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해서 미안하다?

등록 2010.12.31 19:39수정 2010.12.31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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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지난 일이기는 하지만, 시사주간지인 <시사인> 제162호(10월 23일)에 우울한 기사가 하나 실렸었다. '집이 가난하면 꿈도 가난하다'는 기사였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실의 보고서를 기초로 한 이 기사에서는 서울 강남, 서초, 송파구와 관악, 구로, 금천구 초·중·고 아이들의 꿈을 비교했더니 가난하면 꿈도 가난하다는 분석결과를 내놓았다. 강남 3구의 아이들은 의료인, 법조인, 학자 등 사회지배계층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는데, 관악, 구로, 금천구 아이들은 직업안정성이 높은 교사, 회사원, 공무원 등에 대한 선호가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고등학교로 갈수록 확연했다.

 

사회양극화가 심화되고, 부의 편중이 극심해진 사회구조에서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옛말이 되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아이들의 꿈마저 양극화라는 사실은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물론 직업에 귀천이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어떤 직업이 더 좋은 직업이라고 얘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기업의 세습, 엘리트 집안의 대물림 등 '왕후장상의 씨앗'이 굳어져가는 현실이 아이들의 상상력까지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우울한 일이다.

 

얼마 전 북한의 권력세습이 한참 도마에 올랐었다. 남한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사회주의에 대한 중대한 배신'이라며 이례적으로 강력한 비난성명을 내놓았고, 정당들도 너나없이 비판하고 나섰다. 보수정치권은 간만에 좋은 안주를 만나 말잔치를 벌였다.

 

현실적으로 어떻든 간에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국가에서 권력을 세습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민중에 대한 배신임은 부정하기 어렵다. 세살 때부터 총으로 과녁을 명중할 정도로 위대한 능력을 가진 것이 사실이라고 해서 권좌에 오를 정당성을 확인해주지는 않는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북한만 비판한 일은 아니다. 사실 북한의 3대 세습은 이제야 구체적인 사실로 확인된 것일 뿐 우리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일이다. 당연히 비판해야 할 일이지만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보다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습부터 차단해야 하지 않겠는가. 재벌의 2세 경영 등 부의 대물림, 의사 집안에서 의사가 나오는 우리 안에서의 세습을 막아야 한다. 

 

물론 간단치 않다. 세상을 확 뒤집지 않고 이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 쉽게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데 운동 또한 조금씩 가능한 변화를 꿈꾸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면 우리 안에서 가능한 방법으로 접근하면 된다. 이와 관련해 사회권 또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사회권은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를 이르는 말로 흔히 사회적 생존권으로 표현되는 권리이다. 좀 더 쉽게 얘기하자면 노동, 교육, 주거, 건강 등 사회복지로 표현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우리사회에서는 이 사회권이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이해하고 있다. 사회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돈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법원이 구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입법이나 정책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용산참사와 관련해 철거민들이 주거권 침해를 놓고 국가와 개발업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벌일 수 있어야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런데 반대로 법원은 경제적 자유권(재산권 등)을 보호하는 일에는 적극적이다. 파업으로 인한 거액의 손해배상을 인정하고, 기업규제에 대해서 소극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법원도 부자들의 권리에는 민감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에는 무관심한 셈이다.

 

인권운동의 화살은 바로 이런 지점을 향해야 하지 않을까? 사회권에 대해 소극적인 법원의 태도를 바꾸려는 시도가 시작되어야 한다. 마침 2008년에 UN의 사회권규약 선택의정서도 채택되지 않았던가. 그만큼 사회권 또한 중요한 권리구제의 대상이 된다는 인식이 인류의 보편적 인식으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조효제 교수가 번역한 <인권의 대전환>도 같은 맥락의 주장을 담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사회권에 대한 침해를 놓고 법정에서 다툼을 벌이는 일이 가능하도록 하는 싸움이 시작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사회권 또한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권리임이 우리 사회에서 확인되고, 사회권의 확장을 통해 양극화의 격차를 조금씩 해소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아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에게 가난해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하는, 아이들의 꿈까지 가난하게 만들지 않도록 하는 작지만 중요한 시작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허창영 씨는 현재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2010.12.31 19:39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허창영 씨는 현재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사회양극화 #인권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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