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반세기 전에 끝난 문제 '표현의 자유'

[서평] 앤서니루이스/ 박지웅·이지은 역,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미국 수정헌법 1조>

등록 2010.12.31 19:48수정 2010.12.31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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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미국이라는 나라를 '1등 국가' 또는 '선진국'이라고 수식하는 글을 보다 보면 심기가 매우 불편해진다. 정치면 정치, 경제면 경제, 문화면 문화…. 내가 보는 관점에서는 하나 같이 후진적일 뿐이다. 허술한 복지제도, 천박한 대중문화, 낙후한 의료제도, 위험천만해 보이는 먹을거리 정책, 민주주의인지조차 의심되는 정치제도 등 따져 보면 그 어느 하나 '선진적'인게 없어 보일 정도다.

 

그런데 맘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 이 나라에도 한없이 부러운 게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이 나라가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이다. 표현의 자유에서만큼은 미국은 그 어떤 나라보다 선진적이라는 데에 토를 달기 어렵다. '인권'에 대한 논의에서 미국의 사례는 거의 참고할 것이 없는데,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할 때 만큼은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 쓸 수 있는 자료가 바로 미국, 특히 미국연방대법원이 발전시켜온 여러 가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주옥같은 판례들이다.

 

지금 다루고 있는 이 책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 미국 수정헌법 1조의 역사>는 바로 이 미국의 표현의 자유의 발전사를 잘 정리한 훌륭한 입문서이다. 정리도 잘 되어 있고, 이야기식으로 흥미진진하게 서술되어 있는 데다가, 번역도 매끄럽게 잘 되어 있어서 부담 없이 술술 읽어갈 수 있다.

 

이전에도 이 책과 비슷한 주제를 포괄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와 미국 헌법>(Nowak 외 저)과 표현의 자유의 역사적, 철학적 기원을 추적하는 <표현의 자유의 역사>(Hargreaves 저)와 같은 훌륭한 저작이 있었지만, 이 책만큼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게다가 이 책은 한국 사회에서 매우 시의적절한 책이기도 하다. 지난 몇 년 간 한국 사회를 뒤흔든 여러 가지 문제들, 예컨대, PD수첩 사건, 미네르바 사건, 박원순 사건, 언론소비자운동사건, 야간시위허용문제, G20 쥐그림 사건 등에 대한 핵심적인 쟁점들은 거의 빠짐없이 이 책에서 다뤄지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있다 보면, 우리나라에서 표현의 자유의 보장 수준은 미국의 1960년대 정도가 되는 것 같다. 그나마 발전을 거듭하던 표현의 자유가 이번 정권 들어 도리어 후퇴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면, '선진화'의 과제가 왜 표현의 자유에서는 예외가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사실, 우리의 정치/경제 발전 수준에서 활발하게 토론되어야 하는 문제는 이 책의 후반부에 나오는 표현의 자유의 한계에 대한 최신의 논의들이다. 공인에 대한 비판은 악의적으로 허위의 사실에 기반하지 않는 한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겠지만, 그 공인이 정치인이나 공직자가 아니라, 타블로 같은 연예인이나 변희재나 지만원 같은 인터넷 언론인일 경우에는 얘기가 좀 다르다. 이들에게도 정치인이나 공직자와 같은 수준으로 그 비판이 악의적이거나 심각하게 부주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하라고 하는 것은 부당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혐오발언'(hate speech)도 이제 더 이상 다른 나라 문제가 아니다. 유럽은 대체로 표현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보장하지만, 나치인종주의자에 대해서만큼은 예외라는 것에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우리의 경우라면 어떨까. 우리도 인종혐오발언에 대해서 불관용정책을 취해야 할까? 서구의 인종문제와 비견될 수 있는 지역감정조정발언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동성애 혐오발언은 또 어떤가? 동성애혐오발언은 강력히 처벌되어야 할까? 그 금지가  표현의 자유를 위배하거나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을 낳을 거라는 비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이런 수준의 논의를 해야 할 시점에 우리는 아직도 국가나 공직자에 대한 비판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의 여부를 놓고 지난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 책의 공역자인 박지웅 변호사 역시 그 싸움의 당사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군법무관으로 복무하던 지난 2008년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 23권의 도서가 불온도서로 지정된 데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가 파면당한 바 있다. 우리 사회의 표현의 자유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준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그 비극의 주인공 덕분에 우리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좋은 책 하나를 읽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컬한 일인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홍성수 씨는 현재 숙명여대 법과대학의 교수로 인권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인권에 관한 책을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습니다.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2010.12.31 19:48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홍성수 씨는 현재 숙명여대 법과대학의 교수로 인권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인권에 관한 책을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습니다.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 - 미국 수정헌법 1조의 역사

앤서니 루이스 지음, 박지웅.이지은 옮김,
간장, 2010


#표현의 자유 #수정헌법 1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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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연대는 1999년 7월 2일 창립이후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 따라 국내외 인권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권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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