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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복서' 강기준, 드디어 링에 올랐지만

복싱 침체 속, 4년만에 '4라운드' 경기 열려

10.12.14 14:25최종업데이트10.12.15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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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요리 배달원, 주유소 알바, 청계산 짐꾼, 영화 엑스트라 출신의 복서. 그는 주말이면 강남역이나 대학로에서 1분에 1만 원짜리 거리의 복서로 나서야만 했다. 그 무명 복서 강기준이 마침내 링에 올랐다.

4년 만에 경기에 나서는 '거리의 복서' 강기준 ⓒ 이충섭


지난 11일 천안 남서울대학 체육관에서 김택민의 PABA 동양타이틀전, 우지혜의 IFBA 세계타이틀매치가 열렸다. 우지혜가 패배하는 것으로 메인 경기가 마무리되자 방송국 중계요원들은 장비를 철거하느라 분주했다. 특히 홈 경기임에도 판정패를 선언한 것을 항의하는 우지혜 측의 고함소리가 체육관을 쩌렁쩌렁 울렸다. 때문에 얼마 되지도 않았던 관중마저 눈살을 찌푸리며 자리를 뜨고 말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경기가 속행되고 있었다. 오프닝 경기로 예정되어 있었다가 중계방송 시간 조정을 위해 뒤로 밀려난 4라운드 경기였다. 통산 전적 1승 1패의 강기준(29, 록키체)과 생애 첫 경기를 갖는 김태완(24, 안산제일체)이 링에 올랐다.

데뷔전에 나서는 김태완(25,안산제일체) ⓒ 이충섭


무명의 복서, 스파링 상대 찾아 거리로...

강기준은 2006년 신인왕전에 나갔다가 2회전에 탈락하고 재기를 노렸지만 복싱 침체로 신인왕전이 열리지 않는 바람에 무려 4년 동안 링에 오를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생계를 꾸려오고 있었다.

그는 중화요리 배달원, 청계산을 오르내리는 짐꾼, 주유소 알바, 영화 엑스트라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복싱을 향한 열정을 잃지 않았다. 또 무명인 자신과 스파링을 상대해줄 선수도 마땅치 않자, 아쉬운 살림에 푼돈 벌이라도 할 겸 주말에는 대학로와 강남역 등 거리에 나서 1분에 1만 원을 받고 맞아주는 스파링 파트너 아르바이트로 나서기도 했다. 손님을 때리지 않고 그저 맞는 역할이라 간혹 선수 출신한테 걸리면 번 돈마저 치료비로 날리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상대방 주먹에 견디는 훈련만큼은 효과가 있다고 믿으며, 언제일지 모르는 다음 경기를 위해 글러브를 벗지 않았다.

데뷔전의 김태완(오른쪽)과 1승1패의 강기준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 이충섭


강기준의 경기를 7개월 아들과 지켜보고 있는 아내 ⓒ 이충섭


강기준은 '거리 위의 복서'로 EBS 다큐멘터리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신인왕전이 아니고서야 1승 1패짜리 무명 선수가 뛸 자리는 쉽게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같은 체육관의 김택민이 메인 경기에 나서는 바람에 4년 만에 찾아온 기회였다. 오지 말라고 그렇게 일렀음에도 결혼식도 치르지 못한 부인이 얼마 전 태어난 아들녀석을 안고 경기장을 찾아서는 링 아래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EBS 다큐人 '거리 위의 복서'에 출연했던 강기준 ⓒ 이충섭


4년 만에 링에 오르는 강기준이나 공식 데뷔전인 김태완 모두 링에 오르는 것이 생소하고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여서 경기는 투박하게 전개되었다. 40kg가 넘는 막걸리 등짐을 지고 청계산을 하루에 서너 번씩 오르내리던 강기준이었지만, 이에 맞서는 김태완도 힘이 장사였다. 전혀 밀리지 않고 오히려 정면승부를 벌이며 묵직한 주먹을 날렸다.

4라운드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리자 끝까지 자리를 지켰던 관중은 중량급 선수들의 박진감 있는 경기에 매료되어 메인 이벤트 못지 않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침체 벗어날 줄 모르는 한국 복싱... '거리의 복서' 더이상 헤매지 않길 바라

4년만에 경기에 나서는 강기준 ⓒ 이충섭


경기 결과는 3:0 심판 전원 일치. 강기준의 손이 올라갔다. 신인왕전 2회전 탈락의 아쉬움을 4년 만에 떨어내는 순간이었다. 링에서 내려와 아내와 포옹하고 있는 강기준에게 한 관중이 다가와 "봉투를 준비하지도 못했다"며 격려금을 건네며 최선을 다한 경기를 격려해줬다.

이날의 승리로 스물아홉의 나이에 2승 1패의 전적이 고작인 강기준. 그러나 4라운드 경기를 위해 4년을 기다리며 결코 포기하지 않은 복싱에 대한 열정만큼은 세계 챔피언에 부족함이 없었다.

도무지 침체를 벗어날 희망이 보이지 않는 한국 복싱이었지만 4라운드 복서 강기준의 투혼을 통해 한국 복싱의 존재 의미를 되살릴 수 있었다. '거리의 복서' 강기준이 더 이상 거리를 헤매지 않기를 바란다.

강기준의 승리를 깍듯이 축하하는 김태완, 이것이 복싱이다! ⓒ 이충섭


강기준 김태완 록키체육관 한국복싱 신인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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