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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으로 기억될 그 이름, '이숭용'

[프로야구] 넥센 이숭용, '한 팀에서 2천 경기 출장' 기록 남기고 은퇴

11.09.19 09:42최종업데이트13.10.2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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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인천 도원구장에서 호쾌한 스윙을 선보이는 젊은 유망주가 있었다. 프로야구 태평양 돌핀스의 신인 이숭용이었다. 그는 경험은 부족하지만 큰 덩치에 시원시원한 스윙으로 인천 야구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인천팬들이 그런 마음을 가졌던 것은 인천 야구가 투수력에 비해 타격이 허약했고 매년 입단하는 신인들 중에서도 타자 유망주는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 인천팬들에게 데뷔 2년차에 두 자리 수 홈런을 기록할 정도로 펀치력을 가진 이숭용은 매력적이었다.

거기에 이숭용은 매력적인 외모로 여성팬들의 인기도 독차지했다. 항상 가장 많은 여성팬들에게 사인 공세를 받는 그였다.

이숭용은 그렇게 팬들의 관심 속에 경력을 쌓아나갔다. 그러나 아쉽게도 매년 2%가 부족했다. 꾸준한 성적은 나왔지만 타율이 3할을 넘기면 홈런이 부족했고 홈런이 좀 나오면 타율이 떨어졌다. 무엇보다 큰 체구와 스윙에 걸맞지 않게 20홈런 고지에는 늘 도달하지 못하였다.

그래도 이숭용은 사랑 받는 타자였다. 인천 연고지 프로야구팀에 그 정도의 타자도 쉽게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태평양 돌핀스에서 현대 유니콘스로 팀이 바뀐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숭용을 사랑하던 팬들 중 많은 수는 2000년 현대 유니콘스의 연고지 이전으로 어쩔 수 없이 그를 떠나야 했다. 물론 그의 팬들 중 일부는 그와 함께 수원으로 옮긴 현대 유니콘스를 응원했지만 이는 정말 일부였다.

이숭용 역시 당시 연고지 이전을 반대했던 선수단의 일원이었지만 불가항력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떠나는 팬들을 보면서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그래도 이숭용은 팀에 남았다. 현대 그룹이 재정난에 빠지고 급기야 지원 중단을 하는 사태에서도 그는 자리를 지켰다. 우리 히어로즈, 넥센 히어로즈로 계속 팀명이 바뀌는 상황에서도 이숭용은 그대로였다.

2003년 그는 팀의 주장을 맡았다. 주장으로서 그의 진가는 해가 지날수록 빛이 났다. 어려운 팀 사정 속에서 그는 주장으로서 팀을 잘 이끌었고 과거에 비해 그 수는 줄었지만 그를 응원하는 팬들은 그의 그런 모습을 사랑했다.

2011년 9월 17일 그는 한국 프로야구 통산 6번째로 2000경기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그러나 그보다 대단한 것은 2000경기 출장 기록을 오직 한 팀에서만 뛰면서 만든 선수는 이숭용이 유일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기록을 이어오기까지 그가 속한 팀이 파란만장한 시간을 겪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 가치는 더 높게 평가받을 만하다.

그리고 9월 18일 이숭용은 은퇴 경기를 가졌다. 1위를 달리고 있는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였지만 모든 선수들은 그를 위해 힘을 합쳐 승리를 선사했다.

이제 이숭용은 그라운드를 떠난다. 비록 골든 글러브도 개인 타이틀도 한 번도 차지한 적이 없지만 특별히 부진한 시즌도 없었고 큰 부상도 없이 정말 꾸준하게 선수 생활을 한 그도, 이제는 세월이 흘러 지키던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는 스스로를 조연이라고 했지만 팬들의 기억 속에는 주연으로 남을 것이다. 그의 발자취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만하다. 또한 그것은 과거 그를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인천 야구팬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에게 태평양 돌핀스 유니폼을 입었던 유망주 이숭용은 그리움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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