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양목을 따라 왔던 은사시나무가 이제 회양목의 20배쯤의 키로 자랐습니다.
이안수
회양목을 심은 같은 해에 서재 앞에 좀작살나무를 심었습니다. 길고 가는 가지들이 서재 쪽으로 드리우는 그 품이 좋았습니다. 이듬해에 그 좀작살나무의 가는 가지를 감고 있는 덩굴식물을 발견했습니다. 한 해만에 10살이 넘는 좀작살나무의 가지 끝까지 감아 올라갔습니다. 몸을 휘여 감긴 좀작살나무가 애처로워 그 넝쿨식물을 잘라야 될지를 한동안 고민하다가 생명을 빼앗는 것이 내키지 않아 철사로 유도줄을 만들어 2층 난간으로 유도했습니다. 아직도 이름을 알지 못한 그 덩굴식물은 이제 2층 방에 그림자를 만들고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작년 여름에는 그 덩굴로 은신이 가능한 난간에 멧비둘기가 둥지를 짓고 새끼를 키워나갔습니다.
불당골, 작골마을, 월음실, 저진개, 세태이, 소리개, 황새말, 약사골새집을 짓고 이사를 온 후 주변의 지도를 검색하다가 모티프원이 있는 땅이 애초에 불당골이라는 이름의 지역이었음을 알았습니다. 그 지명만으로도 과거의 어느 시대에 이곳에 부처를 봉안한 집 즉 절이 있었던 마을임이 분명합니다.
헤이리는 옛 한국토지개발공사가 지난 1989년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발표에서 제시된 평화시 건설구상의 일환으로 1990년 5월 특정지역 및 개발촉진지구를 지정하고 통일동산이라는 이름의 파주의 탄현면 일부의 개발로 생겨난 땅을 구입한 곳입니다.
개발이라는 이름의 원형지 훼손작업이 있기 전에 헤이리의 주변에는 작골마을, 월음실, 저진개, 세태이, 소리개, 황새말, 약사골 등의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자연부락들이 존재했었던 것은 물론, 삼국시대에서 조선조 사이에 다양한 유적지가 있었던 것이 통일동산 문화유적 지표조사단에 의해 확인이 되었습니다.
헤이리와 그 속의 참나무골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기 전에 이미 이 땅은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져 살던 곳이었지요. 제가 알지 못하는 생명들의 땅에 새로운 집을 지은 것입니다.
저는 지금 그 옛 흔적을 지운 저진개 옆 불당골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제가 자연과 그것들에 기대고 사는 사람 아닌 뭇 생명들을 대하는 마음을 완전히 바꾸게 했습니다.
제가 이 땅의 주인이 아니라는 인식입니다. 제가 이곳에 집을 짓기 전에 이미 수만 년동안 수많은 날짐승과 들짐승들이 주인으로 살아왔던 것이지요.
사실은 모티프원의 나간에 둥지를 마련한 멧비둘기와 계단룸에 집을 지은 쌍살벌, 그리고 정원에 절로 뿌리를 내린 은사시나무와 넝쿨식물들이 주인인 것입니다.
지난 어린이날 수많은 대처의 사람들이 헤이리를 꽉 메웠습니다. 2층에서 청소를 하는 중에 정원에서 사람들의 얘기소리가 계속되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래를 보니 한 가족이 모티프원의 서재앞 정원에 돗자리를 깔고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인위적으로 가꾸지 않은 그 정원이 소풍장소로 만만했던 모양입니다.
정원을 인위적으로 너무 잘 가꾸어서 사람들의 발길을 금하기보다 가능하면 자연그대로 두어서 온갖 생명들이 발길을 들여놓는데 두려움이 일지 않는 자연의 일부로 남는 '만만한 정원'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실상을 알고 보면 자신의 소유권으로 되어 있는 집의 주인은 관리자일 뿐입니다. 점유자로서 유한한 삶을 살다가 결국 누구가에게 전하고 떠나게 되지요. 모티프원의 주인이 아니라 관리자라는 생각은 이 집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들에 대해 상반된 결론을 돌출합니다. 모티프원을 요람삼은 멧비둘기는 우리집의 이방인이 아니라 주인이며, 저희 정원에서 소풍을 즐기는 분은 사유지의 침입자가 아니라 자연의 공유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연유로 2층 난간에서 멧비둘기가 알을 품고 있는 모습과 그 아래의 정원에서 낯선 가족이 소풍을 즐기면서 흘리는 도란도란한 소리들이 저는 오히려 고맙고 행복합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motif.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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