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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가니>와 좀비영화의 상관관계

11.10.15 14:42최종업데이트11.10.15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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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영화 <도가니>를 보고 터벅터벅 나와서 멍하니 의자에 앉아 한숨을 쉬다가 문득, 좋아하지도 않던 좀비 영화가 떠올랐다. 나는 좀비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매우 싫어하는 편이라 좀비영화에 대해 뭐라 할 수 있을 정도는 못 된다. 내 생각에 좀비 영화는 대체로 별 대화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뾰족한 해결책도 없고, 주인공의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벅차고, 가끔 좀비들이 튀어나와 놀래키고, 생존자들이 만나면 함께 도망다니면서 해결책을 찾는 내용으로 가득했던 것 같다.

 

현실감이 공포 영화의 중요 요건이라면 실화라는 점에서 최고의 공포영화라 할 수 있는 영화 <도가니>는 도대체 좀비 영화와 무슨 상관 관계를 갖고 있을까.

 

영화를 본 관객들은 아이들을 잡아 먹는 선생들을 보면서 '저게 인간인가'싶기도 하고, 그들을 옹호하는 종교인들을 보면서 '눈이 삐었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게다가 그들을 봐주며 자기 몫을 챙기기 바쁜 공권력, 나아가 무심한 사회의 모습을 보며 '세상이 어쩜 이럴 수 있을까!'라고 개탄했을 것이다.

 

인간의 얼굴을 갖고 있지만 인간성을 잃어버린 선생들과 종교인, 그리고 공권력 위로 좀비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들은 좀비다. 이렇게 꼭 들어맞을 수가 있을까. 그들은 '마음의 귀'가 먹어 사람의 울부짖음이 들리지 않고 '마음의 눈'이 멀어서 사람의 상처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피에 굶주려 사냥하고 유희하듯 약자를 잡아 먹었다.

 

좀비 영화를 보면 잡아먹힐 처지에 놓인 상태가 싫어서 일부러 좀비에게 물리는 인간도 등장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까'라고 생각했던 그들은 만약 인간으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돌아가지 않을 것만 같다. 우리가 우리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 후회는 하지만 그것을 인정함으로써 돌이키려고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 <도가니>의 마지막쯤에 남주인공이 "우리가 싸우는 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변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했던가. 이 또한 좀비 영화와 일맥상통한다. 좀비 영화의 주인공이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힘쓰는 이유는 좀비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좀비 투성이가 된 세상을 바꾸려면 일단 내가 변하지 않고 인간인 채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엾게 기침을 하던 어린 딸과 전세금을 빼 준 연로한 어머니가 눈에 밟히면서도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던 것은 남주인공이 바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도가니>를 보고 혹 세상이 원망스럽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대는 아직 인간이다. 인간인 우리가 말이 통하지 않는 좀비와 세상을 원망하느라 속만 썩이지 말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할지 함께 고민했으면 한다.

 

기본적으로 나를 지키고 다른 생존자를 지키기 위해 체력과 심력을 유지하며 빠릿빠릿하게 깨어야 하겠다. 함께 모여있으면 더욱 안전할 것이고, 모여서 심심할 땐 같이 욕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욕'과 '원망'은 미묘하게 다르다. 하고 나서 속이 시원하고 깔깔거릴 수 있다면 그것은 욕. 하고 나서 답답해지고 비관적이 된다면 그것은 원망이다. '세상이 왜 이래' 하며 원망하기보다 시원하게 욕해주자. 그들의 면전에 대고 해도 상관없지만, 어차피 그들은 못알아듣고 더 사납게 으르렁거릴 수도 있으니 물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함은 물론이다.

 

또한 <도가니>가 소설로 쓰여지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의도와 같이 어두운 구석에 빛을 비춰 밝히는 것도 우리가 해야할 일이라 하겠다. 주의할 점이라면 스포트라이트에 '눈이 부시고 땀이 나고 부담을 느끼는 정도'의 평범한 증세를 보이는 사람을 집요하게 비출 것이 아니라, 진짜 '좀비'를 찾아내 제대로 비추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이 사회는 좀비의 사회인가 인간의 사회인가. 그것은 우리가 현실과 타협해 인간성을 포기하는 길을 택할 것인가, 마음의 눈과 귀로 정말 중요한 것을 바라보며 살아갈 것인가에 달렸다.

2011.10.15 14:42 ⓒ 2011 OhmyNews
도가니 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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