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울로 코엘료 소설 <연금술사> 표지를 찍은 사진
문학동네
코파카바나 해변이 있는 리우는 코엘료가 때어난 고향이기도 하니, 리우의 어느 아파트에 코엘료가 가끔 들른다는 얘기는 전혀 터무니없는 헛소리는 아닌 것이 분명했다. 코엘료의 주소는 없었지만, 언뜻 떠오른 말을 믿고 나는 리우로 왔다. 경찰이 범인을 잡으려면 범죄현장에 가야하고, 기자가 기사를 쓰려면 사건 현장에 가야 한다는 말이다.
오랜 옛날인가, 내가 어느 신문사의 초년병 기자생활할 때 얘기다. 세월이 오래 흘러 내가 신문기자였던 사실조차도 흐릿해서 사실 여부가 불확실하기는 하다. 하여튼 내가 예전에 신문기자를 했었다고 치자. 그래야 이야기가 술술 물 흐르듯 나오니까. 선배 기자들이 신입 기자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었다.
"야, 임마, 너는 기사를 책상에서 쓰냐? 현장에 가야지, 현장에 가야 기사가 나오지." 나는 돌아서며 "뭐 이런 선배가 다 있어. ××(화가 나면 '사랑'을 이렇게 고상하게 부르곤 했다)"이라고 중얼거린 뒤, 엉뚱한 하늘에다 대고 "엿 먹어라"고 손짓으로 욕을 해대기는 했으나, 실제로 범죄나 사건 현장에 가면 거짓말처럼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그 선배는 나의 선배고, 나는 후배의 선배다. 그러고 보니 나도 선배다. 사람들은 그 후배의 선배를 '김성깔'로 불렀던 것 같다.
리우에 도착한 날부터 나는 코엘료를 찾아 나섰다. 물론, 하루 온 종일 코엘료를 찾아나선 것은 아니었다. 막상 리우에 와 보니, 코엘료 말고도 볼거리, 먹을거리, 들을거리가 천지였다. 재미거리가 떨어지면, 틈틈이 코엘료를 찾았다고 하는 말이 적합하다. 물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서울 가서 김서방 찾는 꼴이었으니.
첫날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나는 구름 위를 떠다니듯 멍한 상태였다. 귀신에 홀린 듯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유체이탈현상까지 느꼈다. 코파카바나 해변은 사람을 넋을 잃게 만들었다. 넘치는 열정을 어찌할 줄 몰라 바닷가로 달려가 담금질을 해대는 전 세계의 여행자들의 모습과 늘씬하게 빠진 여자들이 마치 손짓으로 나를 오라고 유혹하는 듯한 착각에 빠져 정신이 혼란했다.
다음날은 코파카바나 옆에 있는 이파네마 해변에서, <이파네마의 처녀>라는 보사노바에 빠져 하루를 다 보냈다. <이파네마의 처녀>는 너무나 유명한 노래이기도 했지만, 나도 그런 사랑에 빠지고 싶다는 망상까지 겹쳐지다 보니 하루해가 지는 줄도 몰랐다.
맥주에 얼큰하게 취한 상태에서 망상까지 겹치면, 시간이 마치 크루즈 미사일처럼 휙 하고 지나가는 찰나의 속도로 흘러가 버린다. 오래전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도 요양원에 있던 레이코가 기타연주로 <이파네마의 처녀>를 부른 기억이 떠오르다 보니, 현실과 환상 사이를 왔다갔다 했다.
이제는 코엘료를 만나지 못하고 떠나야 하나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리우에 머무는 시간은 단지 3일밖에 없었다. 리우에서 남미의 최남단인 아르헨티나 우슈아이아로 비행기로 날아가서, 버스를 타고 멕시코까지 올라가는 진짜 중남미 종단여행의 험난한 여정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리우를 떠나야 하는 마지막 날이다. 나는 리우에 오면, 여행자들이 필수여정으로 보고 가는 거대한 예수상과 월드컵 축구경기장, 리우 카니발 삼바 퍼레이드가 펼쳐지는 삼바드로모, 빵처럼 생겼다고 하여 빵산이라 불리는 팡데 아수카르산 등을 둘러봤다. 여행자들을 위한 리우 시내 투어여행이, 나를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살다보면 그렇지만, 행운은 엉뚱한데서 오는 법이다. 시내 투어여행이 끝나갈 무렵, 나는 가이드에게 "혹시 코엘료를 아느냐"고 물었다. 50대 중반의 여자 가이드는 별 싱거운 질문을 다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질문은 한국 사람보고 세종대왕 아느냐고 묻는 것과 같은, 상대방을 놀리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인지, 그 의도를 헷갈리게 하기에 충분한 수준이하의 질문이었던 셈이다.
여자 가이드는 코엘료의 주소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나는 종이를 꺼내 코엘료의 아파트 주소를 적어달라고 부탁했다. "호텔 골든 튤립 리젠테 옆, 노란 빌딩 아파트(Hotel Golden Tulip Regente, Yellow Building Apartment)." 그녀가 적어준 코엘료의 리우 아파트 주소였다. 그녀가 적어 준 주소대로 찾아가니, 코엘료의 집이 나타났다. 코파카바나 해변이 바라다 보이는 큰 길 바로 옆에 있었다. 노란 아파트 최고층인 9층에 그의 집이 있었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9층 베란다에는 화분에 담긴 커다란 나무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목을 쑥 빼고 있는 나무를 보니, 코엘료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코엘료는 프랑스 남부지방에 머물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래도 나를 반갑게 맞이 해준 것은 아파트의 강아지와 키가 작은 50대 초반의 아파트 경비원이었다.
산티아고, 마리아, 베로니카는 코파카바나 해변이 만들어낸 자아내가 문이 잠겨 있는 아파트 입구로 다가가자,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갑게 맞이 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유혹적인지, 리우 카니발에서 전 세계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엉덩이를 흔들어 대는 무희들의 삼바 춤이 떠올랐다. 강아지의 따뜻한 환영을 받은 나는, 뜻하지 않은 경비원의 친절까지 받으니 마치 코엘료의 따뜻한 인품이 느껴지는 듯했다.
"내가 없는 동안, 아시아에서 여행자들이 찾아오면 친절하게 대해줘." 코엘료가 그런 부탁을 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악담은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하지만, 친절은 과잉해석해도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니까.
경비원은 어디서 왔느냐, 코엘료의 어떤 책을 읽었느냐고 묻더니, 내가 줄줄이 코엘료의 책을 읊으니, 나를 다시 쳐다보는 것 같았다. 배낭 하나만을 달랑 둘러메고 땀을 뻘뻘 흘리며 찾아온 아시아인에게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코엘료는 주로 프랑스에 살다가, 가끔 리우에 오면 이 아파트에 머문다고 경비원이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내가 알고 있던 내용과 다르지 않았다.

▲ 파울로 코엘료 소설 <11분>을 읽고 있는 해변의 여성
파울로 코엘료 홈페이지
나는 코엘료가 사는 아파트를 카메라에 담았다. 아마도 한국 사람으로는 최초로 코엘료의 아파트를 찍는다고 생각하니, 카메라를 누르는 나의 손이 조금은 무겁게 느껴졌다. 그런데 왜 사진을 기사에 올리지 않느냐고 궁금해 할지도 모르겠다. 나라고 자랑하고 싶지 않겠는가.
여행을 마치고 귀국해 보니, 브라질에서 아르헨티나, 칠레, 볼리비아, 페루까지 찍은 사진을 담은 USB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남미 여행의 절반을 담은 사진을 모두 잃어 버린 것이다. 애초 나의 계획대로 남미 여행은 철저히 마음으로만 남게 되었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되고 말았으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누군가 리우에 갈 때, 이 주소로 찾아가 코엘료 아파트 사진을 찍는다면 '사상 최초'의 타이틀은 누가 갖는 것일까.
한참 코엘료의 아파트 베란다를 쳐다보니,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대머리가 약간 까진 노인이 나오고 있었다. 얼굴 모습은 영락없는 코엘료인데, 자세히 보니 해변에서 밀려온 하얀 구름이 베란다에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환영이었다. 잠시나마 나는 코엘료의 환영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코엘료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아, 그와의 대화가 끝났을 때는 뭐라고 말했는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저 아파트에서 코파카바나 해변을 넘어 끝없이 펼쳐진, 아프리카와 유럽 대륙으로 뻗어가는 대서양을 바라보며 코엘료가 상상했을 소설 속 이야기가 들려왔다.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바람의 자유가 부러웠던" 산티아고는 '자신의 보물'을 찾아 이집트 피라미드에 갔다 이제 막 코파카바나 해변으로 되돌아왔다.
빈손으로 돌아온 산티아고는 왜 그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을까. 자신의 보물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안의 '자아의 신화'였으며, 연금술은 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 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스페인의 '산티아고의 길'을 순례하면서 깨달음을 얻었던 코엘료는, <순례자>에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나아가고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코엘료는 산티아고의 길을 걸으면서, 산티아고는 아프리카 사막을 여행하면서, 그럼 나는 중남미 여행을 통해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코엘료의 집 앞에서 건너편 코파카바나 해변을 바라보았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연금술사>의 산티아고처럼 아프리카로 보물을 찾으러 가야할까, <11분>의 마리아처럼 리우로 휴가 여행을 왔다 만난 외국 남자를 따라 돈을 벌러 스위스로 갈까,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의 베로니카처럼 죽음을 찾아 정신병원으로 갈까.
산티아고나 마리아, 베로니카는, 어둠이 몰려오면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별들과 어우러져 알콩달콩 사랑을 하는 코파카바나 해변이 만들어낸 자아였다. 이곳 리우에서 태어난 코엘료가 어릴 적 정신병원을 오가며, 영혼을 찾아 여행을 떠나고, 군사독재 정권에 저항하다 투옥되어 고문을 당하고, 영혼과 육체가 만신창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변함없이 그를 따뜻하게 맞이해주던 친구가 있었다. 그것은 코파카바나 해변이었다.
뒤를 돌아보자, 코엘료의 아파트 베란다를 하얀 구름이 휘감고 있었다. 마치 백발의 코엘료가 서 있는 듯한 환영이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 육체의 코엘료는 프랑스 남부 지방에 있었지만, 영혼으로서의 '언어의 연금술사' 코엘료가 아파트 베란다에 우뚝 솟아 있었다. 리우를 방문하는 많은 여행자들은 코르코바두 산 정상에 솟아 있는 거대한 예수상을 찾지만, 나에게는 코엘료가 더 높이 더 웅장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리우를 떠날 수 있었다. 또 다른 '언어의 연금술사'들을 찾아서. 칠레의 파블로 네루다와 콜롬비아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오랫동안 보고 싶었던 얼굴들이다.
덧붙이는 글 | 지난 2월부터 5월까지 90여일에 걸쳐 중남미의 혁명가, 여성운동가, 문학가, 예술가, 그리고 소설무대와 생태마을 등을 둘러봤다. 모처럼 환상과 현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드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여행, 중남미 문학의 상징인 마술적 리얼리즘 같은 여행이었다. 글 쓰는 형식이 뭐 그리 대수랴, 내가 배낭 하나 달랑 메고 홀로 90여일에 걸쳐 중남미를 여행했다는 것, 그것만은 허구가 아니라 안데스 산맥이 알고 있듯 사실인데.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김성호의 <세상을 바라보는 창!>
둥근 창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둥글고,
각진 창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모질다.
세상을 보는 창,즉 시각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