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대한민국, 라스푸틴의 시대로 회귀하다

등록 2011.03.15 12:19수정 2011.03.15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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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20세기폭스사(社)가 만들어낸 장편애니메이션 <아나스타샤>는 당대의 배우들을 동원하여 볼세비키 혁명의 불길 속에 스러져간 홀스타인-로마노프 왕가의 최후와 그 속에서 혹여나 살아남았을 지도 모른다고 전해지는 아나스타샤 공주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그려냈다. 감미로운 OST와 함께 펼쳐지는 화려한 영상은 보는 이들을 환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기에 충분했고 영화는 국내외를 통해 적잖은 성공을 거두었다. 

사실 모든 국민이 법적으로 평등한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혈통적으로 특별하다고 여겨지는 왕족의 이야기는 언제나 특별하게 들리는 무엇인가가 있기는 하다. 그것이 그야말로 ' 법적'인 평등만 있고 '실제적' 평등이 없는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민중 스스로가 만들어낸 망상(妄想)인지, 아니면 기득권을 움켜쥔 일부 사람들이 일반 시민들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가 되기 위해 만든 권력의 산물인지는 모르겠으나 말이다.

그 때문일까? 우리나라의 드라마에서도 왕자님, 공주님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나오는 소재이기도 하다. 박소희 원작의 만화를 각색한 <궁(宮)>과 최근 인기를 끌었던 <마이 프린세스>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일국의 대통령이 뜬금없이 조선왕실을 되살리고 그 덕에 갑작스레 공주의 신분을 찾은 여대생이 잘 생기고 멋진 재벌가의 청년과 알콩달콩 사랑을 나누는 얘기가 인기를 끄는 현실에 너무 냉소하지는 말자. 자신들의 피땀을 흘려 무너뜨린 전제왕권의 잔재를 굳이 부활시키는 민중의 아이러니는 이미 다나카 요시키가 <은하영웅전설>을 통해 충분히 비웃었으니까.

하지만 역사를 통해 오늘을 돌아보고자 하는 이들은 전제왕권의 몰락을 통해 비운의 왕자와 공주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전제정치의 폭압과 퇴행을 보고 그것에 저항하는 민중의 저항을 느낀다. 제정 러시아의 쇠망기에 있어 요승(妖僧) 라스푸틴을 이야기하게 되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라스푸틴의 난행과 그에 휘둘린 러시아 황실의 어리석음은 신과 민중을 섬기어야 할 본분을 버리고 사리사욕에 빠진 거짓 종교인과 그 종교인에 의해 자신의 책임을 잊은 위정자(爲政者)가 만났을 때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역사의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근래 우리 주위에서 국민이 부여한 정치적 권력을 압도하는 종교인의 행위를 자주 접하게 된다. 관용의 가르침을 잊은 그들은 자신이 믿는 종교 이외의 종교에 대해서 적대적인 무례를 서슴치 않고, 심지어는 민주주의의 원칙이나 사회적 합의보다 자신들의 종교관을 우선시하여 대통령에 대한 하야 운동 발언을 쉽게 내뱉는다.


정치에 대한 비판은 정치적 관점에 의해 민주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지, 특정 종교의 종교관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 아니다. 더불어 위정자 역시 자신이 믿는 종교의 지도자의 일성(一聲)에 무릎 꿇을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선택한 민중의 목소리에 보다 귀를 기울이고 소통해야 할 것이다.

위정자와 종교인들이 그것을 잊을수록 마르크스가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고 규정한 발언은 점점 힘을 얻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은 의견도 밝혔다.

"종교는 억압받는 자의 탄식이요, 냉혹한 세상의 따뜻한 가슴이며, 영혼 없는 세상의 영혼이다."

2011년의 대한민국에서 그들이 아편의 길을 걸을 것인지, 민중의 아픔을 끌어안는 길을 갈 것인지 우리는 지켜볼 것이다.
#조용기 #길자연 #이명박 #조찬기도회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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