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목적의 '감청'에 사실상 제한을 두지 않고 있는 통신비밀보호법 조항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28일 "통신비밀보호법 제6조 제7항이 헌법상 사생활 비밀과 통신의 자유를 부당히 침해한다"며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제청한 위헌법률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4(헌법불합치)대 2(단순위헌)대 3(합헌)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단순위헌결정을 선고해 당장 법조항의 효력을 즉시 상실시킬 경우 수사목적상 필요한 정당한 통신제한조치의 연장허가도 가능하지 않게 되는 법적 공백상태가 초래되는 것을 피하고자 개정 시한인 2011년 12월 31일까지 해당 법조항을 잠정 적용하기로 했다.
만약 국회가 개선입법을 하지 않으면 이 사건 법률조항은 2012년 1월 1일부터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
심판 대상 법조항은 수사상 통신제한조치(감청)의 기간이 2개월을 넘지 않아야 하지만 필요하면 2개월 범위 안에서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연장 횟수는 제한하지 않는 내용이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실제 통신제한조치의 기간연장절차의 남용을 통제하는데 한계가 있는 이상 통신제한조치 기간연장에 사법적 통제절차가 있다는 사정만으로는 그 남용으로 인해 개인의 통신의 비밀이 과도하게 제한되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통신제한조치기간을 연장함에 있어 법운용자의 남용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한계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럼에도 통신제한조치의 총연장기간이나 총연장횟수를 제한하지 않고 계속해서 통신제한조치가 연장될 수 있도록 한 이 사건 법률조항은 최소침해성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통신제한조치가 내려진 피의자나 피내사자는 자신이 감청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기본권제한의 특성상 방어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상태에 있으므로 통신제한조치기간의 연장을 허가함에 있어 횟수나 기간제한을 두지 않는다면 수사와 전혀 관계없는 개인의 내밀한 사생활의 비밀이 침해당할 우려가 심히 크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반면 통신제한조치기간의 연장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수사목적은 일정한 연장기간이 종료될 때까지 통신제한조치를 통해 범죄혐의를 입증하지 못한 경우 오히려 그러한 범죄혐의가 불필요했던 것은 아닌가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어, 결국 이 사건 법률조항은 추구하고자 하는 범죄 수사목적에 비해 개인의 통신비밀의 보호법익이 과도하게 제한되므로 법익균형성을 갖추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조대현 재판관은 "감청은 전기통신의 내용을 수색해 사생활의 비밀을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므로 적법한 절차에 따라 법관의 영장에 의해 이뤄져야 함에도, 통신감청 당사자는 감청에 대해 불복절차도 없는 데다 연장 횟수까지 제한하지 않아 감청대상자는 자신이 감청되는 줄도 모른 채 감청당하고 있어 통신감청제도는 적법한 절차에 의한 수색 원칙에 위반된다"는 보충 의견을 냈다.
반면 이공현·김희옥·이동흡 재판관은 "주요 범죄 내지 국가 안위를 위협하는 음모나 조직화된 집단범죄의 음모가 있는 경우에는 장기간에 걸친 지속적인 수사가 필요하고, 통신자료의 특성상 그 증거수집을 위해 지속적인 통신제한조치가 허용돼야 하는데, 횟수나 총연장 기간에 제한을 둔다면 수사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며 합헌 의견을 제시했다.
한편, 서울중앙지법 제25형사부는 2009년 6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이규재(72) 의장 등 간부 3명에 대한 재판 도중 "검찰이 통신비밀보호법을 악용해 작성한 감청자료는 효력이 없고, 토신제한조치기간의 연장을 허가함에 있어 제한을 두고 있지 않는 통신비밀보호법은 피고인들의 사생활의 비밀과 통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변호인의 주장을 받아들여 지난해 11월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