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우길을 걷는 기념사진도 남겼다.
유혜준
이 모임에는 신정일 이사장(사단법인 우리땅걷기), 안은주 사무국장(제주올레), 이순원 이사장(바우길), 이성근 사무처장(사단법인 걷고싶은부산), 이상윤 이사(사단법인 숲길), 임현 구불길지기, 이경호 단장(인천 녹치축둘레길)과 이상인 사무관(산림청) 등 20여 명이 참석했다.
이 날 논의된 이야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길의 날 제정에 관한 것이었다. 11월 11일은 빼빼로데이로 알려져 있는데, 이 날이 길의 날로 정하면 좋을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인천시에서는 그 날을 길의 날로 정해서 축제를 준비할 예정이라는 소식도 들었다. 특히 2011년 11월 11일은 11이 3번 겹치는 날로 아주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했다. 11은 두 다리로 걷는 것을 의미하니, 걷고 또 걷고 걷는 길의 날로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이 모임은 3월에는 제주올레 주관으로 제주에서 열리며, 앞으로 전국의 더 많은 길 전문가들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회의가 끝난 뒤, 이들은 바우길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친교의 시간을 가진 뒤 다음날인 1월 22일, 바우길 걷기에 나섰다. 구제역 때문에 바우길의 여러 구간이 통행금지가 된 지라 구제역과 상관없는 바우길 11구간인 신사임당길 일부와 5구간 바다호수길 일부를 걸었다.

▲ 강릉 선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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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지는 요즘 유명세를 타고 있는 강릉 선교장. 99칸의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주택으로 1965년에 중요 민속자료 제 5호로 지정된 개인 소유의 국가 문화재. 지어진 지 300년이 넘는다는 선교장은 직접 보고 있노라면 일 년쯤 살아보고 싶어지는 집이다. 하필이면 왜 일 년이냐고? 그래야 4계절의 변화를 뚜렷하게 제대로 느껴볼 수 있을 테니까. 다행히 선교장은 구경만 하고 돌아가는 곳이 아니라 묵으면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선교장에서 하룻밤 묵으면서 오랜 역사를 간직한 한옥의 맛을 듬뿍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는 아쉽게도 훗날을 기약하면서 선교장을 둘러본 뒤, 일행과 함께 바우길을 걸으려고 뒷문으로 빠져 나왔다.

▲ 소나무 숲이 아니라 소나무 바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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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논둑길을 지나니 바우길 11구간인 허균허난설헌유적공원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곳에서 공원까지는 2.4km. 길은 소나무 숲으로 이어진다. 강릉에는 유난히 소나무가 많다. 여기를 가도 소나무요, 저기를 가도 소나무다. 산만 그런 것이 아니라 바다에 가도 소나무가 지천이다. 소나무 향기가 강릉을 안개처럼 감싸고돈다고나 할까.
길은 시루봉으로 이어진다. 봉의 생김새가 떡시루 같이 생겼다 해서 시루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데, 문득 슬퍼진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는 온갖 것들이 먹을 것에 비유되었다. 허기가 진 상태에서 산을 보니, 봉우리를 보니 떡시루가 생각났나 보다. 하긴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떡시루는 입맛을 다시게 하기에 충분하다. 꽃을 보면서 밥을 생각해서 이팝나무니 조팝나무라고도 이름을 붙이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니, 요즘 아이들은 떡시루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겠구나 싶어진다. 집에서 떡을 만들 일이 없으니 떡시루가 있을 턱이 없다. 그건 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 어릴 적에 우리 집에 떡시루가 있었다. 바닥에 구멍이 숭숭 뚫린 떡시루가 기억난다. 어머니가 거기에 시루떡을 앉혔던가? 그게 언제적 이야기인지 기억이 가물거리네.

▲ 경포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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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루봉에서 내려가는 길, 소나무 숲길이다. 그 길은 경포대로 이어진다. 그곳에서 경포호수를 내려다본다. 꽁꽁 얼어붙은 호수 위에 햇빛이 눈부시게 쏟아진다. 겨울의 호수는 황량하지만 얼음처럼 투명한 느낌을 안겨준다. 하긴 호수물이 얼어붙긴 했더라. 경포호수를 끼고 걷다보면 어느 사이엔가 허균허난설헌유적공원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 조선시대 최고의 여류시인 허난설헌이 태어난 집터가 있다고 한다.
그 자리에는 지금 한옥집이 들어서 있다. 안채와 사랑채, 곳간채가 ㅁ자형으로 들어서 있고,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쉬어갈 수 있는 난설헌 차방도 있다. 한복을 기품 있게 차려입은 차방 쥔이 문을 연 채 차를 대접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그곳에서 강문 진또배기 마을은 그리 멀지 않았다. 천천히 걸으면 40분 남짓 걸리는 거리. 강문 진또배기 마을에는 바다를 끼고 음식점이 한 줄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곳 식당에서 우럭 미역국으로 점심식사를 푸짐하게 한 다음, 다시 걷기 시작했다.
진또배기는 솟대의 일종으로 강문마을이 이 진또배기로 유명해서 마을이름을 그렇게 붙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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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의 최종 목적지는 남항진 솔바람다리. 바다를 따라 걷는 길이지만 그 길에는 소나무가 울창하게 들어찬 길이 길게 길게 이어진다. 그래서 가끔 바다는 시야에서 사라지다가 마음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는다. 하지만 바다는 쉽게 잊히는 존재가 되기 싫었나 보다. 불쑥 눈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마니 말이다. 그 길, 정말 길게 이어진다.
강릉항에서 죽도봉으로 올라가는 길. 지난해 봄 이곳에 왔을 때가 생각난다. 하루 종일 걸었더니 이제는 그만 걷고 싶어졌는데 그만 죽도봉이 눈앞을 딱 가로막았다. 아이구 저길 우찌 올라가나, 싶었다. 그렇다고 강릉항에서 걷기를 마칠 수도 없는 노릇. 눈 딱 감고 올라가보자, 하면서 죽도봉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디뎠더랬다.
숨을 헐떡이면서 십여 분쯤 올랐을까? 앞이 툭 트이면서 전망대가 눈에 들어왔다. 뭐야, 여기가 정상이야? 그 때 알았다, 죽도봉 높이가 31.1미터라는 것을.

▲ 솔바람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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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봉에서 건너편으로 내려오면 남항진이 보인다. 그리고 강릉항과 남항진을 이어주는 멋진 다리도 모습을 드러낸다. 이름도 운치가 있다. 솔바람 다리. 소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바닷바람과 만나 시원함을 한껏 더 깊어지게 하는 다리라고나 할까. 솔바람 다리는 사람들만이 오갈 수 있다. 걷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다리이므로.
솔바람 다리 아래서 바다를 내려다보니 청둥오리들이 자맥질을 하고 있다. 머리를 바닷물 속에 처박고 두 다리는 하늘을 향해 내뻗은 오리들은 마치 단체로 싱크로나이즈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오리야, 엉덩이 보인다. 얼레리 꼴레리. 오리가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꿀밤이라도 한 대 먹이려고 쫓아왔을까?
솔바람 다리를 건너 도착한 남항진. 이 날의 걷기는 그곳에서 끝났다. 길은 바다를 따라 한없이 이어지니 걸을 길이 없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바다를 따라 계속 걸으면 안인해변이 나올 테고, 더 걸으면 정동진 해변이 나올 테니까.
바우길을 걸은 전국의 길 전문가들은 일부는 먼저, 일부는 저녁식사를 마친 뒤, 3월에 제주에서 다시 만나자는 기약을 하고 돌아갔다. 나는 하루 더 바우길을 걸을 작정으로 게스트하우스에 남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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