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학교에는 괴물이 있다!

기시 유스케의 <악의 교전>

등록 2011.08.07 09:41수정 2011.08.0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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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매년 서점대상을 뽑는다. 서점 직원들이 가장 팔고 싶은 책을 선정하는 것인데 1위에 오른 작품은 여러 모로 주목을 많이 받는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 <고백>, <골든 슬럼버> 등이 1위를 수상했는데 하나의 공식처럼 베스트셀러가 됐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1위 작품이 번역되기를 기다린다. 독자들이야 서점 직원들이 추천하는 책을 볼 수 있으니 좋고 서점은 믿음직한 베스트셀러가 나오는 것이니 그런 것일 게다.

2011년은 어떨까. 작년과 사뭇 다른 분위기가 있었다. 1위 작품을 기다린 마음이야 여전하더라도 그에 못지않게 7위에 오른 기시 유스케의 <악의 교전>을 기다리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특히, 추리소설 독자들 사이에서는 7위 작품이 1위를 압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째서일까. 기시 유스케의 이름 때문일까. 아니면 추리소설에 관한 거의 모든 문학상을 석권한 작품이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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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교전 1> 표지 ⓒ 느낌이있는책


국내에서 영화로 만들어진 <검은 집>의 원작자 기시 유스케는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날카롭게 파헤칠 줄 아는 몇 안 되는 소설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소설은 섬뜩하며 악랄하고 또한 치밀하다. SF소설에 관해서도 완성도 있는 작품을 쓸 줄 안다. 상상력이 뛰어난 것은 물론 소설의 스펙트럼이 다양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그런 작가가 새롭게 쓴 <악의 교전>의 배경은, 제목의 뉘앙스와 어울리지 않게 '학교'다.

마치다 고등학교에는 하스미 세이지라는 영어선생이 있다. 그는 여학생 친위부대가 있을 정도로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 단순히 잘 생기거나 젊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무슨 일이든 앞장서서 처리하려 하고 가능한 학생들의 입장을 헤아려 행동하려 한다. 유학을 가서 MBA를 취득했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것도 학생들에게 인정받는 이유 중 하나다. 학생뿐만 아니라 동료 교사들이나 학부형들에게도 신뢰가 두텁다. 학교에 무슨 일이 생겼다하면, 다들 하스미 세이지라는 이름부터 떠올릴 정도다.

하스미 세이지는 몇 가지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왕따 문제나 폭력 사건, 교사의 성추행 등이다. 학교는 병들었고 선생은 그것을 자신의 손으로 해결하려 한다. 이것을 해결한다면 그는 학교에서 영웅이 될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남자는 그런 영웅심리에는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겸손하거나 겸허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에게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무언가가 있다.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지 못한다고 할까. 그래서 그의 행동은 이상하고 또한 악마적이다. 스포츠를 즐기듯, 사람을 죽이기 때문이다.

학부모가 귀찮게 하면 늦은 시간에 방문해서 죽인다. 학생이 문제를 일으키면 추방해버린다. 더 심하면 죽인다. 동료 교사가 뭔가를 지적하면 그 또한 죽인다. 사이코패스다. 아무런 죄책감도, 거리낌도 없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그래서 하스미 세이지의 주변에서는 사람이 계속 죽어나간다. 마치다 고등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이 가장 믿는 선생이, 하나의 괴물인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누군가 죽고. 누군가 실종된다. <악의 교전>은 그것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폭주의 순간들도, 마치 카메라로 찍어낸 것처럼 생생하게 담아낸 것이다.

인간은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가? <악의 교전>은 그 질문을 던지기 위해 등장한 소설처럼, 거침없다. 단 한 번의 망설임 없이 행동하는 사이코패스의 모습은 소름이 끼친다. 게다가 그는 살인을 저지르되, 치밀하다. 절대 단서를 남기지 않는다. 의심받을 모든 가능성을 차단한다. 하기야 누가 정의로운 선생을 의심할 것인가. 학교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상황임에도 다들 불운한 일이 연속으로 생겼다고 생각한다. 사이코패스가 오히려 그들을 위로하며 안심시킨다. 진실은 언제 알려질 것인가? 알려질 가능성이 있기는 한 것인가?


캐릭터의 강렬함이 워낙 돋보이지만 그보다 눈에 띄는 것은 이 소설의 완성도를 구축하는 정밀한 구성이다. 심리묘사가 탁월한 것도 특징이다. 그것들 덕분에 사이코패스는 미치광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악마로 느껴진다. 소설을 읽을수록 악의 구렁텅이로 빨려가는 느낌이랄까.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한여름에 책이 출간됐으니 추리소설 독자들로서는 더 반가울 것 같다. 한여름의 무더위를 훔쳐갈 반가운 손님으로 손색이 없겠다.

악의 교전 1

기시 유스케 지음, 한성례 옮김,
느낌이있는책, 2011


#기시 유스케 #사이코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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