로 승화한다. 눈물로 변해야 마음이 진정된다.
연암 박지원은 목 놓아 울 만한 곳을 '좋은 울음터(好哭場)'라고 말한다. 230년 전, 연암은 1200리 사방에 한 점의 산도 없이 하늘 끝과 땅 변두리가 맞닿은 요동 벌판에 이르러 이렇게 외친다.
"아! 참 좋은 울음터로다. 가히 한바탕 울 만하구나."
마흔세 살 연암의 큰소리 울음은 슬퍼서 터져 나오는 울음이 아니다. 광대무변한 하늘과 땅 사이에 서있는 자신의 존재가 조그만 돌멩이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무한대로 펼쳐진 우주 속에 미물 인간으로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환희의 큰 울음이었다.
몸이 아프고 병들었을 때, 생활고의 괴로움과 혼자라는 외로움에 지쳤을 때, 세상에 속고 자신의 무능력에 실망해 서러움 억울함의 응어리가 맺혔을 때, 눈물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잘 막아지지 않는다. 눈에서 흐르지 못하면 가슴속에서 흐른다. 그건 아마 차디차고 짜디짠 눈물일 것이다.
연암처럼 목 놓아 펑펑 큰 눈물을 쏟아본 적이 있는가. 그것은 환희의 뜨거운 눈물이다. 큰 소리로 몸부림치며 쏟는 뜨거운 눈물은 '좋은 울음터'에 합당하다.
그러나 오늘, 절실한 것은 '큰소리 눈물'이 아니다. 조그만 눈물이다. 큰 소리가 필요 없다. 좋은 울음터가 아니어도 된다. 슬픔에 얼어있는 나와 남을 녹여주는 뜨거운 가슴속 눈물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월간 송광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2010.12.07 16:22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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