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끝자락에서 원북역을 만나다

원북역이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

등록 2011.11.30 20:10수정 2011.11.3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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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국내 유일의 철길인 경전선이 지나가는 원북역은 아마추어 사진 애호가들과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사람 하나 없이 덩그러니 남겨진 역사와 단선 철로가 만들어내는 호젓함은 주변의 자연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 내지요. 봄에는 철길 주변으로 벚꽃이 흩날리고 300살을 훌쩍 넘긴 이팝나무엔 하얀 눈꽃이 수북이 쌓입니다.


가을에는 도로변 은행나무들이 원북역과 마을 일대를 노랗게 물들여 만추(晩秋)의 아름다움을 가득 뽐내지요. 또한 원북마을의 뒷자락에 자리잡은 괘방산과 방어산의 능선을 잇는 종주길은 양(兩)남도의 등산 애호가들이 종종 발걸음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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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북역에서 찍은 경전선의 모습입니다. 기차는 경남을 넘어 전남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 노윤혁


원북역의 볼거리는 사실 이것만이 아닙니다. 이곳 일대에는 조선시대 생육신 중 한 분이셨던 어계 조려 선생의 발자취가 곳곳에 남겨져 있습니다. 성균관 진사로서 사림 사이에 명망이 높았던 조려 선생은 1455년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자신의 고향인 함안, 현재의 원북마을 부근으로 낙향합니다.

이후 여생을 낚시질로 보냈기에 스스로를 어계라 칭하였지요. 그런 선생의 모습을 주변사람들은 주나라 사람 백이와 숙제에 비유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서산 동쪽을 백이산, 동쪽을 숙제봉이라 칭했고, 이후 후손들이 선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만든 정자의 이름 또한 채미정(採薇亭)이었습니다. 백이와 숙제 주나라 무왕에 반대하여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어 먹었다[採薇]는 고사에서 연유한 것이지요.

이처럼 현재와 과거, 그리고 자연이 함께 어우러진 원북역은 사실 경전선 철도 계획에는 없던 역이었습니다. 지금은 이차선 도로가 뚫리고 군내버스도 마을을 지나가는 곳이지만 80년대까지만 해도 원북마을을 연결하는 대중교통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에 주민들의 요청으로 원북역이 만들어졌고 지난 30여년동안 원북마을과 외부의 유일한 교통로로서의 역할을 해 왔습니다. 이제 경전선 복선화 작업이 마무리되는 내년이면 원북역도 그 소임을 마무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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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북역에서 바라 본 경전선 복선화 작업이 진행되는 구간입니다. ⓒ 노윤혁


여기서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은 경전선 복선화와 맞물려 신임 군수 공약사업으로 원북역 주변을 관광 상품으로 개발한다는 사실입니다. 원북역 주변 개발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나오지 않아 그 방식에 대해서는 아직 알 수 없지만, 획일적이고 인위적인 개발이 원북역의 아름다움을 훼손시키지는 않을까 걱정입니다. 정선과 문경에서 보았던 레일바이크가 원북역을 지나가는 일은 없어야겠지요.


사실 원북역과 원북마을을 이야기할 때 조려 선생 말고도 우리가 기억해야할 인물이 한 분 더 있습니다. 현재의 원북역사를 만든 장본인인 고 박계도씨입니다. 마을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박계도씨는 원북마을 출신의 재일교포로서 일제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80년대 고향에 돌아와 마을을 위한 일을 했다고 합니다.

원북역사를 건축한 것은 물론 농사를 위해 저수지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었고, 마을에 전기를 들여오는 데에도 사비로 그 비용을 지불했다고 합니다. 이후 박계도씨는 일본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하셨지만 그분이 보여준 고향에 대한 사랑과 이웃을 위한 섬김은 마을 곳곳에 그 흔적을 남겨 원북역을 더욱 아름답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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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북마을에서 방어산 기슭으로 가다 보면 저수지가 하나 있습니다. 이 곳 또한 박계도씨의 노력이 숨겨진 곳입니다. 마을 주민들이 그 뜻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작은 비석입니다. ⓒ 노윤혁


박계도씨의 이야기와 원북역 주변 개발 소식을 듣고 있자니 굴착기와 건설 중장비가 국토를 헤집고 있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조선후기 관 주도하에 이뤄진 자화자찬식의 송덕비 세우기처럼, 오늘날에도 많은 목민관들이 자신의 치적을 세우기 위해 이곳저곳에서 주민의 삶과는 거리가 먼 사업들을 만들어 내고 있으니까요. 그저 볼품없고 초라해 보이는 역사 하나가 지난 30여년동안 인근 마을 주민들의 쉼터가 되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각종 건설 장비로 무장한 대규모 공사나 해외에서 찬탄해줄 위대한 업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신 그리 세련되지는 않더라도 진심을 가지고 이웃의 삶을 돌아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또한 그런 일을 할 진짜 목민관들이 필요합니다. 진짜배기 지도자에 목말라하는 우리에게 오랜 세월 한결같이 마을을 지켜온 원북역이 진짜로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는 다름 아닌 이것이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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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도씨가 기증하신 원북역사입니다. 30여년동안 원북마을 주민들의 쉼터 역할을 해 왔습니다. ⓒ 노윤혁

#원북역 #박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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