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에 붙잡힌 '고흥판 살인의 추억' 징역 15년

1심 무죄→항소심 유죄→대법 "피고인 자백진술의 임의성 인정"

등록 2011.02.16 16:42수정 2011.02.16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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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고흥판 살인의 추억'이라 불리는 사건의 범인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범인 P(63)씨는 2001년 1월 전남 고흥읍에 있는 한 식당에서 K씨, A(여·65)씨와 술을 마셨다. 이후 그는 렌터카를 이용해 A씨를 집(고흥) 근처에 내려주고, K씨도 내려준 다음 자신의 집으로 가려다, A씨와 성관계를 갖기 위해 A씨의 집으로 찾아갔다.

P씨는 성관계를 요구했으나, A씨가 몸 상태가 좋지 않다며 거부했다. 순간 격분한 P씨는 A씨가 목에 두르고 있던 스카프를 힘껏 잡아당겨 그녀를 살해했다. 그 뒤 사체를 집에서 100m 떨어진 대나무밭으로 옮겨 옷을 모두 벗기고 신체의 특정부위를 훼손했다.

당시 경찰은 사건 발생 직후 피해자의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조사하다가 피해자의 집 다용도실에서 발견된 담배꽁초를 근거로 K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추궁했으나 K씨는 범행을 부인했다.

경찰은 또 피해자의 집에 있던 우산이 P씨의 소유임이 밝혀져 그에게 범행을 추궁했으나, P씨는 사건 당일 피해자를 바래다 줄 때 우산을 준 것일 뿐이라면서 범행을 부인했다. 사건 당일에는 비가 약간 내렸다.

경찰이 뚜렷한 물증을 확보하지 못해 이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그러다 사건 발생 후 8년이 지난 2009년 7월 검찰은 P씨에게 살인 전과가 있고 그가 전에 저지른 범행 수법이 A씨를 살해한 방식과 유사하다는 점에 착안해 집중 추궁한 끝은 '자백'을 받아냈다. 실제로 P씨는 1975년 여성의 목을 졸라 살해한 후 특정 신체부위를 훼손해 처벌받은 전력이 있었다.

이 사건은 8년 넘게 미궁에 빠졌다가 해결된 점과 범행 수법이 영화 <살인의 추억>과 흡사해 '고흥판 살인의 추억'으로 불려왔다.


하지만 1심인 광주지법 순천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홍준호 부장판사)는 2009년 11월 살인 혐의로 기소된 P씨에게 "살인 범행에 관한 자백의 진술이 수사 진행에 따라 변경되고, 자백진술과 객관적인 정황증거 사이의 불일치와 모순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의 자백진술은 신빙성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또 "피고인이 1975년 여성의 목을 졸라 살해한 후 특정 신체부위를 훼손한 적이 있다는 사정만으로는 피고인의 자백의 진실성을 담보하기에 충분하다고 볼 수 없다"고 무죄 이유를 덧붙였다.


그러자 P씨는 "피해자를 살해한 사실이 없음에도 검찰에서 최초 이틀간 4회에 걸쳐 장시간 신문을 하고 강압적인 수사에 지친 나머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허위로 자백하게 된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그러나 항소심인 광주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장병우 부장판사)는 지난해 9월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깨고, 유죄를 인정해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스스로도 살해사실을 자백할 경우 중한 형의 처벌을 받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일부러 허위로 자백한 이유라고 볼 만한 특별한 이익이나 동기도 없는 점 등에 비춰 보면, 피고인이 범행에 대해 스스로 죄책감과 불안감에 시달리다가 검찰 조사에서 자백하게 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P씨가 법정에서 "사건 직후에는 어린 자식과 처가 있어서 수사기관에서 부인을 했으나, 이후 항상 불안한 마음으로 살다가 최근 검찰에서 수사를 받으면서 사실대로 진술하게 됐다"고 고백한 점을 자백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양형과 관련, "피고인이 평소 알고 지내던 피해자를 성적 대상으로 삼으려다 실패한 후 목을 졸라 살해한 것으로 그 죄가 매우 무거운데다가, 살해 후 사체의 은밀한 부위를 훼손하고 대나무밭에 던져 범행을 은폐하려 한 점, 과거 동종 전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는 점, 피해자 유족으로부터 용서받거나 피해회복을 위한 노력이 없는 점 등에 비춰 비난가능성 또한 크다"고 밝혔다.

다만 "새로운 증거가 없음에도 스스로 범행을 자백하고, 그동안 죄책감에 시달리며 조심스럽게 살아왔으며, 유족에 대한 용서를 비는 진실을 보였던 점, 범행 당시 술에 취한 상태에서 충동적으로 범행에 이른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참작해 형량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사건은 대법원으로 올라갔으나, 대법원 제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2001년 발생한 60대 여성 피살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구속기소된 P(63)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6일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검찰과 1심 법정에서 범행을 자백하다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항소심부터 비로소 자백은 검찰의 강요와 회유에 의한 허위자백이라고 주장하면서 진술을 번복했는데, 피고인이 검찰에서 조사받은 기간 및 신문경과시간에 비춰 그것이 허위자백을 할 위험성이 있는 위법ㆍ부당한 압박이라고 보이지 않고, 조사과정에 폭행이나 협박 등 부당한 행위도 없었다"고 밝혔다.

또 "피고인이 1심 재판 과정에 변호인과 상의하는 중에도 살해 사실을 인정했던 점, 피고인은 과거 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확정된 전과가 있어 피해자를 살해한 범행을 자백하면 또 무거운 형으로 처벌받게 되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검찰과 1심 법정에서 자백한 점, 원심 법정에서 재판장의 질문의 취지를 이해하고 그것이 자신에게 불리한 경우 충분히 변명하고 방어하는 점 등을 종합할 때 검찰 피의자신문조서 및 1심 법정에서의 자백진술은 모두 임의성이 인정돼 원심의 유죄 판단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살인의 추억 #미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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