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 잘하는 순서로 서열이 정해지는 교실

[내 인생의 폭력] 아이들은 과연 싸우면서 크는 걸까

등록 2010.12.28 17:57수정 2010.12.28 17:57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체벌금지가 전국적으로 확산 되고 있는 가운데 "요즘 아이들 체벌 없이 어떻게 통제 하냐" 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반면 힘들겠지만 이번 기회에 교실에서 각종 체벌 을 비롯한 학교폭력을 몰아내서 새로운 교육풍토와 학교 문화를 만들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학교 폭력은 늘 우리사회 화두다. 문제는 있지만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현재 기성세대인 '나'가 과거의 폭력경험을 통해 학교폭력의 실체를 벗겨보고 그 해결책을 독자들과 함께 찾아보려 한다. 이 글은 '팩션' 임을 밝힌다. 글쓴이와 그 주변인들 경험, 또 글쓴이가 취재한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 글쓴이 주]

 

또래 친구라고는 단 세 명밖에 없는 참으로 조용한 마을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그 중 성구와 가장 친했다. 성구 녀석 집과 우리 집은 밭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성구와 난 매일 붙어 있다시피 했다. 난 틈만 나면 잡풀이 우거진 밭두렁 길을 달려 성구네 집에 가곤 했다. 내가 가지 않으면 성구 녀석이 우리 집으로 뛰어와 사립문 앞에서 "문성아 노~올~자"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우린 둘 다 무척 심심했다. 할 일이라고는 하루 종일 노는 일 밖에 없는데 마땅히 놀아줄 만한 사람도, 가지고 놀만한 장난감도 없었다. 우린 서로 유년기의 심심함을 달래주는 좋은 친구가 돼 주었다.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셨다. 아버지는 괄괄하고 고집에 센 분이셨고 엄마는 온화하고 모성애 강한 전형적인 한국 여성이었다. 난 그 분들의 귀하디귀한 늦둥이 막내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날 때 부모님 나이 이미 마흔이었다.

 

덕분에 난 유년기는 물론이고 성장기가 모두 끝날 때까지 부모님에게 단 한 번도 매를 맞아본 일이 없다. 또 눈물이 쏙 빠지도록 크게 혼이 나보지도 않았다.

 

여섯 살 많은 형이 있었지만 그 형한테도 유년기가 끝날 때 까지 한 번도 매를 맞거나 심하게 혼이 나보지 않았다. 형이 온화한 성격이기도 했고, 부모님이 늦둥이 막내인 나를 워낙 감싸고 돌다보니 형은 감히 내게 손을 대거나 욕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형은 언젠가 "넌 참 늦게 태어나서 운이 좋은 거야"라고 말한 적이 있다. 늦게 태어난 덕에 아버지에게 매를 맞지 않아서 운이 좋다는 말이었다. 아버지는 애들은 때려서라도 가르칠 것은 꼭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분이셨다. 오직 늦둥이인 내게만 관대 하셨던 것이다. 

 

늦둥이 막내, 그리고 행복한 유년기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선생님에게 매를 맞아 봤고 벌이란 것도 받아 보았다. 또 같은 반 친구와 주먹다짐도 해봤다. 그러면서 난 가치관에 엄청난 혼란을 겪게 됐다.  

 

그땐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는 말이 당연시 됐다. 심지어 장난기 심한 어른들은 일부러 싸움을 시키기도 했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을 불러다놓고는 "너 얘 이기냐?"하고 물어서 둘 다 이긴다고 하면 "그래 너희들 한 번 붙어봐야겠다"하고는 싸움을 시켰다. 

 

나이가 몇 살 많은 형들도 고만고만한 아이들을 불러다 놓고 싸움질시키기 일쑤였다. 방법은 어른들과 똑같다. "너 얘 이겨? 그럼 넌?" 형들이 이렇게 물을 때 만약 "네, 이겨요"하고 대답하지 못하고 "얘한테 져요" 또는 "저 싸움하기 싫어요" 하고 대답하면 그 자체로 굉장한 굴욕이었다.

 

때문에 싸우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네, 이겨요" 하고는 조막만한 주먹을 꼭 쥐고 격투기 선수처럼 펄떡 거려야 했다. 형들은 그렇게 싸움을 시켜 놓고는 '코치'를 했다. "야, 넌 떨어져서 싸우는 게 유리 할 것 같아" 또는 "야, 넌 무조건 붙어서 싸워"하는 식으로 말이다.

 

머리가 혼란스러웠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맞고 때리는 일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상황을 난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내 머릿속에는 '폭력'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 내가 무엇인가 잘못을 하면 부모님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무엇을 잘못 했는지를 찬찬히 설명해 줬다. 그러다가 정 화가 나면 언성을 조금 높였을 뿐, 욕을 하거나 회초리를 들어 위협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제일 친한 성구와도 가벼운 말싸움 정도만 해봤다. 그러다가 삐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너 하고는 이제 안 놀아"하고 집으로 달려 왔을 뿐, 욕을 하거나 주먹질을 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만약 주먹질 할 정도로 싸웠다면 정말로 다시는 성구 녀석과 놀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같이 안 논다"고 선언한 후 한 시간정도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들로 산으로 힘께 쏘다니며 놀았다.   

 

"너 얘 이겨? 그럼 한번 붙어봐"

 

입학하자마자 각종 폭력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떠들거나 장난치는 아이들을 사정없이 회초리로 때렸다. 또 받아쓰기를 해서 많이 틀린 아이들도 때렸다.

 

그리 둔재는 아니었던 덕에 자주 맞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런 교실 분위기 자체가 곧 두려움이었고 학교에 가기 싫게 만드는 큰 요인이었다. 친구들이 심하게 맞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숨이 막히고 두려웠기 때문이다.

 

싸움을 잘하는 순서로 같은 반 친구들 간에 서열이 정해지는 이상한 문화도 날 숨 막히게 했다. 학년이 바뀌어 반 편성이 다시 이루어지기 무섭게 서열부터 정해졌다. 때문에 아무리 싸우기 싫어도 한 번 정도는 싸워야 했다.

 

만약 누군가 툭툭 건드리며 시비를 걸어 올 때 한 방을 날리지 않으면 '겁쟁이'로 낙인찍혀 괴로운 학교생활을 해야 했다. 난 천성적으로 누군가와 다투고 경쟁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간혹 껄렁껄렁한 녀석이 툭툭 시비를 걸어도 그저 참고 넘기는 편이었다. 

 

이런 이유로 초등학교에 입학 한 후 난 가끔 엄마에게 "학교 가기 싫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선생님이 손바닥을 때리는 이유는 공부를 잘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설명해 줬다. 그리고 혹시 괴롭히는 친구가 있으면 선생님께 일러서 도움을 받으라고 말씀하셨다.

 

결과적으로 이 말은 그 당시 내게 전혀 도움이 안됐고 혼란스러운 내 머릿속을 정리해 주지도 못했다. 선생님에게 이르라는 어머니 귀띔은 전혀 현실적이지 못했다. "일러 바친다" 는 것이 결코 바람직한 해결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엔 고자질을 혐오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했다. 아마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의 후유증이 가져온 사회적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고자질쟁이란 말의 이미지가 일제 강점기 때 순사에게 독립운동가를 팔아먹는 밀정, 한국전쟁 때 빨갱이한테 국방군을 팔아먹는 앞잡이 모습과 겹치는 그런 시기였다. 

 

그런 이유로 아이들은 물론 선생님까지도 은근히 일러 바치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때문에 어설프게 일러바치다가는 자칫 요즘 말로 왕따가 될 위험성까지 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요즘 학교에서도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왕따 문제를 비롯한 학생들 간 폭력 문제를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해결 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게 이 사실을 어느 정도 뒷받침해 준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는 말. 이 말이 당시 어린 학생들 간 폭력을 조장한 측면이 있다. 요즘엔  몰상식하게 이런 말을 하는 어른들이 없을 것이라 믿는다. 조기 교육이 중요하다. 혹시 아직도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고 믿는 어른이 있으면 그 생각부터 훌훌 털어 낼 것을 권한다. 이제 "아이들은 사이좋게 놀아야 잘 큰다"는 말을 유행시키자.

덧붙이는 글 | 안양뉴스

2010.12.28 17:57ⓒ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안양뉴스
#사는이야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중3 아들 통장에 매일 찍히는 여자 이름, 그 의심의 결과 중3 아들 통장에 매일 찍히는 여자 이름, 그 의심의 결과
  2. 2 [광주·전남 통합] 김영록16.9%, 민형배 15.8%, 강기정 9.1%, 신정훈 8.3% [광주·전남 통합] 김영록16.9%, 민형배 15.8%, 강기정 9.1%, 신정훈 8.3%
  3. 3 '로비자금'으로 전락한 13조 원...농협의 해묵은 악습에 충격 '로비자금'으로 전락한 13조 원...농협의 해묵은 악습에 충격
  4. 4 식당 하는 내가 '흑백요리사2'에서 계속 돌려본 장면 식당 하는 내가 '흑백요리사2'에서 계속 돌려본 장면
  5. 5 윤석열 마크맨의 소감 "인수위 해단식 때 그 냄새, 90%는 맞았지만..." 윤석열 마크맨의 소감 "인수위 해단식 때 그 냄새, 90%는 맞았지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