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경 스님이 지은 <행복한 기원> 겉그림.
조화로운 삶
경복궁 옆길, 송광사 서울 포교당 법련사에서 주지 소임을 맡고 있는 보경 스님.
"난생 처음 갔던 절은 땅끝의 미황사였다. 초등학교에서는 봄가을 소풍을 근처 바닷가와 산을 번갈아서 가곤 했는데, 초등학교 2학년 가을 소풍을 미황사로 가게 됐다. 산길은 거리의 가늠이 쉽지 않다. 학교에서 보이는 앞산을 넘어 달마산을 뒤로 타고 들어가는 길이었던 것 같다."스님은 책을 좋아했다.
"시골에서 자란 것에 비해 독서를 많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읍내에서 매년 개최되는 고전 읽기 경시대회에 학교 대표로 몇 해 나가게 되었던 까닭이다. 그때 심한 눈병으로 고생하면서도 미친 듯이 책을 읽었다."고교 시절부터 출가에 뜻을 두고 준비했다. 고향 집에도 마지막으로 다녀오고 나니 남은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빈 몸 하나로 가는 것이고, 가면 돌아오는 일은 없다'는 말을 수없이 되뇌며 출가 일을 기다렸다. 귀대시간을 맞추기 위해 부대 주위를 빙빙 돌다가 위병소로 향하는 군인처럼, 송광사행 마지막 버스 시간을 확인한 후 시간을 보내다 표를 끊고 버스에 올랐다. 입산하고 열흘쯤 지났을까. 삭발 허락이 떨어졌다.
부처님의 법을 전하는 일은 불립문자(不立文字)다. 도는 문자가 아니기에 문자의 가르침일 수 없다. 문자를 통한 전법이 아니었다. 꽃을 보고 빙그레 웃는 마음이었다. 이런 연유로 한국 선불교의 전통 속에서 문자는 늘 산문 밖에 있었다. 책을 읽는 일, 글을 쓰는 일은 절집의 전통에선 어색한 일이었다.
송광사에는 '문자선(文字禪)'이 있었다. 지난해 세상을 뜨신 법정 스님이 계셨다. 법정 스님의 말과 글은 그대로 선이었다. 한국 불교의 전통이었다.
보경 스님의 말과 글의 산실은 법정 스님이시다. 법정 스님으로부터 받은 영향은 송광사로 출가하기 전부터 시작됐다. 1980년 법정 스님의 광주 강연회가 보경 스님에겐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영혼의 자유, 출세간의 길이었다. 송광사로 출가하였을 때, 법정 스님은 불일암에 계셨다.
송광사에 살던 시절, 스님은 구산 스님의 사리탑을 모신 곳에 세워진 탑전에 방 하나를 두었다. 간소한 책상 앞에는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사진이 있었다.
"이는 글을 쓰고 싶은 마음보다는 책을 사랑하고 평생 책을 가까이하겠다는 서원에 다름 아니었다." 불교의 인문학적 해석을 평생의 화두로 삼았다. 이번 생에 1만 권 독서의 꿈을 품었다. 도심 포교당 행정 소임으로 정신없지만 꿈은 아직 유효하다. 그것은 모든 종교와 사상으로부터 자유롭고 이 자유가 글쓰기에도 상상력과 유연함을 가져왔다.
"무엇보다도 이 구속되지 않는 절대의 자유 속에서 깨달은 것은 삶은 향한 뭇생명들의 지칠 줄 모르는 자유의지가 불러일으키는 경외로움이었다."지금 가는 길이 가장 좋은 길이 되기를"30여 년 전의 일이 아직도 생생하기만 한데, 절집에 들어와 얼마나 많은 수행의 성취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난 겨울에는 대학 입학 원서에 추천서를 써준 학생이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 수시로 합격했다고 인사를 왔다. 전부터 출가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아이였지만 실행에 옮길 거라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이번에 이런 뜻을 보다 분명히 밝혔다. 대학에 들어가는 3월부터 법련사에서 스님과 함께 생활을 시작했다. … 돌이켜보면 나에게는 출가의 길이 가장 쉽고 좋았다. 자신에게 맞는 길은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법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오늘에 이르기까지 행복하게 살았다. 이제 한 아이의 미래를 지켜봐야 할지도 모르는 입장에서 훗날 그 아이에게 기억될 한마디의 축원을 이렇게 남기려 한다. '이 길이 그대에게 가장 좋은 길이 되기를…'"보경 스님의 <행복한 기원>(조화로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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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영남대, 전남대 로스쿨 및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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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는 길이 가장 좋은 길일까? 스님이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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