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0.12.28 19:14수정 2010.12.28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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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예보에 "눈바람이 온다"고 해도 안 오는가 하면, 예보에 없는 눈바람이 흩날려 출퇴근길이 엉키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흔한 풍경이다.
마찬가지로 최근 결혼 축하인사를 받느라 한창 바쁘다. 어제(27일) 오후부터 오늘까지 계속 두세 시간에 하나씩 결혼 축하 문자메시지가 온다. 처음에는 아직 딸아이 결혼날이 잡힌 것을 주변에 알리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날리는 눈바람 따라 말바람으로 전해졌나 싶었다. 하지만 왠걸, 나에 대한 축하인사였다.
"선생님! 너무 너무 축하드려요!"
"샘! 부러워요.^^ 이제는 백년까지 잘 사시기 바라요!"
처음에는 황당했다. 그리고 오늘(28일) 내막을 알고 보니, 내가 이전에 설립했던 단체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30대 후반의 동명이인 아가씨가 결혼을 했다는 것이다. 단체 소식지에 그 결혼소식을 실었는데, 나이와 직함을 안 적고 그냥 실명으로만 '이OO 활동가가 결혼을 했다'고 알린 모양이다.
내가 50살이 넘어서 싱글로 살아가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그냥 그러려니 다른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10년 넘게 싱글로 살다 보니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 무슨 재미로 살아요?" "외롭지 않으세요?"라고 묻기도 한다.
마치 음식을 내가 잘 안 먹으면 "나는 먹는 재미로 사는데"하고 말하는 사람처럼 그 사람도 아마 항상 옆에 누군가 붙어있어야 재미있는가 보다. 그 속은 알 수 없겠지만 그래도 나를 생각해줘서 그런가 보다 하고 고맙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사람마다 제 각각 생각이 다르고, 마음이 다르고, 기호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렇게 쉽게 말하거나 또는 소식지에 쉽게 실명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단체가 나와 무관한 단체라면 아무도 그렇게 오해하지 않았겠지만 내가 창립하고 7년간이나 재직했기 때문에 그 단체의 소식지를 받는 많은 회원들과 지역의 시민단체 관련 사람들은 그렇게 잘못 알고 축하인사를 보낸 것이다.
그냥 아니라고 하면서 연말연시 인사 삼아 웃고 넘기는 응답 문자를 보내면 꼭 따라 나오는 것이 "새해에는 좋은 인연 만나 꼭 결혼하세요!"하는 덕담이라고 생각하는 인사가 온다.
처음에는 유쾌했지만 나중에는 석연찮은 느낌이 들고 또 저절로 덤덤해져 이렇게 글을 쓴다.
인권단체의 사람들은 호칭에 민감하다. 언젠가 조직을 처음 만들기 시작했을 때 조직의 직을 따서 보통 사람들이 그러듯이 '직원'이라고 표현했다가 집단 왕따를 잠시 받기도 했다. 사심없이 했던 그 호칭이 권위적으로 여겨졌다고 했다. 그래서 '인권활동가'라고 서로 지칭한다. 좋은 사회를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 '활동하는 사람들'일텐데, 어쨌든 굳이 그렇게 특별한 호칭화를 하는 것이 필요했나 보다.
밥을 먹는 식당이나 주차장 등에서 누가 내게 "아줌마"라고 말하면 우리 딸들은 기분 나빠한다. 나야 호칭 자체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살아가지만, 어르신을 할아버지라고 하면 어르신도 기분나빠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호칭을 아주 중요한 '예의'로 생각하는 것 같다.
심형래씨가 TV 토크쇼 프로그램에 나와서 했던 말이 기억난다. 사회자가 그에게 "누군가 '심형래씨'하면 기분 나쁘지 않냐"고 물으니, 그는 "심형래씨라고 하든 심 감독님이라고 하든 그 사람의 자유고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말했다.
난 심형래가 만드는 작품이 좀 유치하고 자막이 없으면 내용도 알 수 없어 그가 만든 영구시리즈 영화는 거의 보지 않았지만, 토크쇼에서 그가 그 말을 하는 순간 그의 코가 '복코'로 보이고 후덕한 코주부 고바우 할아버지처럼 친근해졌다.
10여 년 전 사회활동을 처음 했을 때 사무국장이 "폭력상담원자격이 필요해서 양성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백일 난 아기 때문에 못 교육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사무국장이 매주 양성교육을 받으러 갈 때마다 갓난아기를 내가 종일 안거나 업고 일 할 때가 있었다.
그때 내가 아기를 재우느라 업고 동네를 한 바퀴 돌거나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는 것을 여러 달 하다 보니, 사람들은 모두 내가 재혼해서 아기를 낳은 줄 알았던 해프닝도 있었다.
그리고 나도 가끔 사람들에게 "요즘 애인이 생겨서 하루 종일 일도 같이 하고, 잠도 같이 자요! 그 애인이 백일 난 남자 아기랍니다"하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그때의 해프닝에 비하면 지금의 결혼축하 메시지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조금은 개운하지 않은 이 느낌은 대체 무엇일까? 영원히 혼자이고 싶지 않다는 인간 본연의 욕망에 대한 허전함이 조금은 잠재적으로 깔려서 그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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