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함바비리'에 경찰간부들이 가장 많이 오르내리나

브로커 유씨와 접촉한 현직 간부만 40명 넘어... 로비용이자 인맥과시용?

등록 2011.01.14 17:12수정 2011.01.14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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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0일 오후 건설현장 식당(일명 함바집) 운영권 비리에 연루돼 출국금지 당한 강희락 전 경찰청장이 서울동부지검에 소환되었다.

10일 오후 건설현장 식당(일명 함바집) 운영권 비리에 연루돼 출국금지 당한 강희락 전 경찰청장이 서울동부지검에 소환되었다. ⓒ 권우성


인터넷 일본어 사전 등에 따르면, '함바'(飯場, はんば)는 '토목 공사장이나 광산 등에 있는 노무자 합숙소'나 '그곳에서의 전근대적인 노무관리조직'을 뜻한다. 이것이 한국에서는 '건축공사장 식당'을 가리키는 말로 살짝 변용됐다. '현장식당'이라는 순화된 용어가 쓰이기도 한다.

일반식당보다 수익이 높은 함바집은 건설회사에 등록된 업체들이 입찰경쟁을 벌여 선정되기도 하고, 노조에서 직접 운영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브로커를 통해 함바집 운영권을 따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 경우에는 브로커의 로비력이 함바집 운영권 수주의 성과를 좌우할 수밖에 없다.

'함바집 브로커' 유씨와 접촉한 사람만 41명... 총경급 이상 간부의 7%

최근 터진 함바비리에 등장하는 유아무개씨가 바로 건설현장과 함바집 운영자를 이어주는 브로커였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비리연루자는 전·현직 경찰간부들이다. 가장 고위직에 속하는 인사는 강희락 전 경찰청장과 이길범 전 해양경찰청장. 양대 경찰조직의 총수였던 두 사람은 최근 검찰소환조사를 받았다. 다만 강 전 청장의 구속영장청구는 13일 기각됐다.

현직 고위간부인 양성철 광주청장과 김병철 울산청장도 연루의혹을 받고 있다. 두 사람은 연루의혹이 터진 직후 치안정책연구소로 대기발령 조치됐다. 또 이동선 전 경찰청 경무국장과 박기륜 전 경기청 2차장도 검찰소환조사를 앞두고 있다.

특히 '함바집 브로커' 유씨와 접촉했다고 자진신고한 현직 경찰간부만 41명에 이른다. 조현오 현 경찰청장의 지시로 자진신고를 받은 결과, 총경급 이상 간부 41명이 유씨와 만난 적이 있다고 고백한 것. 560여 명에 이르는 총경급 간부의 7.3%에 해당하는 규모다. '자진신고'라는 형식을 헤아리면 유씨와 접촉한 간부들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자진신고자 41명에는 강 전 청장의 부임지에서 근무했던 경찰서장이 많았고, 지역별로는 수도권과 부산·경남(PK)이 상당수를 차지했다. 이와 관련, 조현오 청장은 "이들 지역에 건설현장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들과 유씨의 연결을 주선한 인사로는 강희락·이길범 전 청장, 김병철 울산청장, 박기륜 전 경기청 차장, 박일만 전 부산청장 등으로 알려졌다. 강 전 청장과 박 전 부산청장은 부산에서 근무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본인들은 연루의혹을 부인하고 있지만 이러한 지역적 특성 때문에 박영진 전 경남청장, 김중확 전 부산청장 등의 이름도 오르내리고 있다. 부산 해운대경찰서장을 지낸 김철준 부산청 차장은 '41명의 자진신고자'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흥미로운 사실은 조현오 청장도 2008년부터 2009년 1월까지 부산청장으로 근무했다는 사실이다.


유씨와 경찰 간부들의 유착관계는 10년 이상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유씨는 90년대 부산 등을 근거지로 함바집 운영권 업체를 운영해왔다. 유씨는 90년대 후반부터 핵심 연결고리로 드러난 강 전 청장과 인연을 맺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유씨가 일선 경찰서의 회식자리까지 챙겨온 정황들까지 드러나 '경찰스폰서' 논란까지 일고 있다. 지난해 검찰조직을 뒤흔들었던 '검사스폰서 사건'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경찰체제 잘 아고 있는 유씨가 인맥과시용으로 경찰인맥 활용"

건축공사장에는 민원들이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함바집 등을 비롯해 공사장 전체가 경찰의 관리대상이다. 경찰의 영향력이 크게 미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유씨는 이런 특성을 잘 파악해 자신의 사업에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에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원래 건설현장에는 분규나 데모 등이 많이 있기 때문에 경찰과 잘 알고 지낼 수밖에 없다"며 "그래서 (함바집에) 문제가 생길 경우 경찰에 전화 한 통을 넣어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유씨의 사업근거지인 부산에서 근무하는 또 다른 경찰관은 "경찰서 정보과에서 관할지역 상황을 점검하는데 공사현장도 다 파악한다"며 "유씨도 그런 경찰체제를 잘 알고 그것을 이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찰이 시공사와 업자 사이를 연결해주거나 시공사에 압력을 넣을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유씨는 자신이 알고 지내는 경찰간부 인맥들을 활용해 시공사 간부나 공사현장 책임자 등을 만나게 해달라고 청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언급한 부산지역 경찰관은 "유씨는 주로 경무관이나 치안감 이상 간부들과 관계를 맺어왔다"며 "이들이 경찰서장에게 '유씨를 도와주라'고 부탁하면 거절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건축공사장 현장소장 등이 함바집 운영권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공사장을 관할하고 있는 경찰을 통해 로비하는 것이 운영권을 따내는 지름길로 통했다. 하지만 로비로 인한 비리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현장소장 등이 개입할 수 없도록 방향이 바뀌고 있다. 건설회사 본사에서 함바집 운영권 등을 직접 챙기기 시작했다는 것.

특히 경찰간부들이 함바집 운영권을 직접 챙겨주기는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유씨가 경찰간부들을 자신의 '인맥과시용'으로 활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다른 경찰관은 "유씨가 목포출신이긴 하지만 호남지역에는 건설경기가 없기 때문에 주로 부산에서 사업을 해왔다"고 말한 뒤, "하지만 그 지역에 연고를 두지 않으면 함바집 운영권 등을 따내기는 쉽지 않다"며 "그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경찰간부들과 관계를 맺어 자신의 인맥을 과시해온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강희락 전 청장 구속영장 기각... 검찰의 수사확대에 제동 걸리나? 

한편 함바비리의 핵심 연결고리인 강희락 전 청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검찰의 수사확대에 제동이 걸렸다. 특히 법원은 기각사유에서 "피의자를 구속해야 할 정도로 혐의사실에 대해 충분한 소명이 이뤄졌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는 검찰의 부실수사를 지적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 검찰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구속영장 재청구도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일선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유씨가 부풀린 얘기를 가지고 수사한 검찰이나 그것을 보도한 언론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고, 다른 관계자는 "5만 원, 10만 원만 받아도 옷을 벗겼던 조현오 청장이 자진신고한 41명을 어떻게 처리할지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함바비리사건 #유상봉 #강희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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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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