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셋] 중요민속자료 제15호 남원 실상사 석장승
남병직
지리산에 위치한 실상사(實相寺)는 통일신라 흥덕왕 3년(828)에 홍척(洪陟)이 선종 9산의 하나로 실상산문을 열면서 개창하였다. 당나라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홍척은 이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간다고 하여 이 절을 지었다.
실상사가 호국을 위한 풍수비보의 목적이라면 실상사를 위한 비보는 절 초입에 자리한 3기의 돌장승이다. 장승은 마을이나 사찰 입구에 세워져 경계를 표시함과 동시에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호신의 구실을 한다.
이 장승 역시 경계표시와 함께 경내의 부정을 금하는 뜻에서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장승의 몸체에는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과 대장군(大將軍), 옹호금사축귀장군(擁護金沙逐鬼將軍)이라는 이름이 새겨져있고, 기단석에 영조 원년(1725)에 세워진 것을 기록하고 있다.
어수룩한 장승들의 빙그레한 웃음을 뒤로하고 멀리 산문으로 길을 잡으면 실상사 천왕문이 이내 앞을 가로 막는다. 흔히 사찰에 들어서면 삼문(三門)을 지나는데, 일주문(一柱門), 천왕문(天王門), 불이문(不二門)이 그것이다.
실상사는 여타의 사찰과는 달리 일주문과 불이문이 없고, 천왕문을 지나 경내로 곧바로 진입하는 평지가람의 배치를 따른다. 천왕문은 불법을 수호하는 외호신(外護神)인 사천왕(四天王)이 안치된 전각으로, 천왕들은 수미산(須彌山)의 동서남북에서 불법을 수호하고 인간의 선악을 관찰한다고 한다.
![[그림 넷] 실상사 천왕문 사천왕의 생령좌(生靈座)](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0/1228/IE001267231_STD.jpg)
▲[그림 넷] 실상사 천왕문 사천왕의 생령좌(生靈座)
남병직
일반의 불보살과 천인들은 아름다운 연꽃자리에 앉기가 다반사인데, 실상사 천왕문의 사천왕은 아귀를 밟고 선 생령좌(生靈座)의 모습이다. 사천왕의 육중한 두 다리에 온 몸이 짓밟혀 발버둥치는 아귀는 꽤나 고통스러워 보인다. 양쪽으로 치켜 올라간 눈썹과 막 튀어 나올 법한 두 눈동자, 아래윗니가 드러나 크게 벌려진 입가에서는 고통에 아우성치는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메아리친다.
미소와 분노, 중생제도를 위한 부처의 두 모습 중 탐-진-치(탐욕, 성냄, 어리석음) 삼독(三毒)을 부처의 절대위엄으로 조복코자하는 분노의 신장이 사천왕이다. 천왕문을 들어섬에 흐트러진 마음자리를 다시금 다잡았다.
![[그림 다섯] 보물 제35호 실상사석등(實相寺石燈)](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0/1228/IE001267232_STD.jpg)
▲[그림 다섯] 보물 제35호 실상사석등(實相寺石燈)
남병직
절 집 마당 가운데 홀로 우뚝한 실상사 석등과 돌계단을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빠져든다.
"경내는 불빛 한점 없이 깜깜하다. 넓은 뜰 가운데 부스럭 인기척이 일었다. 까까머리의 동자승이 바람에 하늘거리는 불씨하나를 가슴 속에 지니고 대 석등의 곁으로 조심스레 다가섰다. 언제부터인가 절 집의 아침을 처음으로 밝히는 이 신성(神聖)의 일은 절집 막내의 몫으로 돌아갔다. 칠흑의 밤바다에 빛나는 신심(信心)을 일으키는 그를 위해 노스님은 석등 앞에 조그만 돌계단을 마련해주었다. 아장아장 계단을 딛고 올라 발끝을 곧추세운다. 품속에서 옮겨진 작은 불씨가 석등에 닿자 중생의 눈과 귀를 가린 암흑의 무지가 아침이슬처럼 일순간 사라졌다. 멀리 잠든 도량을 깨우는 맑은 사물의 쇳소리가 새벽공기를 가르고 치렁거린다. 은은한 불빛아래 몸을 드러낸 대 석등은 부처의 진신(眞身)을 맞이하기 위한 대자연의 변주를 시작한다.땅을 울리는 범종의 웅혼한 쇳소리가 가라앉는다. 천지간을 요동치는 법고의 휘몰이가 요동친다. 청량한 꽃잎으로 음양의 조화를 삼은 석등의 신체(神體)는 대자연의 변주 가운데 무위(無爲)의 춤을 추는가 싶더니 무여열반(無餘涅槃)의 바다에 진리의 소리로 흩어지다 점점이 사라진다."
![[그림 여섯] 실상사 삼층석탑과 대 석등](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0/1228/IE001267233_STD.jpg)
▲[그림 여섯] 실상사 삼층석탑과 대 석등
남병직
![[그림 일곱] 실상사 목탑지의 주춧돌들](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0/1228/IE001267234_STD.jpg)
▲[그림 일곱] 실상사 목탑지의 주춧돌들
남병직
잠시 정신을 추스르고 극락전으로 발길을 옮긴다. 극락전은 조선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불에 탄 후 순조 31년(1831)에 다시 지었고,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집이다. 건물 안은 바닥에 마루를 깔고, 뒤쪽 높은 기둥 사이에 후불벽을 설치하고 불단 위에는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
당그랑 그랑 맑은 쇳소리를 울리며내를 따라 사하촌(寺下村)으로 간다어느 날은 소리에 햇빛이 내려가을 하늘 속보다 더 깊은심연의 적요(寂寥)에 이른다오늘도 바람 한 점 없는절 모서리에서 풍경(風磬)은 소리도 없는그윽한 소리를 울리며 적멸에 오른다- 양문규 시 '쇠붕어 물속을 헤엄쳐 간다'
![[그림 여덟] 실상사 극락전의 쇠붕어](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0/1228/IE001267235_STD.jpg)
▲[그림 여덟] 실상사 극락전의 쇠붕어
남병직
아미타불이 상주하는 실상사 서방극락의 길목에, 쇠붕어 한 마리가 바람을 가르고 유유히 날아간다. 하늘로부터 길게 내려온 외줄기 동아줄에 간신히 몸을 동여맨 당신은 인연과보의 무심한 바람을 따라 무유정법의 바다로 침잠하는가!
절집에 으레 풍경하나 있기는 마련이지만 하필 극락전 작은 쪽문에 물고기를 메어단 연유는 무엇일까? 이 쪽문 너머 저곳이 니르바나의 세계인 까닭일 게다. 눈 밝은 선승이 있어 극락전의 작은 문을 드나듦에 아상(我想)을 버리는 하심(下心)의 경책으로 삼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리산자락을 타고 흐르는 청량한 기운이 극락전 작은 뜰에 한 줄기 바람을 일으킨다. 처마 끝 대롱대롱 몸을 의지한 애처로운 미물들은 오후의 단잠에서 잠시 깨어난다.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절 집 물고기 삼년에 배운 것은 눈 뜨고 잠자는 재주밖에 없다. 잠자는 가운데도 늘 깨어있으라 귓전을 울리는 부처님 말씀이 나긋나긋하다. 가슴에 다짐을 하고는 무거운 눈꺼풀을 힘주어 들어올린다.
바람이 분다. 가는 곳을 모르는 인연의 바람이 불어온다. 길이 있되 정해진 길이 없는 제법의 공한 도리를 깨친 그대여, 지나는 바람에 한바탕 신나게 헤엄치며 놀 뿐이다.
![[그림 아홉] 실상사증각대사응료탑의 그리운 사천왕상](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0/1228/IE001267236_STD.jpg)
▲[그림 아홉] 실상사증각대사응료탑의 그리운 사천왕상
남병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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