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으로 글 막는 것은 한마디로 코미디"

'섹스'를 주제로 한 <남의 속도 모르면서>에 단편 담은 권정현 작가

등록 2011.08.17 18:01수정 2011.08.17 18:01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람들이 우리 가게에 욕구나 풀러 오는 곳으로 아는데 그건 정말 아니야. 뭐 화대를 챙겨? 우리는 시간에 대한 비용을 지불 받은 거야. 가정이나 직장에서 소외된 아저씨들, 아니면 계집애들 말야. 그 사람들 위로받고 싶은 거잖아. 우린 그들을 위로해 주는 일을 했고. XX, 그런데 성매매로 잡아 처넣어?"


a

권정현 작가 권정현 작가와 단편소설집 '남의 속도 모르면서 책 표지. ⓒ 신용철


젊은 작가 8인 8색의 섹스를 주제로 한 단편 모음집 <남의 속도 모르면서>(문학사상)에서 충북 청원 출신 권정현 작가(41)의 작품 '풀코스' 가운데 일부 대목이다. 기자가 특별히 권 작가의 단편에 눈이 간 것은 실제로 키스방을 직접 찾아가 취재를 하고 썼다는 신문기사 때문이었다.

"출판사에서 성에 대한 소설 청탁이 왔다. 취재를 해 봐야 좀 더 리얼하게 쓸 것 같아서 신림동 모텔촌에 갔다. 키스방 전단지가 있길래 전화로 물어 찾아갔더니 나처럼 찾아온 남자손님 2명이 기다리고 있더라. 창피했다. 여종업원에게 기본 비용에 얼마를 더 주고 이것 저것 물어봤다. 대학교를 휴학하고 등록금을 벌고 있다는 말에 굉장히 마음이 아팠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화류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 놓은 친구로 인해 어쩌다가 인형방, DVD방, 대딸방, 안마방 등 인간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퇴폐적인 '방'과 관련된 업소에서 일하게 된 주인공의 삶을 그린 단편소설 '풀코스'. 그는 이런 '방' 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는 여전히 성을 자유롭게 이야기하지 못 한다"

"성적인 것 자제하기가 배고픔 자제 하는 것 만큼 힘들다고 생각한다. 네덜란드 같은 제일 개방된 나라도 공창제도가 있다. 양면성이 있는 문제이기에 지혜롭게 풀어가야 한다. 그보다 먼저 등록금이 없어 이런 방들에서 일하는 학생들에게 법으로 그 일을 막는 것보다 오히려 반값등록금이 실현되어 그런 일을 하지 않게 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성에 대해서 건강하지도 자유롭지도 못하다. 성범죄, 낙태 등은 부끄럽게도 언제나 세계 1,2위를 다툰다. 일본의 양성화된 성문화를 비판하면서 음성화된 한국사회의 성문화는 곪을 대로 곪아 있다. 건전 문화 등을 내세우며 정부가 성매매 집결지를 하나 둘씩 없애는 것을 보고 한 대학교수는 "미관에 안 좋다고 쓰레기통을 없애면 방에 쓰레기가 넘쳐 날 것"이라고 정부의 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며 공창제도의 당위성을 강변하기도 했다.

문학 등 예술에서도 성에 대한 담론은 곧 금기어였던 시기가 있었다. 마광수 교수는 지난 1992년 <즐거운 사라>로, 장정일 작가는 1997년 <내게 거짓말을 해봐>로 음란물 제조 혐의로 법정 구속된 바 있다. 이에 대해 권 작가는 "법으로 글을 막는다는 것은 한마디로 코미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사회를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규율이 필요하지만 그럼에도 글의 표현을 강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강제로 구류를 살게 하는 것은 아니다. 절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표현의 자유라는 것에 대한 판단은 독자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작품을 발표하고 그에 대한 찬사와 비난은 독자에게만 받는 거다. 인간의 의식주 등 모든 생활은 법적 강제력이 아닌 사회적 판단에 맡기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고양예술고등학교에서 계약제 교사로 소설 창작을 가르치고 있는 권 작가는 학생들에게 이번에 성에 관한 소설 쓴 것이 부끄러워 얘기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장정일 작가 이야기와 똑같다. 성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 하고 싶은데 벽이 있다. 자기를 가르치는 선생이 여자 가슴 얘기하고 그러면 실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성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절대 부끄러워 그런 것이 아니고 제도상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권 작가는 앞으로 쓰고 싶은 작품에 대해 연륜이 되면 깊고 아픈 사연을 안고 있는 고향(청원군 옥산면 사정리)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동네에 토골이라는 곳이 있다. 동학군들이 관군에 쫓겨 옹기 굽는 사람들로 분장해서 여기 숨어 살았다. 그런데 관군들이 첩보를 입수하고 산을 둘러 싼 다음 동학군을 다 죽이고 불을 질러서 마을을 없앴다. 당시 토끼 몰듯이 몰았다 해서 토골이라고 했다고 한다. 직접 그곳에 가 봤는데 가슴이 아팠다."

인터뷰 말미에 '자랑 스런 청원군 작가'가 되고 싶다며 부끄럽게 웃는 그의 모습을 보며, 시종일관 선한 웃음과 말투로 인터뷰에 임하는 모습을 보며, '인간에 대한 따뜻한 관찰과 시선'으로 쓰여질 그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지역정론지 <충청리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지역정론지 <충청리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권정현 #남의 속도 모르면서 #단편소설 #섹스 #충청리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관심 분야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등 전방위적으로 관심이 있습니다만 문화와 종교면에 특히 관심이 많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