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상 수상작들이 말하는 청춘 위로법

장강명의 <표백>, 전석순의 <철수 사용 설명서>

등록 2011.08.15 22:41수정 2011.08.15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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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서점에 나온 문학상 수상작들 사이에서 '청춘'이라는 단어가 보인다. 예컨대,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장강명의 <표백>과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철수 사용 설명서>가 그것을 말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청춘의 자화상은 어떤가. 또렷하다. 흔히들 알고 있는 88세대의 그것이다.

 

<표백>의 청춘들은 절망한다. 스펙을 아무리 관리해도 취업이 안 되거나 기를 쓰고 노력해도 대기업에 들어갈 수 없어서 절망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절망케 하는 것은 본질적인 것이다. 바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소설 속 그들은 '표백세대'라고 말한다. 모든 틀이 다 짜여 있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대를 의미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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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백>표지 ⓒ 한겨레출판사

<표백>표지 ⓒ 한겨레출판사
그들은 농담처럼 이제는 혁명도 할 수 없고 전복도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386세대라고 불리는 이들은 독재정권을 향해 화염병을 던지며 민주화의 불씨를 살렸다. 하지만 표백세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기득권 세대가 내주는 아주 작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아등비등거리며 살고 있다. 88만원 세대라고 불리는 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들은 절망하고 있다.

 

<철수 사용 설명서>는 '철수'를 사용하는 설명서를 담은 소설이다. 철수는 누구인가. 초등학교 교과서에 걸핏하면 등장하는, 낯익은 한국 남자다. 소설에서 철수는 29살의 전형적인 대한민국 청년으로 대학을 졸업한 후 1년 가까이 놀고 있다. 딱히 못난 것이 있는 건 아니다. 그가 취업을 못하는 건, 추측하건데 평범하기 때문이다. 그는 오늘도 회사에 입사지원서를 내지만 면접보라는 말조차 듣지 못한다. 도대체 문제가 뭘까? 많은 청춘들이 하는 고민을, 지금 철수도 하고 있다. 그래서 철수도, 절망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표백>의 그들은 이 모든 것에 저항하기 위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다. 그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성공했을 때, 성공이라고 해봤자 기득권 세력이 내어준 자리를 간신히 차지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 순간에 자살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들은 누군가 만든 와이두유리브닷컴 사이트에 자살 선언을 올리고 24시간 후에 자살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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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 사용 설명서> 표지 ⓒ 민음사

<철수 사용 설명서> 표지 ⓒ 민음사
<철수 사용 설명서>는 철수를 사용하면서 생긴 많은 하자들을 이야기한다. 중간 중간 등장하는 사용 후기들까지 더하면 '사용 설명서'의 본분을 다하고 있는 셈이다. 그 사이에서 정작 이 소설의 주인공인 '철수'는 무슨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여전하다. 그는 여전히 평범한 남자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를 두고 사람들은 체념했다고 말하며 무기력하고 무능력하다고 평한다. 그러면서 사용 설명서를 업데이트시킨다. 물론, 안 좋은 내용이다.

 

역설적인 것은 그런 모습들에서 조금씩 철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인간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효능과 효율을 강조하며 인간을 가전제품처럼 취급하는 이 사회를 향해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말하려는 것이다. 목소리에 담긴 절박함 때문인가. 아니면 철수처럼 또 하나의 가전제품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각성을 하게끔 만들기 때문일까. 철수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 소설 속의 철수를, 그리고 우리 주변의 청춘들을 인간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물건을 다루듯 성능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인간으로 말이다.

 

<철수 사용 설명서>가 청춘을 향한 시선의 전환을 꿈꾸고 있다면 <표백>은 청춘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고 있다. 모든 것에 절망한, 표백세대인 청춘들은 그들의 말마따나 자살선언을 올리고 자살을 한다. 약속했던 이들이 하나 둘 자살하고 그것은 하나의 유행이 되어 이 사회를 뒤흔든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 대열에서 빠져나온다. 그들은 이 사회가 표백세대를 강요할지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을지라도, 그럼에도 뭔가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뭔지는 그들도 모른다. 보통 사람으로서 생활을 기반에 둔 일이라는 것만 안다. 자식을 훌륭하게 키우는 것이나 아내와 함께 미래를 설계하는 것처럼 소소해 보이는 일상의 어떤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종교를 만들 수도 있는 일이다. 누구나 그렇듯 미래는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소설 속 청춘은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와이두유리브닷컴에 대하여 '디스이즈더리즌닷컴'을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청춘을 그리는 <철수 사용 설명서>와 <표백>은, 섬뜩하다.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 88만원 시대의 처참한 하루를 그리는 모습은 공포소설이 아닐지라도 등골을 서늘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것들, 그리고 바라보는 지점이 있기에 그 서늘함은 어느 순간 훈훈함으로 바뀌어 가슴 속의 서러운 그것을 위로해준다. 이것이 문학의 힘일까. 아니, 어쩌면 진실함의 힘일지도 모르겠다. 청춘을 위한 진실함이, 가슴을 시리게 한다.

2011.08.15 22:41 ⓒ 2011 OhmyNews

표백 - 제1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한겨레출판, 2011


#한겨레문학상 #오늘의 작가상 #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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