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죽은 자를 만날 수 있다면, 누구를 찾겠습니까

츠지무라 미즈키의 <츠나구>

등록 2011.07.24 15:38수정 2011.07.24 15:38
0
원고료로 응원

만약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어떨까? 비현실적인 질문이다.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다를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출간된 <츠나구>를 읽다보면 조금씩 그 의미가 떠오른다.

 

<츠나구>는 비현실적인 질문에서 태어난 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시켜주는 존재의 이름은 츠나구. '사자'다. 츠나구가 왜 그런 일을 해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츠나구도 그 이유를 모른 채 사자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츠나구에게 그런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죽은 자를 만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규칙을 알려주는 것이다.

 

a

<츠나구> 표지 ⓒ 문학사상사

<츠나구> 표지 ⓒ 문학사상사

규칙은 간단하다. 산 자가 죽은 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평생 동안 단 한 번이다. 이건 죽은 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죽은 자는 만나자는 청을 거절할 수 있다. 산 자나 죽은 자 모두 신중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만나기로 결심했다면, 그들에게는 하룻밤의 시간이 주어진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이상은 안 된다.

 

간단한 규칙 같지만 이로 인해 만들어지는 이야기 실타래가 꽤 복잡하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어렵게 츠나구를 만나 죽은 누군가를 불렀는데, 그가 거절한다면 어떨까? 그럴 바에는 처음부터 연락하지 않는 것이 낫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죽은 자는 누군가 자신을 찾아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연락이 오지 않는다면? 무엇보다도 살면서 단 한 번의 기회가 있다는 것이 사연을 복잡하게 만든다. 단 한 번 만날 수 있다면, 누구를 만날까? 어렵다. 기회가 있더라도 말이다.

 

그럼에도 소설 속에서 츠나구를 찾는 네 명의 사람들은 단호하게 그들의 이름을 부른다. 누군가는 돌연사한 아이돌의 이름을 부르고, 누군가는 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고, 누군가는 갑작스럽게 사고를 당한 친구의 이름을 부른다. 그들은 죽은 자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슬픈 감정을 못 이겨 '보고 싶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만약 그랬다면 <츠나구>는 대단히 심심한 또는 유감스러운 소설로 기억됐을 것이다. 반갑게도 소설은 이 기묘한 재회의 순간들에서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독자적인 개성을 지녀 저마다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아이돌 외에는 살아가는 이유가 없었던 외톨이 여성의 이야기는 가슴 벅찬 어떤 것을, 장남으로 살아가는 남자의 이야기는 가슴을 파고드는 애틋함을 지니고 있다.

 

죽은 친구를 찾는 여고생의 이야기는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친구가 당한 사고는, 아무도 몰랐던 그녀의 질투심이 큰 몫을 했다. 여고생이 친구를 찾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녀는 교활하다. 사고의 진실이 알려질까 두려워서, 죽은 자의 기회를 빼앗으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여고생은 행복했을까? 소설의 여운이 애달프면서도 서늘하고 오싹하면서도 격정적이다.

 

실종된 약혼자를 찾으려는 남자 이야기는 애절하다. 남자는 약혼자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른다. 기다림은 몇 년에 걸쳐 이어졌다. 남자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츠나구에게 그녀의 이름을 말한다. 츠나구로부터 약혼자는 죽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츠나구가 만나게 해주겠다고 대답한다. 그 순간,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할까? 죽은 약혼자를 만나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에피소드는 짧지만, 여운은 강렬한 애절함을 남긴다.

 

소설의 어느 순간, 작가의 의도가 느껴진다. 만약 죽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어떨까? 그런 일이 있다면 누구를 만날까? '현재'의 시간들이 소설의 감동만큼이나 강렬하게 느껴진다. 굳이 츠나구를 찾아내 겨우 하룻밤 만날 필요가 무엇이랴. 지금, 만날 수 있는데 말이다. 작가의 의도도 그것이 아니었을까. 소설이 재밌는데 활자들이 만들어내는 의미는 가슴을 벅차게 만든다. 여러 모로 주목할 만한 소설이다.

츠나구 - 죽은 자와 산 자의 고리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김선영 옮김,
문학사상사, 2011


#문학상 수상작 #츠지무라 미즈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