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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과의 악연, 오늘로 끝났다

2011 카타르 AFC 아시안 컵 8강전 대한민국 vs 이란 1-0

11.01.23 09:58최종업데이트11.01.23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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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부터 나를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던 앙숙, 언제나 내 앞길에 고춧가루를 뿌려주는 그 녀석을  고등학교, 이어 군대에서까지 다시 마주친다면 어떤 기분일까?

 

1996년 U.A.E 부터 2007년 동남아 4개국 공동개최대회까지 한국과 이란이 4개 대회 연속으로 마주친 아시안컵 잔혹사가 바로 이런 경우이다. 23일 오늘은 그 잔혹사를 멋지게 끊어버린 날이었다.

 

한국과 이란, 그 질긴 인연 그리고 악연

 

한국과 이란의 아시안컵에서의 첫 만남은 1972년 5월 19일 태국 방콕에서 개최된 아시안컵 결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은 박이천의 골로 1점을 얻었지만 2골을 내주고 1-2로 패해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88년 카타르 도하에서 만났을 당시에는 조별리그 경기에서 변병주(前 대구 FC 감독)의 2골 , 황선홍(현 포항 스틸러스 감독)의 1골로 3-0으로 완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96년 U,A,E, 2000년 레바논, 2004년 중국, 2007년 동남아 4개국(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공동개최, 그리고 이번 2011 카타르 대회까지 5번을 연속으로 마주치게 되었다.

 

한국과 이란의 역대 전적에서 재미있는 점은 마치 시소를 타듯, 서로 승패를 주고받던 것이다. 88년 조별리그에서 한국은 이란을 3-0으로 이겼다. 그러나 96년 U.A.E 대회에선 이란의 전설적 스트라이커 알리 다에이가 4득점을 몰아치며 2-1로 잘 앞서고도 결국 2-6으로 대역전패했고, 2000년 대회에선 김상식의 동점골, 이동국의 연장 결승골을 바탕으로 2-1로 이겼다. 그리고 2004년 대회에선 박진섭의 자책골과 알리 카리미에게 3득점을 허용하며 3-4로 패했다. 이번 대회 직전의 동남아 4개국 대회에선 0-0 무승부 끝에 페널티킥까지 가는 격전 끝에 4-2로 이겼다. 하지만 PK전 승은 무승부로 치기 때문에 결국 최근 4개대회를 기준으로 하면  1승 1무 2패로 다소 열세이다.

 

   또한 최근 4번의 대회에서 연속된 이란과 한국의 8강 대진에서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이기고 올라간 팀도 결승 진출은 실패했다는 것이다. 96년 한국에 6-2로 대승을 거둔 이란은 사우디에 pk 끝에 탈락했고, 2000년 연장 끝에 2-1로 이기고 4강에 간 한국은 사우디에 졌다. 2004년 한국을 4-3으로 이기고 4강에 간 이란은 중국을 만나 pk 끝에 패하며 결승 진출에 역시 실패한다. 2007년 승부차기 끝에 이란을 이긴 한국이 4강에 오르지만 4강에서 역시 이라크에 패하며 결승 진출은 실패했다.

 

이기고 올라가도 다음 경기에는 지는 만남. 하지만 계속 이어지는 이 만남. 이것이 한국과 이란의 4개 대회 연속 이어져온 인연 아닌 악연인 것이었다. 더군다나 시소 타기식으로 나오는 결과 탓에 승부차기 끝에 지난 2007년 대회 때 만나 이긴만큼, 이번 2011년은 질 차례라는 비관적인 의견이 높았다. 그리고 그 외에도 체격과 체력에서 밀리고, 순간적인 역습에 약한 한국축구 특성,2002년 한국 대표팀에서 비디오 분석을 담당하던 압신 고트비가 이란 대표팀의 감독이 되었던 점을 언급, 한국 축구를 잘 아는 지한파(知韓派)임을 감안하면 어렵다는 의견까지 가세하며 이번 대회 4강은 힘들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치 않았다.

 

이번에는 달랐다. 한국, 투지와 기술, 여유로 악연을 끊다

 

   오늘 이란은 4-4-2 포메이션을 내걸고, 중앙의 테이무리안과 네쿠남을 기반으로 하는 탄탄한 압박 플레이를 통해 공격을 저지하고, 대신 롱 패스와 측면의 레자에이를 활용하는 기습 플레이로 상대의 골을 노리는 전술로 승부했다. 하지만 한국이 강력한 압박과 패스를 통해 점유율을 높여가며 경기를 풀어나가는 전술을 기반으로 밀어붙이자 여기저기 공간을 내주며 오히려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만약 라흐마티 골키퍼의 세이브가 아니었다면, 게임은 정규 시간안에 끝났을 것이다. 

 

    이전에 호주전을 보면서 생각한 점은 중앙 미드필더 진에서 압박하며 수비를 묶고, 측면을 중심으로 미드필더의 기동력에 기반을 둔 역습 전술에 대한 대비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조광래 감독은 빠른 패스와 강력한 압박으로 주요 선수들을 봉쇄하고 공간을 열어냄으로서, 오늘 이란전에서 호주전 이후 부각된 문제에 대한 아주 적절한 대책을 내놓은 것이었다.  연장 전반 17분 마침내 터진 윤빛가람 선수의 감각적인 중거리 슛도 결국 이러한 패스 플레이를 통해 이란의 압박이 어느 정도 풀려진 상황에서 이뤄진 결과물이었다. 또한 오늘의 패스 플레이는 한국 축구가 전보다 더욱 진보했음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돋보인 점은 투지라고 할 수 있었다. 오늘 8강전에서 가장 돋보인 선수는 3명, 이용래와 박지성, 이영표였다. 이영표는 오늘 경기의 요주의 대상인 레자에이 선수를 잘 묶어줌으로서 중앙을 막고 측면을 기반으로 파고 들어간다는 전술을 무력화시켰다. 그리고 박지성은 결정적인 역습 찬스를 여러번 저지시키며, 이란의 역습 전술마저 무력화시켰다. 그리고 이용래의 경우 2선에서 활발한 움직임으로 네쿠남(오사수나, 스페인)과 테이무리안(EPL의 풀럼과 볼튼 원더러스에서 뜀)으로 이어지는 유럽 리거 출신의 강력한 중앙라인에 잘 맞서 주었다. 물론 결정적인 상황에서 안정적으로 공을 처리해준 황재원-이정수의 중앙 수비진과 폭발적인 오버래핑과 에너지를 바탕으로 탄탄한 수비를 보여준 차두리, 자책골 위기를 잘 막아준 정성룡 선수까지. 사실 오늘 모든 선수들이 각자 자기 위치에서 좋은 플레이를 보여준 것이 결정적인 승리의 요인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한국이 악연을 끊어낸 카드는 바로 '여유'였다. 이란은 오늘도 상당히 거친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잡아채는 정도는 오히려 애교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심한 태클도 있었다. 특히 손을 잘 쓰며, 상대의 감정적인 플레이를 유도하는 데도 능숙한 레자에이는 어김없이 그러한 시도를 펼쳤다.

 

이영표는 그러나 여기에 말려들지 않고 노련한 수비로 레자에이를 봉쇄했다. 특히 후반 이영표가 레자에이에게서 공을 빼앗고, 또 골 라인을 넘어가기 전 침착하게 터치 라인 밖으로 공을 빼 코너킥이 나올 것 같던 상황을 드로인으로 처리, 공격 상황을 마무리하는 수비는 예술적이었다.

 

반면, 시종일관 격한 태클에 주심과의 불필요한 언쟁까지 벌이며 경고까지 받는 테이무리안, 쓸데없이 넘어지며 자기 팀의 경기흐름까지 끊고, 경고까지 받은 쇼자에이의 모습은 빅리그에서 쌓은 경험이 무색한 함량 미달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오히려 쫓기다 제풀에 지쳐 스스로 무너져버린 모습이 바로 오늘 이란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징크스는 깨라고 있는 것, 이제 일본전을 준비하자

 

  한국은 이란과의 8강전에서 승리하며 이번 대회까지 5번 연속으로 이어진 이란 8강의 악연을 깨는 데 성공했다. 이제 일본과의 4강전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이란과의 8강을 이기고도 결승에 진출하는데는 실패했던 과거의 계속된 징크스를 깨 버릴 차례이다.

 

일본 역시 만만찮은 상대가 아니다. 중앙에서 하세베 마코토(볼프스부르크)가 버티고 있으며, 최근 가능성을 입증받은 신인 카가와 신지(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매우 위협적이다.

하지만 이란을 넘은 한국이 일본까지 넘지 말란 법이 없다. 징크스를 깨버릴 절호의 기회이다. 강팀을 상대로 이기는 것만큼 확실한 심리적 효과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징크스는 깨라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왕의 귀환을 위해서는 징크스조차도 넘어서

앞으로 나가야 한다.

2011.01.23 09:58 ⓒ 2011 OhmyNews
이란전 아시안컵 왕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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