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회장 집 앞에서 1인 시위 하다

대한민국이 우리 노동자를 감시하고 미행하는 공화국임을 체험하다

등록 2011.03.06 16:40수정 2011.03.0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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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월 25일 도착한 날 불법파견 정규직화 현대차 본사 앞 노숙 농성 시작

2월 25일 도착한 날 불법파견 정규직화 현대차 본사 앞 노숙 농성 시작 ⓒ 변창기


지난 해 7월 22일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이 난 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는 공장별 노조가입을 추진하고 "현대자동차는 불법파견 중단하고 정규직화 실시하라"는 구호를 내걸고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2010년 11월 15일부터 같은 해 12월 9일까지 장장 25일간 1공장 점거파업을 하기도 했고 2000여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여 체불임금 지급과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법정 집단소송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현대자동차 쪽 반응은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된 만큼 고법 판결을 지켜 보고 판단한다"는 입장을 내보였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고법 판결을 기다렸습니다. 2011년 2월 10일 서울고등법원은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최병승 조합원에 대해 대법원과 같은 판결을 내렸습니다. 현대자동차는 이에 대해 "다시 대법원에 항소 할 것이고 파견법 문제 있어 헌법소원 제기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는 현대자동차 양재동 본사 앞 전조합원 상경 투쟁을 계획 했습니다. 1월 초부터 해고자를 서울 서초 경찰서로 보내 집회신고 절차를 밟았습니다.

"현대자동차에서 용역을 세워 집회 신고를 하고 있습니다. 춥고 힘들지만 몇 날 며칠이 되더라도 꼭 양재동 본사 앞에서 집회 할 수 있도록 집회 신고 투쟁을 계속하겠습니다"

비정규직 노조 게시판에 올라 온 내용을 보면 집회 신고 절차를 밟으려고 올라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 추운 서초 경찰서 앞에서 밤샘 노숙을 하면서 집회 신고를 시도하였습니다. 10여 일 넘게 집회 신고를 하기 위해 밤을 지새웠고 결과 2월 25일부터 3월 1일까지 4박 5일 동안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서 집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앞 4박 5일 전조합원 노숙 농성이 발표된 후 회사 쪽에선 공장별로 징계를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비정규직 노동자는 두 가지 입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사측의 징계 거부 투쟁을 먼저 하고 나중에 서울 상경 투쟁을 하자"는 쪽과 "그 추운데 고생하며 따낸 집회인데 가야 한다"는 쪽이 생겼습니다. 현자노조는 일정을 이유로 "더이상 지원투쟁 못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고 그 후 이상수 지회장은 서울 조계사에 들어가 단식을 시작했습니다.

"저 최00이 지회 간부의 조합비 유용을 밝힙니다"


그 와중에 비정규직 노조 사무장이었던 최00씨가 노조간부가 조합비를 유용했다는 전단지를 만들어 현장에 뿌리고는 잠적해 버렸습니다. 아직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밝혀지지 않았으나 그 문제가 불거지자 이상수 지회장은 단식 14일만에 단식을 풀고 사퇴를 했습니다. 긴급 대표단 모임을 가졌고 4공장 이웅화 대의원이 비상대책위원회 임시 의장을 맡기로 하고 비대위 체제로 비정규직 노조가 운영되었습니다.

a 막힌 길 정몽구 회장 집 문 앞으로 가는 길을 용역 경비가 막고 있다.

막힌 길 정몽구 회장 집 문 앞으로 가는 길을 용역 경비가 막고 있다. ⓒ 변창기


내부 분열에 의해 전조합원 상경 집회는 불투명해졌고 4박 5일 노숙 농성단을 꾸려 올라 가기로 했습니다. 저도 따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2월 25일 아침 6시 경 일어나 준비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07시 구정문 앞에서 간판 하나 들고 1인 시위를 하였고 시내 모임 장소로 나갔습니다. 동천 체육관 앞으로 가보니 버스가 3대 있었습니다. 서울 상경 농성단 모집 결과 100여 명. 그래서 버스 3대를 빌렸다 했습니다.

"우린 아침 7시부터 한바탕 했고 일부 물품도 잃어 버렸습니다."

울산서 출발하여 오후 4시경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 도착하니 많은 지역 노동자들이 와 있었습니다. 집회를 시작하며 사회자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현대자동차 본사 앞 길엔 대형 버스로 막아 두었습니다. 출입구 쪽엔 수십명의 경찰과 용역 경비가 줄지어 서있고 첨단 장비로 녹음, 녹화, 사진 촬영을 하였습니다. 농성 장소는 사람들이 오가는 길몫이었습니다.

"몇 개월 전에는 넓은 길이었는데 화단을 만들어 좁게 만들어 놓았네요."

작년 9월경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 항의 집회에 참석했던 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말했습니다. 살펴보니 노숙 농성을 하는 장소는 협소했습니다. 양 옆으로 뻬곡히 화단으로 조성되어 있었고 온통 가시나무를 심어 두었습니다. 큰 나무들이 있는 본사 건물 뒤편으로 가보니 온통 철조망으로 2중 3중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가까운 곳에 화장실이 없어 먼 곳으로 가야 했습니다.

우리는 16시 경 투쟁 선포식과 함께 노숙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은박 깔개를 길게 깔고 그 위에 침낭을 놓았습니다. 공장별로 각 조를 만들고 다음날부터 어떻게 할 것인지 계획을 짰습니다. 19시에 촛불문화제를 하고 다음날 위해 휴식을 취했습니다. 그날 밤 바람도 많이 불고 날이 추웠습니다.

a 정몽구 회장 집 문 앞 이웅화 비대위 위원장이 정몽구 회장 집 앞에서 1인 시위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 집 문 앞 이웅화 비대위 위원장이 정몽구 회장 집 앞에서 1인 시위하고 있다. ⓒ 변창기


서울 4박 5일 상경 농성단은 전철 타고 다니며 소식지도 나누어 주고 관공서에 가서 1인 시위도 했습니다. 새벽에 갑자기 비가 내려 침낭 싸들고 본사 옆에 있는 하나로 마트 지하로 피신 하기도 하면서 우린 4박 5일 상경 농성을 했습니다. 비가 하루 종일 내렸고 밤에도 내려 금속노조 대회의실에서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밤.

"오늘 우리는 마지막 날 밤을 보냅니다. 오늘은 비가 와도 여기서 밤을 새겠습니다. 투쟁."

2월 28일 월요일 저녁에 우리는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렸고 비는 그날 밤에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침낭을 덮고 그 위에 비닐을 씌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침낭도 옷도 젖어 있었습니다. 3월 1일 화요일 아침엔 날이 추워졌고 내리던 비는 싸리눈으로 바뀌어 내렸습니다. 아침 8시 우리는 간단히 해산 집회를 하고 버스에 올라 울산으로 향했습니다.

정몽구 회장 집에서 1인 시위 하던 일이 가장 생각 나

저는 이번 서울 4박 5일 상경 노숙 농성 중에 가장 멋진 체험이 정몽구 회장 집 앞에서 1인 시위 한 일입니다. 2월 26일 토요일 노숙 농성 2일차 때였습니다. 이날 각 조별로 관공서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기로 했습니다. 우리 8조는 정몽구 회장 집 앞으로 가서 1인 시위를 하기로 했습니다. 정몽구 회장 집은 한남동이라는 곳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버스 타고 가서 내려 한참을 골목 속으로 걸어 들어 갔습니다.

a 정몽구 회장 집 뒤에 보이는 큰 건물이 바로 정몽구 회장 집이다.
한바퀴 걸어보니 726걸음이나 되었다.

정몽구 회장 집 뒤에 보이는 큰 건물이 바로 정몽구 회장 집이다. 한바퀴 걸어보니 726걸음이나 되었다. ⓒ 최우정


사복 입은 경찰 한 사람이 우릴 계속 미행하고 감시했습니다. 용산 경찰서 소속이라고 밝힌 그 사람은 "오늘 계속 따라 다녀야 한다"면서 우리 가는 곳마다 따라다녔습니다. 심지어 식당가서 밥 먹을 때도 따라 왔습니다.

"행인이 길을 가는데 왜 막느냐."

정몽구 회장 집을 태어나서 처음 가보았습니다. 으리으리 한 큰 집이었습니다. 한바퀴 걸어보니 726걸음이나 되었습니다. "정몽구 회장 집 문앞에 가서 1인 시위 하려 하니 길을 비켜라"했지만 용역 경비는 비켜주지 않았습니다. "구호 외치면 집시법 위반으로 처벌 할 수 있다"며 사복 형사가 말했습니다.

"기자면 기자 완장차고 다녀야 한다. 기자증 좀 보자."

저는 오마이뉴스 기자고 정몽구 회장 집 문앞에 가서 사진을 좀 찍어야 겠다고 하니까 사복 형사가 기자증을 보자고 했습니다. 저는 기자증이 없고 기자 완장도 없었습니다. 형사는 자기 말대로 하면 길을 터준다 했습니다. 결국 이웅화 비대위 위원장이 혼자 올라가서 1인 시위 하는 것으로 하고 저는 사진만 찍고 내려 온다는 조건으로 협의가 되었습니다. 형사가 "야 길 열어" 하니깐 그제서야 용역 경비들은 길을 비켜 주었습니다.

정몽구 회장 집 주변으로 빙 둘러 길이 나 있었습니다. 대문이 있는 쪽엔 큰 나무를 심어 안이 안 보이게 되어 있었습니다. 속을 좀 보고 싶었는데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집을 돌아보니 모서리마다 감시 카메라가 달려 있었습니다. 집 구경을 하려고 3번 돌아 보았는데 3번 다 용역이 따라 붙었습니다.

우리는 거기서 10시 40분 쯤에서 12시 쯤까지 있다가 자진 철수 했습니다. 경찰은 우리가 가는 곳마다 따라 다녔습니다. 버스 타면 버스를 같이 타고 따라 다녔습니다. 따라 다니면서 그는 어디론가 계속 상황 보고를 했습니다. 우리는 14시부터 서울역에서 집회가 잡혀 있어 점심먹고 그리로 이동하는 중이었습니다.

서울역에 다다르자 경찰은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그날 우리는 전국에서 올라온 노동자와 함께 집회를 끝내고 다시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앞으로 가서 노숙 농성을 계속 하였습니다.

a 서울역 집회 15시부터 시작된 집회에 전국에서 많이 모였습니다.

서울역 집회 15시부터 시작된 집회에 전국에서 많이 모였습니다. ⓒ 변창기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정규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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