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못 보고 자살한 작가, 결국 퓰리처상 수상까지

존 케네디 툴의 <바보들의 결탁>

등록 2011.04.24 12:05수정 2011.04.24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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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은 언제라도, 어떤 기회를 통해서라도 알려지는 걸까.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책들 중에는 출판사에서 숱하게 퇴짜를 맞았다고 알려진 작품들이 많다. 조앤 K.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가 여러 출판사에서 문전박대 당한 일은 이미 언론에 여러 번 소개될 정도로 유명하다. 몇 년 사이 국내에서 인기를 끌었던 윌리엄 폴 영의 <오두막>이나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의 <렛미인>도 비슷했다. 대중들에게 사랑받은 소설들이, 자칫하면 영원히 사라질 뻔 했었다.

소설 보지 못하고 자살한 작가


존 케네디 톨의 <바보들의 결탁>은 어떨까. 사연 없는 책이 어디 있겠는가 싶지만, 이 책이 밝힌 사연은 좀 더 특별할 것 같다. 1937년에 태어난 존 케네디 톨은 군복무 중에 소설을 쓴다. 그는 이 작품에 확신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원고를 받은 출판사는 퇴짜를 놓는다. 존 케네디 톨이 원고를 계속해서 수정했다고 하지만 그는 살아생전 원고가 소설이 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자살한다. 1969년의 일이다.

그가 죽은 후, 존 케네디 톨의 어머니가 원고를 들고 출판사들을 찾아다녔다. 출판사들은 거절했다. 이미 죽은 작가 지망생의 원고를 출판해줄 곳은 없었다. 어머니의 노력은 어느 작가에게까지 닿는다. 작가는 이 원고의 가치를 알아 보고 출판을 도와준다. 덕분에 해묵은 원고는 소설이 된다. 작가 사후 11년 만에 일인데, 여기서 '일'이 벌어진다. <바보들의 결탁>이 여러 매체에서 극찬을 받으며 꾸준히 회자되는 소설이 되고 만 것이다.

인정받았다고 할까? 퓰리처상까지 수상했으니 의심할 여지없는 일이었다. 덕분에 존 케네디 톨은 사후에 퓰리처상 수상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참으로 기구한 사연이다. 이것만 해도 책 한 권 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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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결탁> 표지 ⓒ 도마뱀출판사


<바보들의 결탁>은 처음 몇 페이지부터 심상치 않다. '이그네이셔스'라는 주인공 때문이다. 이 남자는 게으른 뚱보다. 입고 다니는 꼴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데, 그것을 '개성'이라는 단어로 용인할 수 있을지는 자신할 수 없다. 별종이다. 황당한 건, 이 별종이 중세 철학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신학과 기하학'이 부재하는 현대문명을 걱정하면서도 조롱한다. 거만한 성격은 독보적인 것을 넘어 독창적으로까지 여겨진다. 석사 학위를 받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좋게 생각해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지금 하는 일은 방안에서 뒹굴 거리는 것뿐이다.


요즘처럼 취업이 어려워서 그렇게 지내는 것도 아니다. 세상이 우습기 때문이다. 세상이 우스워서 어머니에게 얹혀살면서 사사건건 잔소리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고발장을 쓰고 영화를 보러 가고 잡지 중에서 광고 면을 유심히 본다. <바보들의 결탁>의 어느 장을 펼치더라도, 누가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 주인공의 독창적인 성격을.

진짜 바보는 누구일까

<바보들의 결탁>이 흥미로운 건, '신학과 기하학'이 부재하는 현대문명을 우려하는 이그네이셔스가 돈을 벌기 위해 집 밖으로 나가는 거의 모든 장면들이다. 도대체 이 남자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더 궁금한 건 따로 있다. 과연 누가 이런 남자를 고용할까? 기껏해야 신문 배달이 더 제격일 것 같다면서 한다는 소리가 "어머니가 차를 태워주시고 제가 뒷좌석 창문으로 신문을 던지면 될 텐데요."라고 말하는 그를 과연 누가?

<바보들의 결탁>은 굉장히 웃긴다. '바보'를 묘사하는 문장들 사이에 숨겨진 유머러스함은 천재의 솜씨라고 말해도 지나친 과장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크게 웃을 수 없는 건 왜일까. 블랙 코미디 소설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어느 순간부터 읽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묻게 만든다. 진짜 바보는 누구인가? '이그네이셔스'인가, '이그네이셔스'를 보고 웃는 사람인가?

<바보들의 결탁>은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말든 내 알바 아니다, 라는 생각으로 방안에서 '편히' 지내는 사람들을 한껏 조롱하고 있다. 지식인들을 대놓고 비꼬는 건 어떤가. 당사자들을 절망적일 정도로 압박한다. 이그네이셔스의 말처럼 채찍질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이유 때문에 이 소설이 출판되기에 그토록 어려웠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움베르토 에코의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법>이라는 책이 있다. <바보들의 결탁>에서 그 책의 제목이 언뜻 떠오른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 제목도 떠오른다. <바보들의 결탁>은 거창하게 '정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제 몫을 하는 인간으로 살아가도록 각성하게 만드는 분위기가 있다. 살아 돌아올 만한 이유가 충분했다.

바보들의 결탁 - 퓰리처상 수상작

존 케네디 툴 지음, 김선형 옮김,
도마뱀출판사, 2010


#존 케네디 툴 #블랙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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