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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의 약속>...서른에 찾아온 알츠하이머, 당신이라면?

<천일의 약속>, 같은 병 여러 작품있지만 빠른 전개로 시청자 눈물 감동

11.10.25 11:22최종업데이트11.10.25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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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월화드라마 <천일의 약속> 괴로워하는 서연(수애) ⓒ SBS



지난 24일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천일의 약속> 3회에서 서연(수애 분)이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려했던 최악의 상황이 드디어 발생한 것이다. 자신의 병을 알게 된 서연이 누구에게 말도 못하며 혼자 술을 마시고 괴로워하며 발악하는 장면이 방송을 통해 전해졌다.

<천일의 약속>, 같은 병 소재지만 빠른 전개로 기대감 높여

여러 자료에 따르면 알츠하이머병은 뇌의 신경세포가 퇴화하며 뇌가 축소되어 건망증과 혼동 상태를 거쳐 결국 인격장애와 치매에 이르는 불치병이다. 임상적인 특징은 기억·판단·언어 능력 등 지적인 기능의 점진적인 감퇴, 일상생활능력·인격·행동양상의 장애 등이며, 발병 초기에는 이름·날짜·장소와 같은 것들이 기억에서 사라지고, 심해지면 화장실을 가거나 요리를 하거나 신을 신는 일 등의 일상생활조차도 잊게 된다. 우울증세, 인격의 황폐, 격한 행동 등의 정신의학적인 증세들이 동반되며, 이러한 증세들이 점진적으로 진행되어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되는 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이 질환을 앓다가 세상을 떠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고, <내 머리속의 지우개>, <노트북> 등의 영화를 통해서도 이 병을 접할 수 있어 사람들에게 낯선 질환은 아니다. 오히려 <천일의 약속>이 알츠하이머에 걸린 여성을 소재로 한다고 했을 때 '식상하다'라는 우려가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첫회에서부터 서연의 건망증이 반복적으로 나타났고 20부 중 3회에서 벌써 주인공이 병명을 알게 됐다. 예상보다 파격적인 속도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우선 뻔하고 식상한 틀에선 벗어났다. 게다가 앞으로 남은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한 궁금증도 더해져 기대를 높이고 있다.

다양한 영상매체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등장했던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은 닥쳐온 위기를 통해 연인의 사랑을 재확인하고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았었다. 이들은 불치의 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곁에서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어 행복해 보였다. <천일의 약속>에 등장하는 서연이 특별히 더 슬픈 이유는 이 때문일 것이다.

'한 번도 행복하지 않았던' 서연, 이젠 지형마저 잊는다

▲ SBS 월화드라마 <천일의 약속> 자신의 병을 알게 되는 서연(수애) ⓒ SBS


드라마가 시작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도 서연은 단 한 순간도 행복하지 못했다. 그녀의 서른 살 인생 어느 순간도 어렵지 않았던 때가 없었다. 유일하게 행복이 넘쳐났던 지난 1년간의 도둑연애가 막을 내리는 그 순간, 불치병은 그녀에게 다가왔다. 넘어지면 일어서고 또 넘어지면 다시 일어섰지만, 끊임없이 그녀를 억누르는 것들이 나타난다. 그래서 서연은 좀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행복을 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인물이다.

하지만 앞으로 드라마는 서연의 기억이 점차 사라지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형광펜이나 가위보다 더 중요하고 소중한 기억들과 추억들이 서연의 머릿속에서 점차 사라질 것이다. 추억으로만 남은 지형(김래원 분)과의 시간들도 마치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 드라마는 기억을 통해 누군가에게 존재하게 되는 인간관계를 보여준다.

이는 플래시백을 통해 보여진 에피소드들 중에서 서연과 지형의 호명에 관한 것들이 많이 등장한 점에서 알 수 있다. 서연의 주소록에 '박지숙'으로 저장된 지형과 지형의 휴대전화에 존재하지 않는 서연, 지형의 호칭을 '그대'라 할지 '여보'라 할지 고민하는 서연의 행동을 통해 서연에게 '이름을 부른다'는 것의 가치가 어떠한 것인지가 잘 드러난다.

이러한 관계는 앞으로 역전될 것이다. 서연의 기억 속에 지형의 존재는 점차 사라질 것이고 지형은 조금이라고 서연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기 위해 애쓸 것이다. 전화번호를 바꾸고 이름을 삭제하는 그런 수준을 뛰어넘은 불가항력적인 삭제, 결국 서연의 삶에서 지형은 완벽히 삭제될 것이고 서연의 삶 역시 소멸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이제 '서른 살에 알츠하이머에 걸린' 불쌍한 여인을 만난다

▲ SBS 월화드라마 <천일의 약속> 드라마 <천일의 약속>의 두 주인공 김래원과 수애 ⓒ SBS


서연에게는 '그때 참 좋았지' 싶은 추억들이 거의 없다. 지형과의 추억들은 억지로라도 지워야 할 슬픈 기억이 되었다. 서연이 기억하고 싶은, 잊고 싶지 않은, 붙잡고 싶은 것들은 어떤 대단한 추억들이 아니다. 지금, 서른 살 서연을 존재하게 하는 그녀의 일상을 붙잡고 싶은 것이다.

음식을 주문하고, 약속을 잊지 않고, 물건의 이름을 기억하는, 하루하루 일상을 가능하게 하는 그런 사소함이 그녀에게 필요한 것이다. 서연에게서 잊히게 될 사람들보다도 서연 스스로가 무너지는 게 더 안타깝고 슬픈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도 서른 살에 알츠하이머라는 게 말이 되냐"는 이 말이 가슴아픈 것은 <천일의 약속> 속의 서연이기 때문이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이 여인의 종착역이 겨우 서른 살밖에 되지 않는다는, 그렇게 내달려왔던 종착역이 전혀 환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는 것을 이 여인은 알게 되었다.

앞으로 우리는 서른 살에 알츠하이머에 걸린 가장 불쌍한 여인을 만나보게 될 것이다. 잊히는 게 안타까울 정도로 행복했던 기억조차 갖지 못한 서연의 여정이 조금이라도 편안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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