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8년 왜관 캠프 캐럴에서 고엽제를 매립했다고 폭로한 전 주한미군 스티브 하우스가 당시 고엽제를 매립했던 캠프 캐럴 현장을 찍은 사진. 유성호
▲ 1978년 왜관 캠프 캐럴에서 고엽제를 매립했다고 폭로한 전 주한미군 스티브 하우스가 당시 고엽제를 매립했던 캠프 캐럴 현장을 찍은 사진.
| ⓒ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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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8년 왜관 캠프 캐럴에서 고엽제를 매립했다고 폭로한 전 주한미군 스티브 하우스가 당시 캠프 캐럴 현장에 고엽제를 매립하며 사용했던 중장비를 찍은 사진. 유성호
▲ 1978년 왜관 캠프 캐럴에서 고엽제를 매립했다고 폭로한 전 주한미군 스티브 하우스가 당시 캠프 캐럴 현장에 고엽제를 매립하며 사용했던 중장비를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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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한국에 온 목적은?
"한국인들이 고엽제 문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같이 근무했던 미군, 카투사들도 만나고 싶다."
- 그 분들과 연락이 됐나.
"이번 방문이 언론을 통해서 알려지면 그 분들이 알고 연락하지 않을까 한다."
- 방문 목적 중에 '사과'하는 것도 포함돼 있던데.
"당시엔 위에서 명령한 대로 한 것이긴 하지만, 고엽제 살포 작업에 참여했다는 것을 사과하고 싶었다."
- 고엽제 매립 사실을 폭로한 이후 신상에 변화가 있었나?
"고엽제 문제가 오랫동안 짐처럼 느껴졌는데, 미디어에 밝히고 난뒤 짐을 내려놓는 기분이 들었다. 명령에 따라 했다는 점을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이슈에 대해 알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동안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 지역방송에 처음 폭로했는데, 그 전에 사실을 알리기 위한 다른 노력을 했었나.
"5년 반 전에 미 국가보훈처에 건강상태를 신고하면서 고엽제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얘기했는데, 근거서류를 더 제출하라는 얘기만 들었다."
- 폭로한 이후 후회한 적은 없는가?
"후회한 적은 없다.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 생각한다."
- 그 동안 미국 정부로부터 언론 접촉을 자제하라든지, 한국에 오는 과정에서 압력 같은 것을 받은 적이 있는가?
"없다. 오지 말라, 가지 말라는 적은 없었고, 다만 여권 받기 위해서 서류 작업이 많았다."
- 작업 명령은 누구로부터 받았나.
"중대장인 스티븐 맷시 대위다."
- 고엽제를 매립할 때 작업의 위험성에 대해서 들은 적 있나?
"구덩이를 파는 것만 이야기를 했고, 그 물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다."
- 드럼통에 '베트남', '에이전트 오렌지'라고 나와 있었다는데 위험성을 전혀 몰랐나?
"알지 못했고, 운전병인 트래비스씨가 '에이전트 오렌지'라고 쓰여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줬다."
- 한국 민간인이나 카투사는 작업에 참여하지 않았나?
"그렇다."
- 한국 민간인이나 카투사를 일부러 배제한 것 아닌가.
"일부러 배제시킨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들은 부대 내에서 다른 일을 했다."
- 언제부터 몸이 안 좋아졌고, 그것이 고엽제 영향이라고 생각하게 된 시기는?
"돌아가고 나서 제대 직후부터 몸이 안 좋아졌다. 각종 감염이나 병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후 고엽제에 관해서 여러 가지 정보가 나와서, 내 병이 고엽제 때문에 그렇구나 생각을 하게 되었다."
- 전역뒤 무슨 일을 했나?
"병원 냉난방 시설 관리하는 일을 했다. 병 때문에 일을 하는데 지장이 있었다."
- 오는 27일 캠프 캐럴을 방문할 예정인데, 만약 현장에 접근할 수 있다면 고엽제 묻은 장소를 지목할 수 있을까?
"귀국한 뒤 첫 방문이고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필 스튜어드] "한국인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싶어 왔다"

▲ 1968년에서 1969년 사이 임진강 등에 고엽제를 무단 방류했다며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방한한 전 주한미군 필 스튜어트. 유성호
▲ 1968년에서 1969년 사이 임진강 등에 고엽제를 무단 방류했다며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방한한 전 주한미군 필 스튜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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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방한의 목적은 무엇인가.
"한국인들에게 진실을 알리기 위한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미 국방부와 미 육군은 지난 40여 년 동안 한국인들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근무했던 미군들에게도 (고엽제에 관한)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42년 전 나와 내 부하들은 DMZ뿐 아니라 그 훨씬 남쪽지역에까지도 에이전트 오렌지와 다른 고엽제들을 살포했다. 지금까지 미국 정부는 DMZ 지역에만 고엽제를 살포했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 구체적으로 DMZ 지역 이외에 고엽제를 살포했던 지역이 어디인가?
"내가 근무했던 파주 지역의 '캠프 피터슨'(광탄면 신사리)과 '캠프 이든앨런'(파평면 마산리)을 비롯해 미군기지 주변, 미군 기지로 통하는 도로 등 곳곳에 뿌렸다. 또 고엽제를 살포하는데 쓰였던 장비 등을 그냥 주변 하천에서 씻었고, 남은 고엽제들도 그냥 강물에 버렸다."
- 한국에 근무하던 당시에는 고엽제의 위험성에 대해서 알지 못했나?
"당시 미 육군은 고엽제가 절대 위험한 물질이 아니라고 말했다. 고엽제로 목욕을 할 수도 있고, 양치질을 하거나 심지어는 마셔도 안전하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67년 초반에 이미 미국 정부는 고엽제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것, 기형아를 출산하거나 건강에 심각한 이상을 초래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유해한지, 어떤 일이 우리들에게 발생할지 전혀 알지 못했다."
- 고엽제 살포 작업에 동원된 병력들에 대해서 설명해 달라.
"내가 속해 있던 미 2사단에서는 공병대대가 주로 고엽제 살포를 담당했다. 나는 E 중대 소속이었는데, 내 휘하의 소대원들 외에도 10여 명의 카투사 병사들이 있었다. 또 15명 정도의 한국인 노무자들이 있었다. 이들이 작업에 직접 참여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람들이 고엽제에 노출되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고엽제 섞인 난방유 연소 스모그 온 마을 뒤덮어"
- 고엽제에 노출되었다고 단정하는 근거는?
"비가 오면 캠프에서 고엽제가 하천으로 흘러들어가서, 지역 주민들이 그 하천에서 목욕도 하고 빨래도 했기 때문에 분명히 고엽제에 노출이 되었을 것이다. 겨울 동안 기지에서는 디젤유를 난방유로 사용했다. 그런데 이 디젤유는 에이전트 오렌지를 담았던 빈 드럼통에 보관되어 있었다. 디젤유가 연소될 때는 흑갈색의 스모그가 부대뿐 아니라 온 마을을 뒤덮었다. 미군들뿐 아니라 한국 주민들도 숨을 쉬면서 고엽제의 유독 물질을 흡입해야 했다. 겨울이면 매일 같이 이런 풍경이 벌어졌다."
- 현재 고엽제 후유증으로 여러 가지 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나타난 증상들이 고엽제 때문에 발생했다는 사실은 언제 알게 되었나.
"지난 2005년이 되어서야 알았다. 그때까지 미 국방부와 육군은 한국에서는 절대 고엽제가 사용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과 달랐다. 이때부터 한국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전역 미군들의 증언과 잡지 기사 등에서 읽었던 내용들이 내 몸에 나타났던 증세와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현재 당뇨와 심장병, 말초 동맥질환, 신경계 이상, 백내장과 피부암 등을 앓고 있다. 미 보훈처는 내가 앓고 있는 증상이 100% 고엽제 후유증이라고 인정했다."
"미 정부는 한국군과 민간인에게도 빚을 지고 있다"
- 한국에서 같이 복무했던 동료들의 고엽제 피해 규명에 힘쓰고 있는 것으로 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당시 내 지휘 아래 있던 병사들에게 '명령에 따라 성실히 임무를 수행하면 끝까지 책임을 지겠다'고 했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정부를 상대로 고엽제 관련 질환임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피해사실이 입증되지 않는다고 퇴짜를 놓기가 일쑤다. 만약 미 국방부와 보훈처, 육군이 관련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경우 엄청난 금액을 보상해야하기 때문에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증언을 확보한 300여 명의 전역 미군들은 지난 60~70년대 한국에서 근무하면서 고엽제에 노출되었던 사람들이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고엽제에 노출되어 질환을 앓고 있다면, 얼마나 많은 한국 민간인들이 고엽제 때문에 관련 질환을 앓았겠는가? 미 국방부와 육군은 고엽제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서 저장되었는지, 또 한국에 얼마만큼이나 들여왔는지 분명히 진실을 밝혀야 한다. 미군들뿐만 아니라 한국 군인들과 한국 민간인들에게도 미국 정부는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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