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사건 현장 열 두시간만에 다시 염라대왕 앞에 섰던 도로. 나그네는 이곳에서 순간이나마 득도(?)의 경지를 느꼈다.
조영삼
순간의 판단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고 했던가. 아니 판단할 겨를도 없었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 다시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어서 본래 차선으로 들어섰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그네는 무아의 경지를 맛보았다. 아무런 감정도, 느낌도, 생각도 없는 무(無)의 경지, 그리고 평상심으로 돌아왔을 때는 거대한 악마처럼 돌진해 왔던 대형트럭은 이미 시야 저 편으로 사라지고 있었고 나의 철마는 일 터를 향해 가던 길을 가고 있었던 것이다.
불과 1~2초 사이에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을 연출했던 것이다. ㄷ자를 넘어 요철 모양으로 나의 철마는 그야말로 무인지경의 묘기(?)를 보여준 것이다. 어느 아동용 영화였던가. 운전자 없이도 스스로 위기상황을 극복해 가며 도로를 질주하는 무인 승용차처럼 나그네는 지금도 직접 운전을 했다는 생각보다 나의 철마가 스스로 찰나의 위기를 극복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터에 도착해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침 인사를 하고 휴게실에 들어서니 방향이 같아서 종종 도로상에서 마주치는 동료 한 사람이 걱정 반 궁금증 반인 얼굴 표정으로 물어왔다.
"너, 괜찮은 거야? 정말 괜찮아?"
"뭘 말이야?"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나그네를 의아하다는 듯 뚫어지게 바라본다. 그러면서 덧붙여 말을 늘어 놓는다.
"내가 바로 너 바로 뒤에 따라오면서 다 보았어. 너는 지옥 문턱까지 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거야. 그런데도 아무렇지도 않아? 너 사람 맞아? 오늘 일 할 수 있겠니? 오늘 하루 그냥 집에 가서 안정을 취하고 쉬지 그래. 원한다면 내가 관리자에게 말해 줄게."
나그네는 그의 근심과 제의가 고맙기는 했지만 당사자가 아니고 현장을 목격하지 않은 이들에겐 별 대수롭지 않은 사건일 수도 있기에 고맙다고 하면서 정중히 사양을 했다. 부상을 당하거나 차가 파손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다른 이들의 관점에선 전혀 문제가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작년 이맘 때 대형트럭과 충돌해서 유명을 달리한 형님 생각이 일터에서 일을 하면서도 내내 뇌리를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어쨌거나 생과 사의 경계라는 것이 순간이요, 종이 한 장의 간격보다 더 좁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 하루였다. 세월이 어느 정도 지나면 겪어온 지난 일들처럼 서서히 감각이 둔해지겠지만,
나그네는 쉰 두 해를 (아니 새해가 밝았으니 우리 식으로는 쉰 셋인가? 국제나그네로 오랜 세월 밖에서 떠돌다 보니 사실 좀 헷갈린다) 살아오면서 생과 사의 갈림길을 숫하게 넘나들었다. 한국 고속도로에서 차가 꺼꾸로 뒤집어지는 등 몇 번의 대형 교통사고는 기본이고 한국의 안양교도소에서 소내 민주화 투쟁을 하면서 당시 전대협 의장 태재준, 국회의원을 지냈던 이철우, 사노맹의 백태웅, 민애전 대변인 조덕원 등과 함께 모든 곡기는 물론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십 일을 넘나드는 단식을 할 때(물론 물도 마시지 않은 단식은 나그네 혼자만 했다)는 거의 죽음 일보 직전까지 갔다.
그리고 안데스 산맥을 넘으면서 천길 낭떠러지에 떨어질 뻔 했던 일, 망명을 전후로 해서 전무후무한 누명을 쓰고 독일 감옥에서 징역살이 할 때 부당한 독일 검찰에 대항해서 또 다시 목숨을 건 단식을 했던 일, 독일 유수의 신문사 프레스센터에서 할복을 하고 정신을 잃었던 일(깨어나 보니 병원 중환자실이었다), 강제로 독일 정신병원에 수용되어서 울분의 세월을 보냈던 일, 기타 등등.
나그네는 지금 지난 일들을 헤아려 보니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참으로 파란만장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쨌거나 그 때마다 나그네는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 사는 것과 죽는 것은 그야말로 백지 한 장 차이라고. 그리고 마음을 비우며 남은 생을 살아가자고.
그러나 나그네도 보통 사람 중의 하나인지라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생사의 갈림길에 있었느냐는 듯 각박한 현실에 매몰되어 바둥거리며 산다. 아래를 보며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도 어느새 위를 보며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가혹하리만치 자기 반성을 하기도 한 지난 세월들이었다. 그렇게 현실은 녹록지가 않았던 것이다. 가증스럽게도 남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 그래도 나는 숨을 쉬고 살고 있으니 행복한 것 아니냐면서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는 수단으로 삼기도 했다.
어쨌거나 이번 주에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적 같은 일을 하루 간격으로,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대략 열 두 시간 이내에 두 번이나 겪었다. 수요일 늦은 오후에 한 번, 다음 날 이른 새벽에 한 번, 정초에 액땜 한 번 제대로 한 셈이다. 나그네는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독일 지인에게 전화로 거짓말 같은 경험담을 이야기 하면서 껄껄껄 웃어젖혔다.
"염라대왕 앞에 하루 간격으로 두 번이나 갔다 오니까 자질구레한(?) 근심들? 그까이거 아무것도 아니야.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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