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85km, 결국 5kg이 빠졌다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63] 고성군 간성읍에서 홍천을 거쳐 서울 길음동까지

등록 2010.12.31 20:21수정 2010.12.31 21:32
0
원고료로 응원


11월 22일(월)


1만리 해안선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 이제 맘 편하게 집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집으로 가기 위해 열심히 페달을 밟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도 없다. 더 이상 마음에 담아둘 일도 없다. 그런데도 오늘 아침 간성읍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마당에 무언가 여전히 가슴 속에 남아 있는 허전한 기운을 떨쳐 버릴 수 없다.


두 달 넘게 바깥 생활을 하고도,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는 게 분명하다. 이대로 끝을 내기에는 무언가 다하지 못한 일이 남아 있는 게 분명한데, 그게 무언지 실체를 파악할 수가 없다. 막상 여행을 끝내려고 하니까 그동안 길 위에서 겪었던 일들이 모두 조금씩 아쉬움이 남는다.

하루 종일 길 위에서 비를 맞아야 했던 일이, 바닷가 절벽 위 오르막길을 수도 없이 오르내려야 했던 일들이 그저 꿈만 같다. 바닷가에서 수없이 마주쳤던 아름다운 광경들 역시 마찬가지다. 일장춘몽이다. 오늘 내 가슴에 한바탕 행복하고 아름다운 꿈을 난 뒤의 허전함 같은 것이 남아 있다. 어쩌면 아무리 길고 먼 여행이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라는 사실이 오늘 내 가슴을 헛헛하게 만드는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a

진부령. ⓒ 성낙선


'인제' 가면 언제 오나? 발길을 붙잡는 진부령

a

진부령 정상 표지석 ⓒ 성낙선

여행이 길어지면서, 나중에는 거의 매일 하루라도 빨리 집에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쫓겼다. 그래서 집에 돌아갈 날이 되면 뛸 듯이 기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그날이 코앞에 닥쳐서는 생각처럼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홀가분하지가 않다. 숙소를 나설 시간이 돼서 짐을 꾸리는데 자꾸 손이 헛짚인다. 짐을 싸는 순서가 뒤죽박죽이다. 몸은 벌써 문밖에 나가 있는데 마음은 아직 떠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 진부령이 자꾸 내 발을 잡는다. 한반도의 등줄기인 태백산맥을 넘어가는 일이 동네 뒷산을 오르내리는 것처럼 간단할 리 없다. 역시 호락호락 길을 내어주지 않는다. 간성읍을 떠난 뒤로는 46번 국도를 타고 한동안 거의 평지나 다름이 없는 길을 달린다. 그러다 장신유원지 앞을 지나면서부터 도로 주변에서 논과 밭이 사라지더니 본격적으로 산길로 접어든다.


좁은 2차선 도로가 산과 산 사이 깊은 계곡을 거슬러 올라간다. 산이 생각 밖으로 깊다. 대관령과는 또 다르다. 대관령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점점 더 하늘과 가까워진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반해, 진부령은 오히려 산속으로 가라앉는 듯 점점 더 깊어지는 느낌이다. 길이 굽이치는 산등성이를 구불구불 돌아서 올라가는데 이대로 산 속에 갇혀 되돌아 나오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진다. 고갯길이 높아지면서 안경에 뿌옇게 김이 서린다. 점점 더 숨이 가빠진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게, 진부령은 태백산맥의 동쪽 사면을 올라가는 고갯길치고는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편에 속한다. 높이도 다른 고개들에 비하면, 결코 높다고 할 수 없다. 높이 529m로, 대관령이 832m, 미시령이 826미터, 한계령이 1004m인 것에 비하면 한참 낮은 편이다. 그래도 진부령 역시 태백산맥을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상대적으로 덜 힘들 뿐이지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온몸이 흠뻑 땀으로 젖어들 때쯤 정상에 오른다. 이렇게 해서 오늘 또 태백산맥을 넘어가는 험준한 고갯길 중에 하나를 넘는다.

a

진부령 정상 ⓒ 성낙선


날은 점점 더 추워지고, 길에서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a

용대터널 직전 자전거도로 알림판 ⓒ 성낙선

진부령을 넘어가면, 이후로 인제까지는 거의 내리막길이다. 올라온 것만큼이나 긴 내리막이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태백산맥 산줄기를 빠져나간다. 마치 미끄러지듯이 빠른 속도다. 그러다가 인제군 용대리를 지나가는 용대터널 앞에서 한참을 망설인다. 터널 앞에 자전거 통행금지 표시가 붙어 있다. 그리고 46호선 옛길을 이용하라는 자전거도로 표시가 있기는 한데, 어디를 어떻게 가라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우회하라는 도로가 몹시 복잡하다. 갈래 길이 많은데, 어디를 어떻게 가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주변에 인가를 찾아볼 수 없는 산속 도로여서 길을 한 번 잘못 들면 큰 낭패를 겪을 수밖에 없다. 결국 도로를 헤맨 끝에 다시 용대터널과 마주친다. 피해 갈 방법이 없다. 위험을 무릅쓰고 터널을 통과한다. 그때 터널을 피하려면 한계리 방향으로 가야 했다.

인제를 지나면서부터는 44번 국도로 갈아탄다. 그 후로는 오로지 페달을 밟는 데만 집중한다.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다행히 해가 지기 직전에 홍천 시내로 들어선다. 해가 지면서 기온이 급강하한다. 땀이 식으면서 몸에서 열기가 빠져나가는지, 온몸이 으슬으슬 떨려온다. 견디기 힘든 추위다.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이 상태로 10분 이상을 버티기 힘들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추위를 막아줄 따뜻한 방 한 칸이다. 멀리 홍천강 제방 너머로 네온사인 불 밝힌 모텔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망설일 시간이 없다. 그곳을 향해 직행한다. 그러고 보니, 날마다 방 한 칸을 찾아 헤매다녀야 하는 일도 오늘로 끝이다. 오늘 하루 달린 거리는 115km, 총누적거리는 4863km이다.

a

홍천 가는 길 ⓒ 성낙선


11월 23일(화)

사고 없는 여행,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a

홍천. 길 표면이 살짝 얼어 있다. ⓒ 성낙선

날이 몹시 춥다. 아침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길바닥에 얇게 얼음이 얼어 있다. 자칫 잘못하면 길 위에서 넘어져 낙상을 할 수도 있다. 홍천 시내를 빠져나가는 동안, 겁이 나서 감히 도로 위로는 올라가 보지도 못하고 인도 위를 조심스럽게 달린다. 서울이 멀지 않다. 어제와 같은 속도라면, 해가 지기 전에 서울로 들어설 수도 있다.

그전에 내가 헤쳐나가야 할 난관이 하나 더 남아 있다. 예전에 경험한 대로라면, 서울에 가까워질수록 도로 위로 차량이 점점 더 많이 늘어나게 되어 있다. 자연히 자전거통행이 위험한 구간도 점점 더 많아진다.

오늘로 여행 70일째다. 자전거로 도로 위를 달리면서 이렇다 할 사고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참 놀라운 일이다. 기적에 가깝다. 그런데 서울을 코앞에 두고 사고를 당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고 없이 무사히 여행을 끝마치기 위해서는 마지막까지 주의를 흐트러트리지 않아야 한다.

장거리 자전거여행을 하면서 매번 한두 차례 작고 큰 사고를 겪곤 했다. 지난해 제주도여행 길에서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자전거를 타면서 졸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한 달 가까이 자전거를 타지 못한 적도 있다. 여행을 시작한 지 10일이 지날 무렵에 주로 사고가 일어나곤 했다. 사고가 일어나는 주기가 일정한 게, 일종의 징크스로 굳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을 해야 할 정도였다. 이번에도 사고가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도 단 한 번의 사고도 없었다. 징크스 같은 건 있지도 않았다. 정말이지 운이 좋았다.

사실은 그동안의 '경험'이 사고를 방지하는 데 가장 주효했던 게 아닌가 싶다. 사고는 겪어보지 않으면 잘 모른다. 같은 사고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강력한 사고 방지 대책도 없다는 생각이다. '안전한 여행'도 알고 보면 고된 훈련과 피할 수 없는 고통 끝에 얻어지는 것이다.

a

홍천 시내를 벗어난 후에 나타나는 며느리고개터널 ⓒ 성낙선


위험천만, 양평의 누더기처럼 기워 만든 도로

양평으로 들어서기 전에 도로 위로 군부대 차량들이 줄지어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이때까지만 해도 연평도에 포탄이 떨어진 것을 알지 못했다. 군부대가 많은 지역이라 달리 이상하게 볼 것도 없었다. 그 무렵 연평도에서는 170여 발의 포탄이 떨어지고, 우리 국군은 진돗개 하나를 발령한 상태에서 북쪽을 향해 80여 발의 포탄을 응사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왜 그때 사이렌 소리 같은 걸 듣지 못했는지 이상한 일이다. 하긴 그 무렵 사이렌이 울렸다고 해도 내 귀에 그 소리가 들어왔을지 의문이다. 양평은 도로가 험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곳이다. 악조건이라는 악조건은 다 갖췄다. 누더기식으로 여기저기 땜질을 해놓은 도로에, 갓길마저 없는 구간이 심심찮게 나타난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도로다. 그 도로가 평탄도는 이렇다저렇다 거론하기도 힘들 지경이고, 도로변에 널려 있는 이물질로는 지뢰밭이 따로 없다. 그런 도로를 달리고 있었으니 다른 일에 신경을 쓸 겨를도 없었다.

자동차 운전자들의 운전 솜씨 역시 무척 거칠다. 사람이 잘못된 게 아니다. 도로가 문제다. 이런 도로 위를 자전거를 타고 달리려면 보통 침착해야 되는 게 아니다. 이런 도로일수록 주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상황에 집중하되 불필요한 것들에 주의를 흐트러트리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사고를 피할 수 있다.

이런 길이 덕소까지 이어지는데, 그 사이 좀처럼 마음을 놓지 못한다. 덕소로 들어서서야 겨우 지뢰밭 같은 위험지대에서 벗어난다. 비로소 안심이다. 여기서부터는 강변 자전거도로로 올라타는데, 이 자전거도로가 서울까지 이어진다.

a

덕소, 강변 자전거도로 ⓒ 성낙선


역시 서울, 한강으로 뛰어들려고 하는 여자

서울 한강 변의 자전거도로로 들어서면서 속도를 늦추기 시작한다. 서울로 들어선 이상 더는 속도나 거리에 연연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긴장을 풀어헤치기에는 아직 이르다. 세상에 서울처럼 복잡한 도시도 없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건이 발생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서울로 들어선 지 2시간도 되지 않아, 뚝섬 유원지 부근에서 영문을 알 수 없는 사건과 마주친다. 갑자기 자전거도로로 뛰어든 한 젊은 여자가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려 강가를 둘러친 울타리를 넘어가려는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70일 만에 돌아온 서울에서 처음으로 목격하는 사건치곤 너무 당혹스럽다.

처음엔 영문을 몰라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곧이어 여자를 뒤따라온 남자가 여자의 팔을 잡아당기는 걸 보고 나서야 여자가 무슨 짓을 하려고 했던 건지 깨닫는다. 보통 심란한 장면이 아니다. 남자가 '이게 무슨 짓이냐'고 고함을 지르자, 여자가 울타리를 붙잡고 늘어지면서 하늘 높이 울부짖기 시작한다.

금세 한강이 여자가 목청껏 쏟아내는 울음소리로 가득 찬다. 가슴이 터지고 목젖이 갈라지는 울음소리다. 무슨 한이 저리도 깊을까? 무엇이 여자로 하여금 그처럼 격렬하게 울부짖게 만드는 것일까?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이 고통스러운  울음소리다. 그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비로소 내가 서울이라는, 죽통 속 같은 도시로 되돌아왔음을 실감한다.

a

서울 한강 자전거도로 ⓒ 성낙선


내게 큰 힘이 되었던, 짧은 응원의 말 한 마디

그 무렵 다시 성수대교 위로 전투기 한 대가 서쪽 하늘로 흰 연기를 내뿜으며 사라지는 게 눈에 들어왔지만 그 광경 역시 별스럽지 않게 보아 넘긴다. 그러다 오후 6시 무렵, 마침내 집 문턱을 넘어서서야 비로소 연평도에 포탄이 떨어진 사실을 알게 된다. 집에 들어서서 들은 첫 소식치고는 너무 충격적이다. 지난 세기에 이미 멸종된 것으로 알았던 괴물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더니, 아예 60년 전 괴물을 되살려낸 꼴이 아닌가?

너무 끔찍하다. 그 소식을 접하면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순간이동이라도 하는 것처럼 재빨리 현실로 되돌아온다. 여행 짐을 내려놓고 나서 지퍼를 열기도 전이다. 덕분에 70일 만에 집에 돌아온 감흥 따윈, 곰곰이 곱씹을 필요도 없게 된다. 여행에서 돌아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마저 한가해 보일 지경인데, 감상이라니 지나치게 배부른 소리 아닌가?

그 와중에 여기저기서 축하 메시지를 받아야 하는 일이 고통스럽다. 솔직히 조용히 넘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그렇다고 여행 중에 만났던 분들과 내가 여행을 떠난 걸 알고 있는 분들에게마저, 내가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음을 알리지 않을 수도 없다. 여행을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던 게 모두 그들의 관심과 응원 덕분이다. 비록 세상이 무너진다 해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는 남겨야 한다.

중간에 여행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그들의 격려와 응원이 큰 힘이 됐다. 힘이 들 때마다, '꼭 완주를 하라'던 그들의 격려와 응원을 수도 없이 되새겼다. 그들은 진심으로 내가 이 여행을 무사히 끝마치고 돌아오기를, 혹은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 말들이 길 위에 주저앉고 싶은 나를 끊임없이 일으켜 세웠다. 말 한마디, 손짓 하나가 그렇게까지 큰 힘이 될 줄은 몰랐다. 아직도 '완주를 하라'고 소리치며 머리 위로 높이 손을 흔들던 사람들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 장면만 떠올리면 지금도 콧날이 시큰해진다. 그분들 때문에 중간에 여행을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할 수가 없었다. 내 평생 그처럼 열렬한 응원은 처음 받아 보았다. 그 모습들, 절대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a

양평을 벗어나 양수리 가는 길의 아름다운 강변 도로. ⓒ 성낙선


엄청난 감동, 평생 쓰고도 남을 에너지를 얻었다

여러모로 힘은 들었지만, 행복한 시간이었다. 몸에서 통증이 사라질 날이 없었는데, 그 고통을 이기고도 남을 만큼 즐거운 날들이었다.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사람도 아름답고 바다도 아름다웠다. 이번에 우리나라 바다가 아름답다는 말을 제대로 실감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바다치고, 아름답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었다. 새로운 풍경이 나타날 때마다,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맛봤다. 그런 일이 매일같이 반복됐다.

우리나라 해안선을 70일 동안 파노라마를 보듯이 바라보고 돌아왔다. 그 광경이 아직도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내 머릿속의 거대한 스크린에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3면의 바다가 차례대로 상영이 되는 장면을 떠올려 보시라. 웅대한 장면의 연속이다. 매 순간 엄청난 장관이 연출되고 있다. 그런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아주 소중한 자산을 얻은 셈이다. 그 장면을 말이 아닌 그림으로 보여주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이번 여행에서 얻은 게 정말 많다. 새해가 되면 내 나이 이제 쉰이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앞으로는 그런 생각을 두 번 다시 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 여행으로 새로운 에너지를 얻었다. 여행이 내 삶에 큰 활력을 불어넣은 게 틀림없다. 앞으로도 내 인생, 어떤 일이든지 반드시 '완주'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갈 생각이다.

몸무게가 65kg에서 60kg으로 5kg이나 줄었다. 60kg이면, 내 나이 30대 때나 볼 수 있었던 날렵한 몸매다. 근육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는 걸로 봐서, 지방만 빠져나간 것으로 보인다. 내 키에 몸무게 67kg가량이 정상이라는데, 이제는 근육을 좀 더 키워서 정상 체격을 유지해 볼 생각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입었던 바지가 헐렁헐렁하다. 내가 이번에 여행을 하면서 잃어버린 게 있다면 아마도 이 5kg이 유일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우리나라 해안선 1만리 자전거여행'을 함께 해주신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남긴다. 댓글이나 쪽지로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남겨주신 분들, 그리고 내가 여행을 하고 있는 곳까지 직접 찾아와 내 지친 마음을 달래주고 가신 분들에게서 큰 은혜를 입었다. 다시 한 번 더 강조하지만,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이 여행이 이렇게 아름답게 끝을 맺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 하루 달린 거리는 122km, 총누적거리는 4985km다. 꼬박 70일 동안, 하루 평균 70km를 달린 셈이다. 애초 계획했던 해안선 1만리(4000km) 여행을 1만2천리를 넘겨서 끝마친다.
#자전거여행 #진부령 #홍천 #양평 #해안선 #해안선 1만리 자전거여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2. 2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민주당은 앞으로 꽃길? 서울에서 포착된 '이상 징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