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 선친의 산소는 고향의 시립공원묘지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일대가 대대적으로 개발된다는 공고에 의하여 작년 봄에 이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처럼의 산소가 아닌 다른 곳으로의 수목장(樹木葬)으로 모셨는데 그래서 올 설날부터는 천안시립공원묘지에 갈 일이 근원적으로 소멸되고 말았습니다.
선친께선 아들이 불과 세 살이었던 지난 26년 전에 별안간 이승과의 끈을 놓으셨습니다. 그 바람에 해마다 설날과 한식, 그리고 추석엔 반드시 산소를 찾아 성묘(省墓)를 했습니다. 하지만 개인 산소가 아니었기에 산소 앞에 상석(床石), 그러니까 무덤 앞에 제물을 차려 놓기 위하여 넓적한 돌로 만들어 놓은 상은 만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친의 산소를 찾을 양이면 항상 그렇게 산소의 앞에 우선 신문지를 깔았습니다.
이어 야외 돗자리를 그 위에 덮고 거기서 술을 따른 뒤 북어 등으로 안주를 삼으시라고 한 뒤 절을 올리곤 했습니다. 그같이 허름했던 성묘의 원인은 제가 누구처럼 종중산(宗中山)이라도 있을 만치의 여력이 없는 가난한 소시민이었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그래서 저는 일찍부터 다짐을 한 게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나는 이담에 죽으면 아이들에게 미리 부탁해서 이같은 매장(埋葬)은 말고 화장해서 산이든 강에 뿌려달라고 해야지!'라고 말입니다.
그처럼 '불효자스럽게' 변변치 못한 성묘를 하긴 했으되 산소를 찾을 적마다의 마음가짐은 빈자일등(貧者一燈), 즉 가난한 사람이 바치는 하나의 등(燈)이라는 뜻으로, 물질의 많고 적음보다 정성이 중요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에 다름 아닌 지극정성만큼은 시종일관 견지했다는 사실입니다. 5.18 관련 4개(5.18구속부상자회, 부상자회, 유족회, 기념재단) 단체는 1월 26일 보도자료를 내고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의 5.18민주묘지 참배 과정에서 희생자 묘지 상석(床石)에 발을 딛고 올라선 행위에 대해 5.18 유공자 단체는 광주 시민과 더불어 안타까운 심정으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습니다.
뉴스에서 관련 사진을 같이 보자니 당시 안 대표의 뒤와 곁에도 많은 정치인들이 운집해 있더군요. '하지만 왜 그들의 눈엔 정작 남의 산소 상석에 발을 올려놓는다는 건 고인에 대한 대단한 결례라는 사실을 몰랐을까?' 라는 점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안 대표와 동행한 정용화 전 한나라당 광주시장 후보는 "(안 대표의 행동에 대해)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세세하게 민감하게 보지 말고 여유 있게 봐 달라"고 해명했다고 합니다.
배은희 한나라당 대변인 또한 "묵념을 하고 나니 묘역 안내자가 대표자 1명이 비석에 두 손을 올리면서 추도의 예를 갖추라고 해서 안 대표가 나갔다며 "안 대표의 왼쪽 어깨가 오십견(五十肩)으로 말미암아 굉장히 안 좋아서 팔을 뻗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추도의 예를 갖추려고 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상석에 올라선 것 같다"고 해명했다곤 하지만 말입니다.
일부 네티즌들의 지적처럼 다른 사람도 아닌 명색이 집권여당의 대표라는 분이 이른바 '보온병 발언'과 '자연산 발언'에 이어 다시금 어떤 실수 연발을 보자니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다른 건 차치하고라도 그 산소가 내 가족의 산소라는 생각만 지녔더라도 다시금 구설수에 오르는 일은 애당초 발생조차 안 했을 텐데 말입니다.
| 2011.01.27 18:34 | ⓒ 2011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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