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새벽부터 밤까지 축구장에서 보낸 하루

인천 유나이티드의 부진 탈출, '축구의 날' 마침표를 찍다!

11.08.28 17:58최종업데이트11.08.28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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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 다음 날, 해트트릭 쇼를 펼친 이남정의 왼발 득점 순간! ⓒ 심재철


정말 피곤했었나보다. 오래간만에 늦잠을 잔 일요일, 눈을 뜨니 11시가 훌쩍 넘어버렸다. 다시 생각해도 행복하기만 했던 토요일의 피곤함이 조금 남아서 밀려온다.

주말이나 휴일이면 어김없이 축구에 미쳐 살아온 지도 어언 30년. 어쩌면 내 삶에서 이러한 일정이 너무도 당연할지는 몰라도 함께 살고 있는 가족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너무 심했던 토요일 하루 종일이었다. 이러다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1인 시위라도 하는 것 아닐까 모르겠다.

오랜만의 '조기 축구'

금요일 밤에도 예상보다 조금 늦게까지 일을 하고 피곤한 몸을 뉘였다. 다음 날(8월 27일)이 쉬는 토요일이었기 때문에 늘어지게 잠을 즐길 수도 있었지만 새벽밥을 지어야 했다. 아내는 8월 마지막 주 금요일이라 동료들과 회식을 하고 내게 차를 맡길 정도였으니 새벽밥은 당연히 내 차지였다. 다행히 전날 밤에 반찬은 조금 준비해 두었으니 밥만 지어도 되는 토요일 새벽, 내 기상 시간은 5시 20분이었다.

평일보다 쉬는 날에 훨씬 더 일찍 일어난 이유는 다름 아닌 '축구' 때문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번 토요일은 내게 세 차례의 축구 경기가 연거푸 벌어지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 내가 감독 겸 문지기로 뛰고 있는 아마추어 축구 클럽의 모임이 있고, 낮에는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축구 동아리 학생들의 축구대회가 이어진다. 그리고 저녁에는 문학경기장에서 열리는 '인천 유나이티드 FC - 대전 시티즌 FC'의 K-리그 23라운드 약속을 지켜야 하는 날이다.

다행스럽게도 세 경기가 어느 정도의 시간 차이를 두고 있어서 그나마 숨 돌릴 틈은 있었다. 어쩌면 이것도 내가 믿고 있는 '축구의 신'께서 조정해 준 것인지도 모른다. 역시 이 종교를 선택한 것은 탁월한 결정이었다.

우리 팀 '센티멘탈 유나이티드 FC' 멤버들이 경기 전 몸을 풀고 있다. ⓒ 심재철


새벽에 지은 밥, 김이 빠지기를 기다려 주걱으로 한 번 저어 놓고 운동 가방과 아이스박스를 챙겼다. 아침 7시부터 인천대공원 주차장 옆 인조잔디구장에 모이기로 한 우리 팀은 예상보다 부지런했다. 그리고 많이 모였다. 며칠 전까지는 한 팀이 겨우 꾸려질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젊은 동료들이 많이 모여주었다.

우리 팀 '센티멘탈 유나이티드 FC'의 전신은 사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축구 팀이다. 2004년 오마이뉴스 시민사회단체 축구대회 때부터 함께 모여 뛰면서 마음을 나눠 온 이들이 현재에는 일반적인 아마추어 축구 클럽으로 변신하여 활동하고 있다. 비록 최초 창단 멤버들 중에서 겨우 9명 정도밖에 남지 않았지만 우리들의 축구 인연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 날 우리의 상대 팀은 전원 30대 청년들로 구성된 팀이었다. 10대 후반부터 40대 후반까지 비교적 폭 넓은 연령대로 이루어진 우리 팀에 비해 결속력이 더욱 단단해 보인 그들이었기에 경기 초반에는 긴장했지만, 우리 팀 미드필더와 공격수들의 빠르고 정확한 패스 흐름이 만들어지면서 경기는 쉽게 풀려나갔다.

나중에 기록지를 살펴보니 우리 팀 역사상 가장 큰 점수차 승리를 기록한 날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침 8시부터 10시 사이에 두 시간 동안 25분 경기를 네 차례 진행한 결과 '18-1'로 끝났다. 쉬는 시간 빼고 약 100분 정도 뛰었으니 5분 6초마다 한 골씩 만들어냈다는 것은 계산기를 두드려보고서야 놀라운 사실임을 깨달았다.

선수 개개인의 기본적인 기술 차이를 떠나서 좋은 패스가 많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웠다. 이렇게 토요일 아침 첫 단추를 예상 밖으로 기분 좋게 끼운 뒤 나는 인하사대부고 운동장으로 향했다.

오랜만의 '긴장감'

오후부터 흐려질 것이라는 일기 예보와는 달리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토요일 한낮의 햇볕이 걱정이 될 정도로 더웠다. 그래서 아이스박스에 넣을 얼음을 더 채우고 인천광역시교육감기 스포츠클럽 축구대회(고등부)가 열리는 인하사대부고 운동장으로 올라갔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교의 축구동아리 '대인 FC'의 경기는 낮 2시 10분경부터 예정되어 있었지만 이번 대회에 참가한 나머지 17팀의 전반적인 경기력이 궁금해서 일찍 도착했다. 9시무렵부터 시작된 이 대회의 1라운드(18강 토너먼트)는 이미 한창 땀을 흘리고 있는 중이었다.

마침 대회 세 번째 경기 '진산고 - 인천고'의 경기 시작 휘슬이 길게 울렸다. 말끔한 흰 색 유니폼을 입은 인천고 축구동아리 학생들의 경기력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미드필더 둘의 경기 조율 능력이나 킥 실력이 남달랐고, 맨 앞에서 공격을 이끌고 있는 골잡이는 비교적 체구가 작았지만 등번호 10번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공간 이해 능력, 드리블, 슛' 등 거의 모든 능력이 출중했다.

상대 팀 진산고 학생들도 오른쪽 측면 역습을 날카롭게 전개할 줄 알았기 때문에 보는 이들이 한눈 팔 수 없는 경기가 되었다. 결과는 두 차례의 역전 드라마가 펼쳐진 끝에 인천고의 3-2 펠레 스코어 승리로 끝났다.

이후에 우리 학생들이 하나 둘씩 시내 버스를 타고 도착하기 시작했다. 김밥과 바나나 등으로 간단히 요기를 마친 우리 학생들은 예상대로 긴장하고 있었다. 아무리 학교 스포츠클럽의 순수 아마추어 축구대회라지만 그 중압감은 평소에 좀처럼 느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여름방학 때 진행된 어느 작은 축구대회에서 만났던 공항고 축구 클럽의 주장이 과거에 촉망받던 축구 선수 출신이라는 사실조차도 이 학생들에게는 쉽게 감당할 수 없는 실력차로 느껴졌나보다. 그래도 팀 플레이가 이루어져야 하는 축구 경기의 특성상 그에게만 집중된 축구 스타일이 결국 독으로 작용하고 말았다. 나름대로 강팀이라고 생각하던 그 팀이 무기력하게 패하는 것을 지켜 본 우리 학생들은 더욱 긴장했다.

개학 후 갑자기 바뀐 일정 때문에 제대로 준비할 시간조차 없었던 우리 학생 팀은 그야말로 급조된 선수들이었다. 약 2년간 호흡을 맞춰 온 멤버들은 단 네 명뿐이었고 나머지 구성원 15명은 정말 축구가 좋아서 뭉친 아이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회 장소에 가장 늦게 도착한 1학년 세 명의 이름을 외우고 있는 2, 3학년 학생들은 거의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더구나 3학년 학생들은 대회 바로 전날인 금요일까지 2학기 중간고사 일정이 이어졌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한 조직력 다지기 훈련에 단 한 번도 참가한 일이 없었다. 그나마 대진표가 나온 뒤 진행된 수요일, 목요일 두 차례의 연습이 1, 2학년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을 삼을 일이었다.

짜릿한 '역전승'의 기쁨

우리 학생들의 1라운드 상대는 가장 부담스러운 홈 팀이었다. 바로 대회가 열리는 장소인 인하사대부고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TV에서 많이 보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방문 경기 유니폼을 그대로 맞춰 입고 나왔다. 유니폼도 준비하지 못한 우리 학생들은 대회 운영본부에서 준비한 팀 조끼를 얻어 입고 뛸 수밖에 없었다.

출발은 예상대로 험난했다. 미드필드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4-2-3-1' 포메이션을 주문했지만 우리 학생들은 정신을 못 차리고 상대 공격수들을 너무 풀어줬다. 그러니 먼저 골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비교적 경험 많은 3학년 학생 둘에게 가운데 수비수 역할을 맡겼지만 표정만큼이나 몸이 굳어져 있었다.

겨우 전반전 20분, 후반전 20분 경기로 승부를 내야 하는 1라운드 토너먼트였기 때문에 더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 실점 후 곧바로 1학년 미드필더 김성호를 불렀다. 성호는 내가 담임하고 있는 1학년 9반 부반장이다. 며칠 전 선수 명단 최종 마감 시한을 코앞에 두고 급하게 결정되어 마지막으로 팀에 합류한 학생이다.

학교 체육 수업 시간에 함께 축구를 해 왔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성호의 플레이 스타일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순간, 바로 그가 필요했다. 흔들리는 중원을 안정시킬 수 있는 적임자였다. 그가 들어가고 미드필드 지역에서 실수가 줄어들었다. 덕분에 1학년 골잡이 이현재의 재치있는 동점골이 바로 나왔다. 긴 다리를 이용하여 상대 수비수들이 방심한 틈을 타 오른발 발리슛을 가볍게 성공시켰다.

축구도 흐름의 스포츠이기 때문에 이처럼 빠른 동점골은 이들에게 무엇보다도 소중한 청량제가 되었다. 그리고 전반전 종료 직전에 귀중한 역전 결승골이 터졌다. 주장 이호현이 영리하게 전개한 역습 과정에서 교체 선수 김성호의 결정적인 찔러주기가 동점골을 넣은 현재에게 배달되었다. 하지만 현재는 여기서 욕심을 내지 않고 오른쪽 측면에서 돌아들어오는 김영재에게 공을 양보했다. 연결 과정이나 마무리 동작이나 흠 잡을 데 없는 짜릿한 역전 결승골이 이렇게 만들어졌다.

전반전을 끝낸 우리 학생들은 그토록 굳었던 긴장감이 모두 풀어진 표정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벼랑 끝과 황홀한 구름 위를 넘나든 경험은 좀처럼 드물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도 흔들리고 있던 가운데 수비수와 오른쪽 측면 수비 문제를 추가 선수 교체로 해결한 우리 팀은 후반전 시작 후 2분만에 쐐기골을 터뜨렸다. 역시 이것도 빠르고 정확한 역습 과정이 일품이었다. 공격형 미드필더 임승민의 깔끔한 오른발 슛이 홈 팀의 골문을 꿰뚫었다.

이렇게 짜릿한 역전승의 기쁨을 누린 우리 학생들은 자신감을 되찾고 상기된 얼굴로 돌아갔다. 몇몇 학생들로부터 고맙다는 문자메시지를 받기도 했지만 정말로 실력을 다져서 덤벼들어야 할 일정(9월 3~4일, 8강 토너먼트)이 남았기에 마냥 즐거워할 수는 없었다. 정규 수업 이후 보충수업, 그리고 자율학습 일정을 피해 화요일부터 눈치껏 다시 시작해야 할 연습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래도 이 학생들의 열정은 내가 감당하며 더욱 뜨겁게 만들어줘야 할 것이기에 행복했다.

문학경기장의 '화룡점정', 인천 유나이티드 FC도 이겼다!

뜨거워진 얼굴과 몸을 차가운 물에 잠시 담갔다가 다시 짐을 꾸렸다. 이 날의 축구 일정 중 마지막을 장식하게 될 문학경기장으로 향했다. 앞서 벌어진 두 차례의 축구는 내 뜻대로 모두 이루어져서 더 말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현재까지 인천 유나이티드 FC가 지어온 여름 농사는 정말 볼품 없었기 때문에 가장 불안한 자리이기도 했다.

허정무 감독이 이끌고 있는 인천 유나이티드 FC는 이 경기 전까지 10경기 연속 무승(8무 2패)의 불편한 기록에 발목을 잡혀 왔다. 무승부와 패배의 숫자가 뒤바뀐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도 있겠지만 안방 경기 현장에서 늘 지켜본 팬 입장에서는 친구들에게 함께 축구장 가자고 이야기를 꺼내기 민망할 정도의 경기력이었다.

저녁 7시에 시작되는 이 경기를 위해 나는 6시에 지하철로 도착했다. 문학경기장에서 가까운 치킨 전문점에 주문해 놓은 것을 받아야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는 새벽부터 함께 축구를 즐긴 친구들 네 명도 있었다. 낮에 인하사대부고에도 학생들 격려 차 방문한 두 명의 직장 동료는 결국, 하루 종일 나와 함께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게 된 셈이었다.

모두 여덟 명의 일행이 경기장 중앙선이 곧바로 내려다보이는 문학경기장 동쪽(E석) 관중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곧 이종국 주심의 휘슬이 울리고 경기가 시작되었고 인천 선수들은 매우 공격적으로 방문 팀 대전 선수들을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인천 MF 정혁의 선취골에 동료들이 함께 기뻐하고 있다. ⓒ 심재철


그 뜻이 통한 듯, 경기 시작 7분만에 인천의 선취골이 터졌다. 오른쪽 측면에서 안태은이 왼발로 감아올린 공을 미드필더 정혁이 달려들며 이마로 골을 넣었다. 경기장에서 뛰고 있는 22명의 선수들 중 가장 작은 체구의 선수가 솟구쳐 올라 성공시킨 헤더였기에 더욱 놀랍고 인상적이었다.

최근 세 경기를 치르는 동안 단 한 골도 터뜨리지 못했던 인천이었기에 이 선취골의 의미는 남달랐다. 이 환희의 순간을 벤치에서 기다리던 코칭 스태프는 물론, 대기 선수들 모두가 달려와 정혁을 축하해주는 장면은 보기에도 좋았다.

전반전 30분에 대전 미드필더 노용훈이 두번째 노란 딱지를 받고 쫓겨나는 바람에 비교적 홀가분하게 경기를 풀어나간 인천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82분에 멋진 추가골을 터뜨리며 정말로 오래간만에 승리를 자축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2분전에 교체 선수로 들어간 미드필더 바이야였다. 선취골의 주인공 정혁의 왼발 중거리슛이 대전 골문으로 뻗어가는 순간을 기다리던 바이야는 문지기 최은성이 잡지 못하고 떨어뜨린 공을 달려들어가 가볍게 따돌리며 왼발 밀어넣기를 성공시켰다. 바이야가 바꿔 들어오는 순간에 느껴진 골과 승리의 기운이 고스란히 관중석까지 전해지는 전율을 느꼈다.

쐐기골을 넣은 인천 MF 바이야가 드리블하고 있다. 왼쪽 위는 동료 MF 이재권. ⓒ 심재철


최근 문학경기장 관중석에 동참시킨 내 친구 두 명은 지난 번 경기(8월 20일, 인천 0-0 강원)보다 훨씬 재미있다고 말하며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쉽지 않았던 발걸음을 이끌었던 내가 미안하지 않아도 되는 결과가 두 경기만에 나오게 되어 더욱 기뻤다.

이렇게 결코 짧지 않은 토요일이 저물었다. 아침 7시부터 밤 9시에 이르기까지 무려 14시간 동안 계속된 '축구의 날'이 이렇게 원하는 결과로 끝날 줄은 미처 몰랐다. 내게 또 이런 날이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선 달력에라도 진하게 표시해둬야겠다. 2011년 8월 27일 토요일, 결코 잊을 수 없는 '축구의 날'이다. 행복하다.

축구 스포츠클럽 동아리 인천 유나이티드 FC K-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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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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