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 칼라파테의 모레노 빙하
엘리아나 세로니(이탈리아 여행자)
인간에 의한 상처로 말문을 닫아버린 초원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나는 가끔은 초원과, 그리고 어떤 때는 바람과, 그리고 어떤 때는 멍하니 사색하는 듯한 표정의 과나코와 대화를 나누곤 했다. 내 옆자리에 아무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리따운 30대의 아르헨티나 아가씨가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영어를 모르고, 나는 스페인어를 모르니 우리 둘 사이에 눈으로 하는 대화에도 한계가 있고 정도가 있는 법.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데, 아직도 바벨탑이 남녀를 갈라놓고 있었다. 바벨탑이 무너진 뒤, 사랑에 많은 장애가 생겼다. 사랑이 깨어지는 것은 대부분 소통의 문제이니까.
이럴 때 정말 스페인어를 잘 하는 산티아고가 괘심하기 짝이 없었다. <연금술사>의 산티아고가 브라질 리우에서 사랑에 빠져 나를 버리는 바람에, 아르헨티나부터 멕시코까지 이르는 중남미 종단 여행은 꽤나 외로운 길이 되었다. 고독을 씹는 토레스 델 파이네 같은 트레킹 코스에는 홀로 여행이 제격이지만, 파타고니아 같은 먼 길을 버스로 이동할 때는 가끔 외로움을 달래줄 말동무가 필요하기도 하다.
나는 외로움을 덜기 위해 말동무를 찾아내야 했다. 내 머릿속에 오래 전 저장된 책과 영화의 잔상들을 억지로 끄집어내어, 말동무이자 문화해설사 역할을 하도록 했다. 오랜 된 기억도 잘만 쓰면, 여행에서 괜찮은 말동무가 된다. 이번에 가는 여행길은 소설과 영화의 무대가 된 장소들이지 않은가. 파타고니아는 그 첫 무대다.
파타고니아는 때에 따라 얼굴을 달리하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으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너울너울 춤을 추는 한 낮이 되자, 파타고니아의 초원도 바람도 과나코도 무엇인가 말을 하고 있었다. 초원과 바람과 과나코가 하는 말은 나에게 다가오다, 갑자기 아지랑이에 실려 파도처럼 넘실거리며 멀리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를 끝내 알 수 없었다. 설령 그 말이 나에게 전달되었더라도, 이미 세속에 물든 인간의 언어로 해독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순수한 자연의 언어로 말을 했을 테니까.
인간은 자신의 음파나 음역대를 뛰어넘는 모든 소리는, 개소리로 치부하며 말로 인정하지 않는 못된 버릇이 있다. 침팬지나 고릴라, 오랑우탄, 원숭이의 말도 동물의 짓는 소리라고 깔아뭉개고, 말로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과 침팬지의 DNA는 99%, 고릴라는 98%, 오랑우탄은 97%, 원숭이는 96%가 같다. 인간과 영장류는 사촌이고 친척이다. DNA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잘난척하는 나, 뻐기는 나, 벌거벗으면 모두 원숭이의 친척이다.
초원과 바람, 과나코는 내가 세파에 찌들대로 찌들어 자신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것임을 알았음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갑자기 달아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내가 그들을 고기로 잡아먹을 일도 없고, 칼을 들고 돈을 뺏을 일도 없지 않은가. 파타고니아 자연들은 얼마나 인간으로부터 모멸과 상처를 받았겠는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에이, 나라도 꼴 보기도 싫은 인간들 하고는 상종조차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 파타고니아 지역의 해질 무렵
엘리아나 세로니
파타고니아 밤하늘을 헤매고 있는 <야간비행>의 파비앵 구름이 밀려가고 짙은 땅거미가 몰려오자, 파타고니아는 전혀 딴 세상으로 변했다. 파타고니아는 구상의 세계가 아니라 추상의 세계로 바뀌었다. 현실주의가 아닌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주의 세상이었다. 짙은 어둠이 초원에 내려앉자, 수평선이 무너지며 하늘과 바다의 경계선이 사라지는 브라질 리우의 코파카바나 해변처럼, 파타고니아에서는 지평선이 사라지면서 하늘과 초원이 하나가 되었다.
버스가 블랙홀처럼 어둠속으로 빨려 들어가자, 지옥만큼이나 어두운 밤하늘에 희미한 별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별마저도 없었다면, 정말 기나긴 터널을 지나야 하는 어둠과 고독의 여행길이 되었을 것이다. 별들 사이로 길을 잃고 헤매는 점 같은 불빛이 보였다.
파비앵이 모는 비행기였다. "불쌍한 파비앵!" 나도 모르게 탄식이 터졌다. 파타고니아의 땅보다 몇 천배나 넓은 밤하늘에서 집으로 가는 길을 잃은 파비앵을 생각하니, 눈물이 날 정도로 가슴이 아파왔다. 길 잃은 인간만큼 고독한 존재란 이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파비앵이 누구더라. 나는 보르헤스의 시간 속의 길을 헤매다보니, 현실과 상상의 혼돈 속에 빠져 있었다. 공간 속의 길에서는 미친놈 소리를 들었겠지만, 시간 속의 길에서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뒤섞거나 앞뒤가 바뀌어도 하나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게 그분이 왔다거나, 내 머리가 돈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독자들은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보르헤스의 그물망처럼 얽힌 미로 같은 시간 속의 길을 좋아한다.
파비앵은 내가 어릴 적 읽었던 <야간비행>의 주인공 비행사였다. 실제로도 내가 지금 가는 길이 아니라, 어떤 다른 시간 속의 길을 가고 있다면, 정말로 나는 하늘을 헤매고 있는 파비앵, 아니 생텍쥐페리를 만나고 있을 지도 모른다.
파비앵은 "그 별들을 향해 일단 올라가기만 하면, 그곳에 영원히 갇혀서 별들을 입질하며 지내야 하는 그런 함정"에 빠져들었고, 결국 "밤의 어둠속에서 익사"하고 말았다. 생텍쥐페리가 직접 이곳 파타고니아 지방에서 우편비행기를 몬 경험을 바탕으로 <야간비행>을 썼으니, 얼마나 파타고니아의 낮과 밤을 잘 알았겠는가.

▲ 1840년대 남미 마젤란해협 지역에 살던 원주민 생활을 그린 그림
위키피디아
소설과 영화의 무대가 된 과거를 묻지 않는 땅폭풍우 속에서 파비앵의 비행기를 집어삼켰던 파타고니아의 밤도, 결국 새벽 앞에 무릎을 꿇었다. 더 이상 파비앵을 구할 뾰족한 방안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금세 버스 안에서 잠이 들었고, 버스운전사가 어떤 도시에 도착해 화장실에 갔다 올 시간을 주겠다며 승객들을 깨울 때는, 이미 햇살이 파타고니아의 대지를 달구고 있었다.
칼라파테에서 바릴로체로 가는 버스는, 리오 가예고스와 산타 크루스, 산 훌리안의 대서양 항구도시들을 거치고, 루타40 도로를 따라 올라가다 내륙의 히피도시인 엘 볼손을 지났다. 파타고니아의 밤이 폭풍우와 별들의 세상이라면, 낮의 도시는 북적북적 거리는 인간군상의 세계였다. 유럽의 백인 뿐 아니라 인도인, 중국인, 인디오, 그리고 흑인들도 각자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칼라파테에는 린다비스타라는 여행자 숙소를 운영하는 한국인도 있었다. 나는 방이 없어 린다비스타에 머물지 못했지만, 주인아저씨가 친절하게도 근처 현지인 숙소를 소개시켜주었다. 방을 주지 못해 미안해하며 라면을 끓여주겠다던 주인아주머니와, 마치 자신이 방을 얻지 못한 듯 안타까워하던 어린 딸, 어쩌면 가족 모두가 그렇게 친절한 지...감사는 사라지지 않고 마음속에 남아 있는 법. 나는 그 가족의 이름을 모르고, 그 가족도 나의 이름을 모른다.
파타고니아는 과거를 묻지 않는 땅이다. 파타고니아에서는 어디에서 왔는지 묻지 않는다. 무엇을 했는지도 묻지 않는다. 굳이 이름도 묻지 않는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자연과 더불어 열심히 살면 그만이고, 여행자는 잠시나마 친절과 우정을 나누면 된다.
파타고니아는 '과거를 묻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과거 있는' 수많은 인간들이 새로운 삶을 찾아 이곳으로 물밀듯이 몰려왔다. '과거 있는' 인간의 삶만큼이나 재미있는 이야기는 없으니, 이야깃거리를 찾아 눈에 불에 켜고 달려드는 작가들이 가만히 놔둘 리 없다. 파타고니아는 그래서 수많은 소설과 기행문 등 문학작품의 소재와 배경이 되었다.
영국작가 브루스 채트윈이 쓴 기행문 <파타고니아>의 서문에는 파타고니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셰익스피어가 <템페스트>의 영감을 얻은 땅,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거인의 모델을 제공한 땅, 찰스 다윈의 마음을 사로잡은 땅, 생텍쥐페리의 <야간 비행>의 무대가 된 땅, 코난 도일의 <잃어버린 세계>의 소재가 된 땅." <연애 소설 읽는 노인>으로 유명한 칠레작가 루이스 세풀베다는, 파타고니아를 여행하고 <파타고니아 특급열차>라는 기행소설을 썼다. 채트윈이나 세풀베다의 책들은 모두 파타고니아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진솔한 이야기다.

▲ 바릴로체의 아름다운 호수
엘리아나 세로니(이탈리아 여행자)
파타고니아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영화감독이라고 파타고니아를 그냥 놔둘 리가 없었다. 영화 <해피투게더>는 왜 마지막 장면에 빨간 등대가 있는 우슈아이아로 달려갔을까.
<거미여인의 키스>로 유명한 마누엘 푸익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어페어>에서 영감을 받은 왕자웨이(왕가위)는 단지 동성애라는 소재만 같고, 전혀 다른 영화 속 이야기를 풀어냈다. 마누엘 푸익이나 왕자웨이는 동성애를 소재로 했으나, 사회적 편견과 억압으로부터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 마누엘 푸익 자신이 동성애자라 하지 않던가. 그에게 파타고니아는...
영화 <고래와 창녀>의 여주인공 로라 역시 사랑과 자유를 찾아 파타고니아로 달려갔다. 행복을 찾아 무작정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하라르로 도피했던 랭보처럼. 그러나 랭보가 아프리카에서 행복을 찾지 못했듯, 불쌍한 로라도 파타고니아에서 결국 사랑을 찾지 못한다. 비행기에서 파타고니아의 푸르고 푸른 바다로 몸을 던지는 로라, 로라는 그 순간 사랑이 되어 탱고 춤을 추고, 자유가 되어 해방 춤을 춘다. 로라에게 파타고니아는...
나는 마침내 호수의 도시인 바릴로체에 도착했다. 아르헨티나와 칠레 국경을 번갈아 왔다갔다하며, 우슈아이아에서는 영화 <해피투게더>에 나오는 붉은 등대를 보았으며,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는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을 하고, 칼라파테에서는 모레노 빙하를 구경했다.
안데스 산맥을 배경으로 푸른 호수와 아름다운 산들을 품고 있는 바릴로체는 말 그대로 '남미의 스위스'였다. 스위스 제네바에 레만 호수가 있다면, 바릴로체에는 나우엘우아피 호수가 있었다. 바릴로체의 센트로 광장에 앉아, 나는 달콤한 초콜릿을 먹으며 푸른 호수를 바라보았다. 나에게 파타고니아는...
나는 허기를 채우기 위해 호숫가 식당으로 걸어갔다. 어디선가, 우리말이 들렸다. 아니, 이 깊은 안데스 산맥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살고 있다니.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40대 아주머니 2명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식당일을 한다고 했다.
파타고니아에는 아직도 전 세계에서 수많은 이민자들이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몰려들고 있었고, 여행자들은 마음속 환상을 좇아 헤매고 있었다. 파타고니아는 과학자나 탐험가 뿐 아니라, 정치적 망명자, 이민자, 엘도라도를 찾아온 한탕주의자, 방랑자, 죄수, 깡패, 창녀, 기둥서방, 동성애자, 영혼을 찾는 여행자 등 모든 인간의 피난처이자 보금자리다.
내가 파타고니아를 떠나려 하자, 파타고니아가 나에게 다가왔다. 내가 그동안 채우지 못했던 '파타고니아는...'이 채워졌다. 파타고니아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파타고니아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막다른 길에 다다른 인간들마저 따뜻하게 품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2월부터 5월까지 90여일에 걸쳐 중남미의 혁명가, 여성운동가, 문학가, 예술가, 그리고 소설무대와 생태마을 등을 둘러봤다.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 여행에서 만난 이탈리아 여행자 엘리아나 세로니로부터 사진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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