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 때문에 휴대폰·카드 못 만드는 '아내'

내 아내는 잃어버린 것조차 잊어버려서 걱정입니다

등록 2011.11.28 15:25수정 2011.11.28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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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써도 될지 모를 제재입니다. 아내가 무척 싫어할 것 같아요. 아내에 대한 얘기거든요. 그것도 감추고 싶은 이야기. 아내에 대해서는 자랑을 해도 팔불출, 흉을 봐도 자기 얼굴에 침 뱉기란 소리 듣기 십상이잖아요. 제 아내는 건망증이 심합니다. 제 탓도 없지 않을 거예요. 삶의 조건이 열악한 농촌으로 끌고 다니면서 평생 고생만 시킨….

아내의 건망증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래 되었어요. 짧은 기간이지만 저희가 연애를 할 때부터 그랬습니다. '길치'라고들 하나요? 어디 약속 장소를 잡으면 늘 엉뚱한 곳에 가서 기다립니다. 그 중 반대편에 가서 하부지세월(何不知歲月) 기다리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한 번은 정말 약속을 하고 그 반대편에 가니 거기에 생뚱맞게 서 있더군요.


그런 일이 자주 반복되었습니다. 그런데 특히 50을 넘기고서 그 정도가 더 심해졌습니다. 무엇을 맡기질 못합니다. 잃어버린 것 자체를 잊어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제가 짊어져야 할 건망증을 아내가 대신 갖고 있다며 억지로라도 이해해 주려고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

특히 중요한 것을 잃어버릴 때는 화가 납니다. 아내는 그래서 은행 신용카드를 잘 갖고 다니지 않습니다. 어디에 두고 왔는지를 통 기억해내지 못하기 때문에 늘 불안합니다. 신용카드는 돈과 직결되는 것이잖아요. 아내의 지갑을 보면 카드가 몇 개 들어있긴 한데 별 쓸모없는 것들입니다. 병원 진료 카드, 친목모임 회원 카드, 없어지는 공중전화를 붙들기라도 하듯 싼 전화카드 따위가 들어 있습니다. 개인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아내의 주민등록증도 제가 관리합니다. 아내가 필요로 할 때 잘 관리하라며 신신당부를 한 뒤 줍니다.

휴대폰 손에 들고 휴대폰 찾는 아내

며칠 전엔 제 휴대폰 배터리를 어디에 두고 왔는지 통 기억해 내지 못해 사람 복장을 터지게 만들더군요. 아내의 건망증은 휴대폰조차도 자기 것을 갖지 못할 운명과 연결됩니다. 아내는 아직 휴대폰이 없습니다. 꼭 필요할 땐 제 휴대폰을 빌려줍니다. 빌려줄 때는 걱정이 태산입니다. 제 것이라고 아내의 건망증을 극복하리라는 보장이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아내가 잃어버린 제 휴대폰 보조 배터리는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휴대폰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어제(27일)는 제 휴대폰을 손에 잡고 있으면서 그것을 찾느라 한동안 신경을 곤두세우더군요. 할 말을 잃게 만듭니다. 물건을 분실할 때, 아내가 늘 제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분실물이 제 물건으로 좀 소리 나게 혼이 날 때 아내는 늘 이 말을 합니다.


"여보, 나보다 휴대폰 배터리가 더 중요해? 나보다 신용 카드가 더 중요해?"

질문 자체가 성립이 안 됩니다. 어떻게 매사를 자기와 연결시켜 그 중요도를 따집니까? 물론 아내가 나의 소유물보다 더 중요하지요. 그건 당연하지만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 가장 중요한 아내의 행동에 대해 질책을 하게 되는 거잖아요.


한 번은 신용카드를 어디 두었는지 찾지 못하고 며칠을 지내다가 안 되겠다 싶었던지 카드 회사에 분실신고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습득한 사람이 못된 생각으로 그것을 사용한다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며 분실 신고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분실 신고 한 몇 시간 뒤 가방 안쪽 밑창 부분에 끼어 있는 카드를 발견한 것입니다. 다시 그것을 취소하느라 소란을 피웠던 적이 있습니다.

여성은 평생 우울증과 싸우며 살아야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신혼 우울증, 산전 우울증, 산후 우울증, 명절 우울증, 시댁 우울증, 고부(姑婦) 우울증…. 하지만 제 아내는 평생 건망증과 싸우며 살아옵니다. 저는 처음엔 아내의 건망증을 이해 못하고 준비성 부족의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매사에 늘 준비하고 꼼꼼하게 챙기면 건망증은 사라진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당신이 몰라봐도 내가 알아보면 되잖아!"

요즘 들어 아내가 염려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남편도 몰라 볼 때가 오면 어떡할까 하는 것입니다. 건망증이 발전하면 치매로 연결된다는 신문 기사를 읽은 뒤부터 그 걱정이 심해졌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몰라봐도 내가 알아보면 되잖아!"

저의 진심이지만 아내는 그냥 웃어넘깁니다. 못 믿겠다는 건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모를 웃음입니다.

망각은 사람이 누리는 축복 중의 하나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경험했던 것을 다 기억하고 있다면 온전한 삶을 살아내기 힘들 것입니다. 심각한 신경성 병을 앓게 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람은 적절하게 기억하게 하도 또 더 적절하게 잊게도 됩니다. 그래서 건강한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저는 아내의 건망증도 이런 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내를 위로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건망증은 50 넘은 여성이면 다 갖고 있는 것이라고 말해 주곤 합니다. 당신은 50대 여성의 기준이라고 격려합니다.

설령 남편까지 잊어버린다 해도 절대 버리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 시킵니다. 잘 나가던 여자가 남편 잘못 만나 고생한 결과인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즘 부쩍 아내에 대해 더 신경이 많이 쓰입니다. 건강 이상으로 우리의 해로(偕老) 여정이 별 탈 없기를 바라면서….
#아내 #건망증 #해로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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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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