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리 난간 넘어로 보이는 북한 황금평. 9월 중순임에도 벼들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조종안
20분쯤 달렸을까. 오른쪽으로 들녘이 펼쳐졌다. 9월 중순임에도 누런 벼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가이드는 '황금평(黃金坪)'이라며 철조망 건너는 북한, 안쪽은 중국이라고 했다. 압록강을 조·중 국경으로 알고 있는데 눈앞의 철조망이 국경이라니 놀라웠다.
더욱 놀란 것은 중국과 인접한 황금평 전체가 북한 영토라는 점이었다. 작년 12월 북한과 중국이 '황금평·나선특구 합작개발을 위한 양해각서'를 교환하고, 올 6월에 착공식까지 마쳤다는 소식은 북한의 개방에 작은 희망을 안겨주기도 했다.
아침에 선상에서 북한의 갯벌과 섬들을 구경하던 임씨 아저씨(64)가 "황금평은 죽은 김일성이 지어준 이름입네다!"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지나가는 말로 흘려들었는데 '허튼소리는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황금평은 김일성이 지어준 이름입네다!"황금평의 북한영토 확정은 1962년 12월 10일 평양에서 당시 북한 김일성(1912~1994) 주석과 중국의 주은래(1898~1976) 총리가 '조·중 변계조약'을 체결하고, 1964년 3월 20일 베이징에서 북한 외무상 박성철과 중국 진의 외교부장이 서명하면서 발효되었다는 사실도 알았다.
여의도 4배 면적의 황금평(11.45㎢) 옛 이름은 황초평(黃草坪)으로 평안북도 신도군에 속한 섬 '시시리'였단다. 그런데 1986년 가을 김일성 주석이 방문해서 벼들이 누렇게 익어가는 들녘을 지켜보다가 "황금 평야로구먼!" 하고 탄성을 내뱉으면서 '황금평'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한다.
황금평은 지평선이 보일 정도여서 김제·만경 들녘을 떠오르게 했다. 압록강 하류의 퇴적물이 쌓여 형성된 섬이기 때문에 토지가 비옥해서 신의주 최대 곡창지대라고 한다. 식량이 부족한 북한으로서는 젖줄이나 다름없는 섬이라는 것.
동항은 단순한 중국의 항구가 아니라 남북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대부분 식량이 동항과 단둥을 거쳐 북한 신의주로 들어갔고, 인도적 구호물자도 같은 경로를 이용했기 때문이었다.
과거 남북 관계가 좋았을 때는 철조망에서 북한 주민과 대화도 나누고 물건과 돈을 건네기도 했다고. 그러나 지금은 버스를 길가에 세우지도 못한단다. 남북이 긴장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동항-단동 도로(2009년) 개설도 북한은 반대했다고 한다.
북한이 도로 개설을 반대한 이유는 주민들이 잘사는 중국 모습과 고급차량이 오가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동요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란다. 북한은 국경 부근에 일반인 거주와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드문드문 보이는 사람은 농민이 아니라 군인가족이라고.

▲ 농가들 사이에 서 있는 북한군 초소. 군인 가족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고 한다.
조종안
2010년 가을에는 철조망을 더욱 촘촘하게 설치하고 경비도 강화했다고 한다. 어쩌다 둥근 시멘트 건물도 보였는데 북한군 초소라고 했다. 보는 사람이 살벌함을 느끼도록 이중삼중으로 쳐놓은 황금평 주변 철조망은 온갖 상념을 불러일으켰다.
그래도 압록강에 있는 섬 125개 중 100개는 북한, 25개는 중국 영토라는 설명은 전북 군산의 미 공군기지(비행장)와 비교되면서 위로가 되었다. 남한은 미국과 협상(SOFA)에서 영토를 내주었는데 북한은 중국, 러시아 외교에서 실리를 챙겼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13개월 전에 들렀던 '평양 옥류식당' 앞에서고층 건물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면서 버스는 단동(丹東) 시내로 접어들었다. 중국 최대의 국경도시 단동의 원래 이름은 안동(安東). 1960년대 중반 주은래가 방문했을 때 '해 뜨는 동쪽'이라 해서 '편안할 안(安)'을 '붉을 단(丹)'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압록강 철교에서 300m 정도 떨어진 위치에 자리한 평양 옥류식당.
조종안
어깨동무하듯 나란히 걸린 중국 오성기와 북한 인민기가 시선을 멈추게 했다. 2010년 8월 18일 점심을 먹었던 '평양 옥류식당' 간판이었다. 당시에는 건물 외부를 수리 중이어서 입구가 무척 복잡했는데 말끔하게 단장되어 있었다.
압록강 넘어 신의주와 마주보고 있는 옥류식당. 파란 원피스 차림으로 친절하게 안내하던 여성 접대원들 얼굴이 슬라이드 필름처럼 스쳐갔다. <아리랑> <휘파람> <감격시대> <반갑습니다> <늴리리야> 등 기타와 전자오르간 반주에 맞춰 함께 부르던 노래 제목들도 떠올랐다.

▲ 평양 옥류식당 여성 접대원들이 식사를 마치고 음악공연을 하고 있다. (2010년 8월 18일 촬영)
조종안
연장 공연에서 함께 불렀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생각날 때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당장 뛰어들어가 그동안 잘 지냈느냐고 안부를 묻고 싶었다. 그러나 단체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점심을 옥류 식당에서 먹자고 건의하려다 주책없는 짓 같아서 참았다.
버스는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파괴된 압록강 단교를 지나 강변길을 한참 더 달려 조용한 변두리 식당 앞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중국 식당 아니랄까 봐 실내는 캄캄했다. 시계는 낮 12시 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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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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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이 지어준 이름, 허튼 소리가 아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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