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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수술 권하는 이유, 이거 보면 알 수 있다

[인터뷰] '한국판 <식코>' <하얀 정글> 송윤희 감독... "난 마이클 무어와 달라"

11.06.25 11:09최종업데이트11.08.13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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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병원에서 실시간으로 환자수를 체크해 의사들에게 발송한 문자 화면. <하얀정글>은 의사들간의 경쟁의식을 부추기고 의료계의 비인간화를 부추기는 대형병원의 행태를 고발한다. ⓒ 한국독립영화협회


군병원이 민영화되고 위탁 경영도 도입된다. 특급 비즈니스호텔에 산부인과가 들어선다. 칭송받던 로봇 수술은 복강경 수술과 큰 차이가 없다는 논문도 나왔다. 마이클 무어의 <식코> 속 미국 얘기가 아니다.

청와대가, 롯데호텔이 추진하고 있는 의료 민영화의 잔상들이다. 로봇수술을 권장하는 이유도 막대한 설치비를 뽑기 위한 방편이다. 이게 다 그 놈의 돈 때문이다. 전 세계에 몇 없는 전국민 의료보험이란 훌륭한 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의료민영화가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일상 속으로 침투하고 있다.

그런 의료계 현실과 의료민영화의 이면을 낱낱이 파헤치는 문제작이 출현했다. 현직 산업의학과 의사인 송윤희 감독의 다큐멘터리 <하얀 정글>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어쩔 수 없이 '한국판 <식코>'로 명명될 수밖에 없을 이 영화는 내부고발에 가까운 의료계 종사자들의 증언과 현실고발을 통해 의료민영화의 폐부에 메스를 들이댄다.

의사인 남편에게 돈 몇 만 원이 없어 죽어가는 환자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카메라를 들었다는 송윤희 감독. 그는 한 달에 2만 원 정도인 약값을 못 구해 당뇨 합병증을 얻은 건설노동자, 국민 성금을 해봤지만 결국 수술비를 충당 못해 심장기형으로 태어난 아이를 떠나보낸 아빠 등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을 만났다.

<하얀 정글>은 한국이 응급실 비용을 감당 못한 환자가 절단된 손가락을 스스로 봉합하는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마이클 무어의 <식코> 속 미국을 따라가고 있다고 경고한다. 대형병원은 외래진료를 30초씩 하는 것도 모자라 시간 당 환자수를 의사에게 문자로 통보하는 등 의사들을 경쟁으로 내몬다. 

현직 산업의학과 전문의인 송윤희 감독은 인터뷰 내내 함께 하는 삶과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한국독립영화협회


지난 17일, 한 주 전 국회 상영을 무사히 마친 송윤희 감독을 만났다. 그는 "의료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길"이라며 의료보험민영화에 젊은 층의 관심을 호소했다. 강단을 가지고 의료계의 어두운 현실을 고발한 그는 "사회보험은 리스크를 나누는 풀"이라며 의료현실의 개선을 위해 '연대'를 강조하기도 했다. 다음은 송윤희 감독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현직 의사가 파헤치는 정글과도 같은 의료계

다큐멘터리 <하얀정글>은 어떤 영화?
산업재해 등과 관련된 노동자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송윤희 감독은 2001년 독립영화협의회 독립영화워크숍에서 영화를 배운 뒤 꾸준히 창작에 대해 고민해 왔다. 그가 2010년 촬영한 <하얀정글>은 의료를 통해 경제 성장을 논하는 정부와 또 영리 추구를 위해 혈안이 된 거대병원을 비판하는 동시에 그로 인해 피해를 입으면서도 의료민영화의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환자들에게 카메라를 가져간다.

의료를 사적 생산수단이 아닌 공적 복지로 볼 수 있는 열린 시각을 제공하는 '한국판 <식코>'라 할 만하다. 아직 정식 배급사가 결정되지 않은 <하얀정글>은 현재 대안배급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보건의료 관련 단체나 시민사회단체 중심으로 공동체상영을 진행 중이다. 지난 8일에는 야4당 주최로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상영하기도 했다.
- 제목이 어쩔 수 없이 <하얀 거탑>을 연상시킨다.
"패러디하려던 건 아니었다. 하얀색은 의사 가운의 상징이다. 예전엔 병원도 다 하얀색이었잖나. 정글은 단지 병원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원칙이 있는 곳은 다 정글이니까."

- 아무래도 의료보험제도와 의료민영화, 상업화의 폐해를 다루고 있기에 '한국판 <식코>'라고 불리고 있다. 민간의료의 천국인 미국을 조롱했던 <식코>와는 어떻게 다른가.
"마이클 무어는 훌륭한 사람이지만 나와는 명확히 다른 부류의 인물이다. 그는 거대한 흐름에 대해서 깔깔거리고, 또 현란한 말솜씨로 상대편을 주눅 들게 한다. (부시) 대통령도 도망갈 정도니까. 난 그만큼의 배짱은 없다. <하얀 정글>은 어쩔 수 없는 연민도 있고 그래도 우리 같이 살아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떼쓰는 면도 보일 거다. 여성적인 관점도 배어 있고."

- 성격이 굉장히 진중해 보인다(웃음). <식코>와 비교한다면, 한국과 미국의 현실 차이나 다큐라는 장르에 녹아든 문화적 토양이 다를 수 있는데.
"<식코>는 적이 너무나 명확했다. 또 완전히 막장으로 간 의료제도를 다뤘다. 극단적인 사건도 많은 만큼 민간의료보험의 폐해만 다뤄도 될 정도다. 적어도 우리나라는 스스로 상처를 꿰매야 하는 상황은 아니잖나. 그렇다고 <하얀 정글>을 보고, '우리는 그 정도는 아니잖아?'라고 하는 오류를 범해선 안 될 것 같다."

- 영화를 본 일반 관객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의료계 현실에 대해서 많이 알게 돼서 놀랐다고들 한다. 병원 가기가 무섭다고도 하고. 대형병원 의사들이 환자수로 경쟁하고, 돈 없는 노인층은 제대로 치료받을 수 없는 등 의료 상업화로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에피소드를 다뤘지만 또 모든 곳이 그렇진 않다. 그렇지만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더 나은 의료제도를 만드는 데 일조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의사들은 영화를 직접 보면 오해가 많이 풀릴 수 있을 거고(웃음)."


- 현직 의료계 사람들이 출연해서 '내부고발' 같은 느낌도 풍긴다. 의료상업화의 진실을 폭로하는 의사, 원무과 직원 등 생생한 증언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기업과 병원이 불쌍한 환자들의 호주머니를 털고 있다"는 인터뷰처럼.

"우리 사회는 내부고발자를 너무 크게 부각시키는 측면이 있다. 우리 사회를 깨끗하게 만드는 분들인데 좀 더 순화된 용어가 나왔으면 좋겠다. 이 영화는 어떤 비리나 단체를 고발한 게 아니라 이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조목조목 짚어준 거라 생각한다. 사실 의사 개개인을 보면 60~70년대와 비교해 도덕성이나 윤리성이 떨어진다고 말할 수 없다. 이 영화도 그런 걸 얘기한 건 아니고. '요즘 의사들은 다 그래'라고 하는 건 공허하고 빈말일 뿐이다."

- 반면 영화적으로 거칠고 세련되지 못했다는 지적도 들린다.
"음향은 돈 들여서 다시 했다(웃음). 최종 버전은 조금 업그레이드됐고. 아름다운 화면 같은 건 고려하지 않았다. 메시지가 중요하고 사람들의 얘기가 중요하다. 상업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거칠 수 있지만, 바로 그게 직설화법으로서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의료보험이 포퓰리즘? 병원 문턱 낮추는 게 국가의 역할

<하얀정글>은 대형 병원이 저지르고 있는 비리를 고발하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 한국독립영화협회


- 이제 좀 큰 얘기를 해보자. 일반인들은 의료민영화에 어떤 의견들을 가지고 있나.
"젊은 층은 건강하니까 일단 의료에 관심이 없다. 30대 이후 아이나 부모님이 아프거나 본인이 아파야 관심을 갖는다. 그게 의료 분야의 한계인 거 같다. 중요한 건, 젊은 사람들도 결국 병원을 주기적으로 이용해야 하는 예비환자들이란 사실이다.

그래서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을 대하는 사회의 기본적인 패러다임은 분배여야 한다. 사회적으로 골고루 분배되는 게 옳다는 걸 젊은 층이 생각했으면 좋겠다. 건강보험료가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이 사회의 안전망으로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고."

- 사실 의료 분야만의 문제는 아니지 않나.
"맞다. 모든 사안이 다 연결돼 있으니까. 이 정권은 (의료민영화에 대해) 영리법인화에 대해 계속 검토 중이라 둘러댄다. 송도국제병원도 마찬가지고. 그런 문제에 대해 우리가 다 같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반값 등록금이 사회적 의제가 된 게 얼마 전이다. 참다 참다 못해 이렇게 됐고 또 국민들도 동의하고 있다. 그만큼 힘드니까. 마찬가지로 의료도, 병도 지금 피부로 와 닿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반값 등록금을 외치며 연대를 하듯이, 의료 분야도 일부나 소외계층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연대를 통해서 (의료민영화를) 저지했으면 한다."

- 영화를 보면 건강평등권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쉽게 어떤 의미인가?
"건강권이 천부적인 인권이라는 건 굉장히 철학적인 문제인데, 쉽게 말해 시민의 권리는 최소한 아팠을 때 돈 때문에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는 거다. 또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가는 병원의 문턱도 낮아야 한다. 그걸 하는 게 국가의 역할이다."

-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다보면 쉽게 '포퓰리즘'이라 공격을 받을 수도 있는데.
"건강보험이 형평성이 떨어진다고 하는 분들도 있다. 난 병원 한 번 간 적 없다, 근데 내가 왜 보험료를 내며 남들까지 책임져야 하나. 그런 분들은 민영 보험회사의 좋은 표적이 될 수 있다. 인식이 잘못된 거다. 사회보험의 의미는 그게 아니니까. 사회보험은 리스크를 나누는 풀이다.

그런 분들을 이해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선정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자기 가족이 아파 봐야 한다. 영국 캐머런 총리는 보수당임에도 불구하고 지지자들의 요구를 뒤로 한 채 의료보험제도를 지켜냈다. 왜 그 제도가 필요한지 아는 거다."

- 의료 광고도 문제다. 그로 인해 수가도 계속 올라가고 경쟁도 가열되고 있다.
"얼마 전 한 대형마트에 갔는데, 긴 레일 양 옆에 척추병원 광고가 붙어 있더라. 의료 광고가 점점 다변화되고 양도 늘어가는 중이다. 광고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히 계속 생겨난다. 광고 규제를 풀어 버리는 순간 허공에서 수요가 생겨나는 거다. 4~5년 전 의료 광고 규제 법안이 발효된 게 문제다."

- 현재 공동체 상영을 진행하고 있고, 극장 개봉도 준비 중이라 들었다. 예비 관객들이 어떻게 <하얀정글>을 봤으면 싶은가.
"너무 빤하고 손발이 오그라들지만(웃음), 사랑하는 마음을 담고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를 더 '등 따숩고' 살기 좋게 만드는 방법을 같이 생각할 수 있는 영화니까. 아, '사랑'은 빼주면 안 되나? 너무 오글거리는데(웃음)."

- 앞으로 활동계획은?
"창작이란 걸 계속 하고 싶다. 시나리오나 극본에 공을 들일 수도 있고. 10개월간 내 모든 걸 쏟아냈는데 이제 재충전을 해야 할 것 같다. 이후 내공과 지혜를 쌓은 뒤,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를 통해 우리사회를 살기 좋게 만들어야지. 너무 착하게만 보이려고 한다고 오해받을 것 같은데, 어쩌지?(웃음)"

하얀정글 송효정감독 식코 한국독립영화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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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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